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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11. 2022

7월 11일 김준형의 하루

사무용 노트북 고장

준형은 '오늘 커피를 마시지 말걸'이라고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평범한 사무실의 아침에서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준형은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준형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은 일이 신나서는 아니었다. 매일 아침, 하기도 싫은 업무를 하기 전에 그가 항상 하던 의식 같은 것이었다. 준형의 아침 일상이라 주변에서는 이제 신경도 안 쓰는 그런 행동이었다. 

준형은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옆 자리의 정대리가 준형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 준형에게 묻는 것이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라 준형은 의자를 돌려 정대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기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사건은 준형이 의자를 다시 노트북 쪽으로 돌리면서 시작되었다. 준형은 지금 의자를 돌리는 방향으로 가면 커피가 담긴 머그컵과 자신의 팔이 닿는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준형이 자신의 팔이 머그컵과 닿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준형이 ‘어? 어?!’ 하는 사이, 머그컵 안에 담겨있던 뜨거운 커피가 그대로 쏟아졌다. 차라리 바닥이나 책상에 묻었으면 그냥 냄새가 나고 말 것이었겠지만 커피는 그대로 노트북의 키보드를 향해 쏟아졌다.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정대리도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사자인 준형은 바로 휴지를 꺼내 노트북부터 닦아냈다. 키보드에 휴지를 대며 박박 긁어대니 노트북 화면에는 [ㅇㅁㄴㅇㄹㅈㄷㄴㄹㅈㅂㄹㅎㅂㅈㅇㄴㅇㅈ ㄱ2ㄷㅎㄱㄹㅍㄴㅁㅇ]같은 기괴한 문자가 입력되기 시작했다. 준형은 문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오늘 작성해야 하는 문서의 뒷면에 이런 문자들이 입력되고 있었다. 준형은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옆에 있던 박과장은 일단 노트북 전원부터 끄라면서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준형은 자신이 오전에 작성하고 있던 문서가 아직 저장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박과장을 말리려고 했지만 노트북 화면은 그대로 꺼졌다. 준형은 박과장이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트북 키보드와 책상, 그리고 바닥까지 모두 깨끗하게 닦은 준형은 화장실로 가서 커피 냄새가 밴 자신의 손을 깨끗하게 씻었다.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준형의 손과 자리, 그리고 노트북에서 커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준형은 다시 한번 책상과 노트북을 닦고 자신의 손을 씻는 행동을 반복한 다음에야 자리에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준형은 노트북을 켜서 오전에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다행히 노트북은 잘 켜졌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키보드가 입력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커피가 안 묻은 쪽은 문제가 없었지만 그런 것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었다. 일부라도 입력이 되지 않으면 준형은 오늘 업무를 처리할 수가 없었다. 준형은 난감했다. 

그때, 박과장은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를 준형에서 슬쩍 내밀었다. 박과장은 자신이 쓰는 건데 일단 자기 것을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후에도 키보드가 돌아오지 않으면 수리점 가서 고치고 오라고 했다. 준형은 박과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블루투스 키보드 연결은 성공했고 준형은 일단 오전 업무를 큰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업무가 정리되자 준형은 장비 담당을 하는 부서에 연락해서 노트북이 고장 난 경우의 대처방안을 물었다. 장비 담당을 하고 있는 이대리는 준형에게 이런 경우에는 사측이 아닌 개인의 잘못이기 때문에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이대리는 노트북 수리를 오랫동안 맡겨야 하는 경우에는 몇 개 서류를 더 쓰고 임시 노트북을 받아서 업무를 잠시 진행해야 한다고 준형에게 말했다. 

준형에게는 다행히도 노트북은 대기업 것이었고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비스센터가 있었다. 준형은 부서장에게 보고하고 점심시간을 일찍 쓰는 방식으로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준형은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서비스센터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대기표를 받기는 했지만 점심시간 1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준형은 시계를 계속 확인하며 초조해했다.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자 준형은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들은 부서장은 업무와 관련된 것이니 천천히 오라고 했다. 대신 노트북 수리가 오늘 안 되는 경우에는 바로 돌아오라고 했다. 

1시간 정도 기다리자 준형의 차례가 되었다. 준형은 서비스 기사에게 노트북을 보여줬다. 서비스 기사는 노트북의 상태를 천천히 확인했다. 한참을 확인하던 서비스 기사는 고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핸드폰으로 현재 시간을 확인한 준형은 맡겨놓고 나중에 찾아와도 되냐고 서비스 기사에게 물었다. 서비스 기사는 가능하고 준비가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연락처를 남긴 준형은 서비스 기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바로 센터를 빠져나왔다.

준형은 장비 담당자인 이대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대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대리는 임시 노트북을 내어주겠다고 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형에게 내밀었다. 서류는 꽤나 많았다. 이대리는 노트북 수리가 끝나면 서비스센터에서 받아와야 할 서류도 있다고 했다. 또한 비용을 준형의 사비로 집행했다는 영수증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수많은 서류를 쓰고 준형은 임시 노트북을 받았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굉장히 투박한 노트북이었다. 노트북 본체보다 더 투박한 충전기까지 받은 준형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팀원들은 준형에게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결국 노트북 수리까지 맡기게 된 준형의 사연을 듣고는 다들 안타까워했다. 

준형은 노트북을 켜고 준형의 아이디로 인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할 준비를 마쳤다. 임시 노트북은 원래 준형의 노트북보다 훨씬 느렸다. 다행인 것은 준형의 회사의 업무 자료는 대부분 클라우드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업무 파일은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문서 작업이 주된 업무라 컴퓨터 사양이 그리 높을 필요는 없어 준형은 견딜만했다.   

서비스센터를 다녀오느라 업무 시간을 많이 써버렸고 밥도 먹지 않아 배가 무척 고픈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맡은 일은 끝내야 했기에 준형은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평소라면 지금 시간 정도에 커피를 한 잔 더 마셨겠지만 준형은 오늘은 더 이상 커피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오후 일과를 거의 마칠 때쯤 서비스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노트북을 다 고쳤다는 내용이었다. 준형은 부서장에게 허락을 받고 다시 서비스센터로 갔다. 서비스 기사는 준형에게 노트북을 보여주면서 모든 키가 잘 눌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준형은 서비스 기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접수대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요청했다. 그리고 수리비를 알게 되었는데 꽤나 많이 나왔다. 그래도 메인보드나 다른 곳까지 나간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고는 했지만 준형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지출이 생긴 것이라 마음이 쓰라렸다.

준형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 임시 노트북을 들고 이대리를 만나러 갔다. 이대리는 노트북이 잘 작동하는 것을 보고 준형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준형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절차대로 다시 임시 노트북에서 로그아웃하고 반납했다. 준형은 서비스센터에서 받은 서류와 영수증을 이대리에게 줬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준형은 자신의 노트북을 모니터에 연결했다. 노트북에서는 여전히 커피 냄새가 났다. 그리고 퇴근할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준형이 해야 할 업무들은 조금 남아있었다. 준형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야근비 수당이라도 받아 노트북 수리비를 조금이라도 메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준형은 ‘오늘 커피를 마시지 말걸’이라고 하루 종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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