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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02. 2022

7월 2일 이하진의 하루

그날 밤, 모텔에서 꾼 꿈

요새 마음이 너무 적적해서 혼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지방으로 내려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카페에 가서 멍 때리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짐을 챙겨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했다. 숙소조차 정하지 않는 무계획 여행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인터넷에서 괜찮아 보이는 모텔들을 검색했다. 그중에 그나마 가장 깔끔해 보이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인터넷 후기처럼 깨끗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에어컨도 잘 나오는 편이라 2일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피곤했기 때문에 바로 잠들었다. 이때가 토요일 새벽이었다. 


그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대학생이었다. 내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는 모르겠다. 내 앞에는 동아리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우리는 동아리 MT를 가고 있었다. 먹다 죽어도 모를 정도로 수없이 많은 술을 박스에 담았고 과자와 고기들도 듬뿍 담긴 박스도 있었다. 사실 나도 대학생 시절에 이런 여행을 많이 가봤기 때문에 익숙한 풍경이었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게임도 하고 술도 끝없이 마시고 누군가는 토도 하고 누군가는 연애의 감정이 있는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고…. 전형적인 MT의 모습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었다. 어떤 여자애였는데 그는 나보고 밖에 나가서 같이 걷자고 했다. 이때도 나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정황 상 남자일 것이라 추정되지만 꿈속에서는 그러한 것을 인지할 수는 없었다.

여자애는 나와 같이 길을 걸었다. 밖은 지나치게 어두웠고 나무는 우리를 뒤엎을 것 같이 위협적이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길을 걷다 보니 이곳이 숲 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자고 여자애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애는 없었다. 숲 속에는 나 혼자 있었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숲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뛰어서 그런지 갑자기 토할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토를 했다. 하지만 토를 아무리 해도 계속 나왔다. 토를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아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등 뒤로 누군가 나를 만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애가 다시 나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토를 멈춘 나는 입 주변을 닦고 여자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내 등 뒤에 있는 것은 여자애가 아니었다. 입이 찢어지고 눈은 깊게 파인 이상한 존재가 있었다. 너무 기이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달아났다.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가도 가도 나무만 보였다. 그런데 저 멀리 갑자기 오두막 하나가 보였다. 수상했지만 저곳이라도 가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오두막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오두막에 도착하려는 찰나, 오두막 집의 문이 열렸는데 하필이면 바깥쪽으로 열려 나는 문에 맞아 쓰러졌다. 



눈을 뜨니 나는 모텔 바닥에 있었다. 얌전히 있는 것은 아니고 침대 위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오두막 문에 부딪힐 때 나는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때 시간은 새벽 3시 3분.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식은땀이 났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아까 기이한 꿈이 생각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그날 새벽은 뜬 눈으로 지새웠다.


아침이 되자 나는 모텔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에서 깨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너무 졸려서 잠시 테이블에 엎드려 잠을 잤다.

20분 정도 잠을 자니깐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었다. 상쾌한 느낌은 전혀 아니었지만 하루 일정을 소화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그 이후에 나는 식당과 카페, 그리고 주변의 볼거리를 찾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원래는 중간에 모텔에 가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어제 꿈자리가 너무 사나워서 모텔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모텔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 어쩐지 찜찜했다.

하지만 밤에는 결국 모텔로 돌아가야 했다. 최대한 몸을 피곤하게 해서 잠을 푹 잘 수 있는 컨디션으로 만들었다. 모텔로 돌아온 나는 바로 씻고 잠들었다. 그때 시간은 일요일 새벽 12시 30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직장인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는 얼굴들이 등장하였지만 그곳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무실이었고 굉장히 삭막했다. 다들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모니터 화면만 주시했다. 타이핑은 기가 막히게 서로 같은 타이밍에 시작해서 같은 시간에 멈췄다. 이 타이핑 소리는 마치 굉장히 호흡이 잘 맞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렸다.

내가 그들을 지켜보면서 일을 하고 있지 않자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왜 일을 하지 않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일을 하려고 했는데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 남자는 내가 평소에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익숙하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그때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누구인지 생각이 났다. 바로 어제 MT를 같이 간 동아리 친구였다. 내가 너무 놀라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남자는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냐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죄송하다고 말을 하고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그런데 모니터 화면에서는 영화 한 편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내가 현실에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바로 내가 어제 꿨던 꿈…. 그 꿈이 모니터에서 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화면 속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어제 내가 겪은 그대로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내가 나를 구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서 키보드를 눌러봤지만 반응을 하지 않았다. 

화면 속의 나는 기이한 생명체에게서 벗어나려고 도망치다가 오두막을 발견하고 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화면 속의 내가 오두막에 도착하는 순간, 갑자기 사무실이 정전이 되었다. 나는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없어진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앞의 모니터를 다시 봤다. 모니터에는 어제 본 눈이 깊게 파인 존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사무실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물이라 더욱 도망치기가 어려웠다. 사무실에서 벗어나려 문을 열어도 다시 수많은 문이 나왔고 어딜 가도 똑같은 장소가 나왔다. 나는 이대로 건물에 갇힌 것 같았다. 그때 저 멀리 빛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가야 내가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력을 다해 그곳으로 달렸다. 

빛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그곳에도 문이 있었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나는 문 앞에 쓰여있는 숫자를 발견하였다. 303호…. 내 가슴은 크게 뛰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것이 나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방이 보였다. 그곳은 303호…. 바로 내가 지금 자고 있는 모텔방이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내가 누워있었다.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지금 이게 꿈이 맞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유체이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영혼이고 지금 저게 내 육체인 건가? 나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운 나에게로 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침대 밑에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긴 손톱을 가진 어떤 존재였는데 눈은 깊게 파여있었다. 내가 도망치고 있던 그 존재였다. 그 존재는 침대 위의 내 얼굴을 감싸며 옆으로 누웠다. 그리고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침대 위의 나를 밀었다. 쿵! 침대 위의 내가 떨어지자 나 역시 정신을 잃었다. 



그때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꿈에서 깬 것 같았다.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이틀 연속 비슷한 꿈을 꾸니 기분이 나빴다. 다시 잠이 들기 두려웠다. 나는 물이라도 마시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단지 내 눈동자만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돌려 내 옆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했다. 눈동자만 돌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목 전체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앞에는 눈이 깊게 파인 그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내 자리에서 나가!!! “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나를 밀었다. 나는 다시 침대 밖으로 떨어졌다.



눈을 뜨니 나는 바닥에 있었다. 얼굴이 너무 아파서 얼굴 쪽에 손을 대니 조금이지만 피가 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를 살펴봤다. 침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내가 그곳에서 자고 있었다는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때 시간도 어제와 같이 새벽 3시 3분이었다.


나는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짐을 챙긴 나는 모텔 밖으로 나가 차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차를 이끌고 이 동네를 벗어났다. 아예 내비게이션에서 서울을 목적지로 설정해 고속도로로 나갔다. 


하지만 너무 졸려서 당장 장거리 운전을 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달리다가 가장 가까운 휴게소로 갔다. 그리고 찜찜했지만 차에서 제대로 못 챙긴 잠을 잤다. 오히려 차에서 자니 더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제대로 누워서 잔 것이 아니라 몸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휴게소 식당에서 밥을 시켜먹었다.


밥을 먹으며 나는 어제 잔 모텔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지 인터넷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괴담 같은 것도 없었다. 단지 모텔에 대한 좋은 후기만 보였다. 도대체 내가 지난 두 번의 밤 동안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요새 기분이 좋지 않아서 비슷한 악몽을 꾼 것이었을까?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 와서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두 번 다 침대에서 떨어진 것일까? 그 어떠한 대답도 내릴 수 없는 아주 찝찝한 상태로 나는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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