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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4. 2022

6월 24일 송유진의 하루

무서운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그날 밤은 항상 악몽에 시달렸다. 혼자 화장실에 가지도 못해 이불이 오줌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에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러 가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눈을 감으면 그날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겨우 잠이 들면 무조건 그날 들은 무서운 이야기가 악몽으로 바뀌어 나를 괴롭혔다. 가위에도 쉽게 눌렸다.

하지만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피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무서워할지언정 듣는 그 순간만큼은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교훈을 주는 신기한 이야기도 많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즐겼다. 맨날 공포 소설을 구매하거나 빌려보기도 하고 TV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재연하는 방송이 있으면 꼭 봤다. 그리고 그렇게 본 날은 역시나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무서운 이야기를 즐겨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겁이 많다. 어릴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악몽에 시달렸다. 남들은 무서운 이야기나 공포 영화를 보면 익숙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눈을 가려서라도 꼭 공포 영화를 보러 갔다. 재미가 있든 말든, 정말 무섭든 말든 상관없었다. 공포 영화가 주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이번 주 내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퇴근 후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맥주를 한 캔 비워도 일주일 간 받은 화가 사라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어떤 것으로 풀까 하다가 나는 공포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면 분명 무서워 벌벌 떨 테지만 그렇게라도 이번 주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었다.

OTT 서비스에 접속해서 공포 영화를 검색했다. 괜찮은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가 무서워서 떨 수 있을 정도의 영화면 됐다. 제목은 무척이나 미심쩍지만 비주얼은 그럴싸해 보이는 영화 한 편을 골랐다. 그리고 미리 시켜놓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즐겼다.

영화는 아시아 쪽의 공포 영화였다. 죽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내용은 다소 뻔했다. 하지만 이국적인 공포 분위기는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이나 미국, 일본 영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나를 놀라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귀신의 분장은 다소 어설펐지만 나는 눈을 가리고 봤다. 영화의 반은 눈을 가리고 본 것 같다.

영화의 결말은 평범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영화 평점을 검색해봤는데 그리 높지 않은 점수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만한 영화였다. 하지만 어떤 공포나는 공포에 떨게 된다. 오늘은 집에 불을 켜고  생각이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된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여전히 이번 주 내내 나를 괴롭힌 일적인 스트레스가 남아있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 같다. 나는 다른 영화를 한 편 더 보기로 하고 OTT 서비스를 찾아보다가 어떤 살인자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이런 다큐의 경우는 공포 영화와는 다른 두려움을 준다. 나는 이것으로 내 남은 스트레스를 잊기로 결심하고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잔혹한 이야기. 그 어떠한 동정도 들지 않는 잔학한 살인자의 이야기는 공포 영화보다 더욱 공포스러웠다. 어쩌면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욱 무서웠다. 다큐멘터리는 시리즈라서 1편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끝까지 볼 시간이 없었다. 취기가 슬슬 올라와 잠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TV를 끄고 잘 준비를 했다.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가는데 너무 무서웠다. 재빨리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밖으로 나와 TV를 틀었다. 그리고 평소에 자주 보는 웃긴 유튜브 영상을 연결해 양치를 하는 내내 봤다. 양치를 하고 나서 샤워를 할까 고민했지만 샤워를 하는 내내 무서운 생각이 들 것 같아 밝은 내일 아침에 씻기로 하고 얼굴만 세안했다.

불을  켜고 침대에 누웠다. 웃긴 영상을 계속 틀어놓고 잠이 들까 했지만 갑자기 영화 링이 생각나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에 들려고 했지만 이번엔 주온이 생각났다.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천장을 바라본 채 눈을 감았지만 오늘  영화의 무서운 장면들이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현관 쪽을 보는데 이번엔 오늘  살인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딜 봐도 무서운 장면뿐이었다. 

내가 왜 무서운 이야기를 봐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괜히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모든 것을 잊고 잠에 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다. 어떻게든 잠에 들자. 그러면 괜찮을 것이다. 물론 악몽이라는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지만 일단은 잠에 들자. 이렇게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생각하며 잠에 들려고 했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져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회사 일이 떠올랐다. 일주일 내내 있었던 일. 그리고 다음 주에 겪게 될 또 다른 고난까지. 그 생각을 하니 다시 화가 올라왔다. 젠장. 이제 정말 잠이 안 온다. 무서운 생각만 계속 나고 스트레스받는 일은 일대로 생각나는 최악의 밤이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긴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냥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이걸 보면서 모든 것을 잊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며 금요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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