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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6. 2022

6월 25일 고상진의 하루

집들이

얼마 전 결혼한 친구인 수현이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수현의 집은 우리 집에서 꽤 먼 곳에 있었다. 그래서 가는 것이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초대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친구네 집으로 찾아갔다.

수현은 나 말고도 2명의 친구를 더 불렀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무리가 8명 정도가 있었는데 30살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5명 정도였다. 이제는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이 수현이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차를 가져갈까 하다가 길이 막히는 것이 싫어 지하철을 타고 갔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해서 나 혼자 지하철역에서 수현의 집까지 갔다. 수현의 집은 지하철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좋은 동네에 있었다. 수현의 아파트는 지어진지 이제 5년이 안 되는 아파트였다. 그리고 보안도 철저했다. 아파트 1층에서 나는 방문 목적을 밝히고 방문증을 써야 했다. 차를 끌고 왔을 때 이런 것을 쓰는 것은 익숙했지만 도보로 들어온 방문객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것은 처음 봤다. 마치 사무실을 방문하는 기분이었다.

수현의 아파트는 내가 알고 있던 흔한 아파트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호텔처럼 생겨서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호텔처럼 카드키를 입력해야 층을 누를 수 있었다. 그래서 1층에서 받은 방문자 카드로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그러고 보니 수현이 1층에 도착하면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뭐하러 1층까지 마중 나오는 건가 싶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던 거였구나.

겨우 수현의 집에 도착하였다. 벨을 누르니 수현이 문을 열면서 왜 전화를 안 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수현의 집은 굉장히 깨끗했다. 이사를 오면서 인테리어를 다시 했다더니 굉장히 잘되어있었다. 사실 아파트 자체가 매우 고급스러워서 일부만 고치고 원래 이렇게 멋있게 되어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집들이 선물인 캔들 워머를 수현에게 줬다. 수현은 나에게 왜 이런 것을 가져왔냐고 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제수씨에게 인사했다. 제수씨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녀는 나의 대학교 후배였다. 대학교 시절, 우리 학교 축제에 놀러 온 수현이 학교 후배를 보고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수현은 내 덕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결혼할 때 나에게 꽤나 가격이 나가는 명품 지갑을 선물해줬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내가 오늘 집들이를 안 갈 수가 없었다.

수현은 나보고 앉아서 쉬고 있으라며 거실로 안내했다. 수현의 집 거실은 무척이나 넓었다. 거실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넓었다. 수현에게 평수를 물어보니 50평이 조금 안 넘는 크기라고 했다. 보통 우리 또래의 신혼부부가 갈 수 있는 집의 크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였다.

수현은 아내의 요리를 돕고 있었다며 잠시 앉아서 쉬고 있으라고 말하고 부엌으로 갔다. 나는 제수씨가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다른 친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구들도 모두 고급이었다. 우리의 나이가 50대, 60대라면 약간은 이해해줄 수 있었지만 고작 33살인 우리 나이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티는 안 냈지만 수현의 집에 오면서 우리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수현의 모습에 조금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현의 집은 굉장히 부자였다. 아마 고등학교 동기 중에서는 가장 부자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 동네에서 가장 부자였을 수도 있다. 공부도 잘하고 잘 생긴 수현은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나도 수현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가정환경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고3 때는 집안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때 생긴 빚은 아직도 갚고 있다. 어려움이 있어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대학교는 꼭 나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바람 때문에 대학교에 갔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학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악착같이 알바를 했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연봉이 만족스러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돈을 벌면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노력했다. 19살부터 33살의 지금까지 나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수현과는 고3 때부터 떨어졌지만 그는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서도, 성인이 된 지금까지 좋은 친구로 남게 되었다.

수현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수현은 고난이 없는 것 같았다. 유학을 충분히 갈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너무 싫었던 수현은 국내 최고의 대학교를 나와서 대기업에서 충분히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수현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수현의 신혼집도 아버지가 예전에 사둔 집 중 하나였다. 재건축에 성공하면서 국내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아파트로 이름을 날렸고 그 아파트는 수현의 몫이 되었다. 이것 말고도 본인 명의의 건물이 1~2개 정도 있다고 하니 수현은 앞으로도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인물이었다.


수현의 사정을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현의 집에서 목도하게 되니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러면 안 되는데 괜히 질투심이 느껴졌다. 내가 당장 어쩔 수 없는 그런 질투심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비참했다. 수현은 여전히 나에게 좋은 친구인데 그저 그가 가진 환경 때문에 그를 질투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 수현을 잠시 쳐다봤다. 수현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배고프지? 조금만 참아. 애들 곧 올 거야.”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는 참 좋고 착한 친구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다른 친구들도 도착한 모양이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와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이 말도 안 되는 질투심 때문에 소중한 친구의 집들이를 망칠 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정신 차리자. 제발.


식사 자리는 매우 순조롭게 흘러갔다. 수현과 제수씨의 음식 솜씨는 매우 훌륭했다. 수현이 평소에 말을 하지 않아서 오늘에서야 들은 것인데 수현은 원래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현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했고 수현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이 때문에 아버지와 안 싸운 날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교 때는 몰래 식당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에게 잡혀서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고 했다. 수현은 어릴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맞으니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방황을 더 했는데 우리 학교 축제에 왔다가 현재의 아내를 만나고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현은 나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결국엔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지만 그래도 아내를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수현의 말이 여전히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를 안 해서 불행해진 삶이라고 본인은 표현했지만 그러기엔 그가 가진 것은 너무 많았다. 다시 한번 그의 말이 삐딱하게 들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는 친구에게 내가 정말 인간말종의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들이 식사 자리는 너무 괴로웠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즐거웠지만 괴로운 집들이가 끝나고 나는 수현의 집에서 나왔다. 수현은 여전히 웃으면서 나에게 잘 가라는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친구였다. 나는 여전히 수현에게 이상한 시기심을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지하철로 돌아가며 나는 뒤를 돌아 수현의 아파트를 봤다. 마치 성 같은 곳이었다. 그 성 안에는 수많은 수현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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