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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2. 2022

6월 22일 이성한의 하루

팀장의 무게

성한이 팀장으로 승진한 것은 1년 전 일이다. 성한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팀장 자리를 달았고 이에 따른 직책 수당까지 나왔기 때문에 성한은 기뻐했다. 성한이 맡은 곳은 신사업팀이었다. 신사업팀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방향이 잡히지 않은 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단한 것을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는 팀이었다. 성한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어떠한 것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회사에서 강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한이 아무것도 정해진 팀의 장이라는 자리가 독이 든 성배였음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팀장이라는 자리의 무게는 성한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성한은 디테일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밑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는 최고였다. 하지만 팀장이 되고 나서도 성한은 디테일에 집착했고 실무자들을 마이크로 매니징 하려고 했다.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팀장은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했지만 성한은 작은 것에 집착하여 자신의 팀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성한의 윗사람들은 팀장 이성한의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또 다른 문제가 되었다. 성한이 업무 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지나치게 몰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성한 역시 실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팀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성한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밑의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팀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는 것도 팀장 이성한의 문제였다. 다른 팀은 끊임없이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성한의 팀에 일을 넘겨줬다. 성한은 일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점차 성한의 팀에서 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넓어졌다. 팀원들의 불만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성한은 그렇게 일이 넘어오는 것이 자신의 팀이 인정을 받아서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성한의 이런 행동 때문에 위에서는 성한을 혼내기 시작했다. 신사업부서인데 여태까지 잘한 것이 무엇이냐는 지적이었고 성한은 이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그렇게 혼나고 오면 팀원들을 모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다시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이 모습만 1년 동안 5~6번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위에서 혼나고 오면 장황하게 설명하고 정작 되는 것은 없는 업무. 이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오자 팀원들은 지쳐갔다. 

경영진 역시 지쳐갔다. 오랜 회의 끝에 성한이 신사업 부서의 장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메인 비즈니스도 아닌 사내 벤처를 위한 부서였기 때문에 경영진도 크게 미련이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한을 믿고 기다려준 것이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한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경영진은 결단을 내렸다. 

오늘 성한은 인사이동 명령을 받았다. 회사 내에서 그렇게 영향력이 있지 않은 작은 부서였다. 사실 상 좌천이었다. 성한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 상상한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고 앞으로 회사에 충성하기만 한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성한이 1년 전 팀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아예 임원까지 올라가는 자신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성한은 한직으로 밀려나갔다. 회사에 중대한 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고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도, 회사 경영진을 욕하도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팀을 운영하는 것이 어설펐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자신을 대우하는 회사에 성한은 크게 화가 났다. 

거기다가 성한이 팀을 옮기게 되자 팀원 누구 하나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성한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누구보다 친절하고 팀원을 아끼는 팀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팀원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성한이 속상해하고 있을 때 성한을 누구보다 아끼던 상사가 성한을 불렀다. 그리고 그는 성한에게 오늘 퇴근하고 술 한잔하자고 했다. 그는 성한의 이전 팀장이었고 성한은 그를 매우 존경했다. 그를 존경한 것은 성한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의 대부분은 그를 좋아했다. 조직 관리를 잘하고 성과까지 만들어 팀원들의 인센티브까지 챙겨주는 그를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성한은 그의 모습을 보자 자신이 그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를 생각해봤다. 정말 많은 부분이 달랐다. 성한은 자신이 너무 실패한 팀장인 것 같아 우울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화났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 같았다. 성한은 순간 지난 1년 간 자신의 행동들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성한은 고개를 푹 숙였다. 팀장이라는 무게에 결국 성한은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성한은 좌절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오늘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에게 솔직하게 이전에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구할 생각이다. 팀장 자리에서 1번 실패할 수는 있지만 또 실패하면 안 되는 위기감이 지금 성한이 놓아버릴 뻔 한 정신줄을 겨우 다잡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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