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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12. 2022

7월 12일 이종호의 하루

사내 권력 싸움

종호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거나 업무에 대한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언젠가 자신이 회사의 임원이 되고 말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종호는 그것이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종호는 권력지향적인 성격이었다. 학교에서 반드시 반장이 되려고 했고 학생 회장 선거에서 졌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람처럼 울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종호는 재수까지 했지만 원하는 대학으로 가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다른 직업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종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종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늦게 취업을 준비했다. 그는 대기업에 가서 능력 좋은 직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문턱은 너무 높았고 종호는 백수로 지내야 했다. 결국 종호는 눈높이를 낮췄고 조금 늦은 나이에 중견 기업에 취업했다. 충분히 탄탄한 회사였고 종호가 원하는 데로 언젠가 대기업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종호는 절망하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


종호는 취업한 곳에서 임원이 되어 자신의 못다 한 야망을 채우기로 하였다. 물론 종호는 평사원이 지금 규모의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능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종호는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가 가진 진짜 능력은 다른 사람을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입사 후, 종호는 회사의 권력 구조를 면밀히 살폈다. 누가 힘이 있는지, 지금은 누구의 말을 듣더라도 결국에는 어떤 사람의 편을 들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 누가의 눈에 들어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종호는 먼저 자신의 팀원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직원이 되고자 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야근까지 하면서 신입 사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칭찬이란 칭찬은 모두 받았다. 주변에서 종호는 아주 성실한 신입이었다. 그다음으로 종호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며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종호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종호는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종호는 자신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결국에는 자신의 팔을 들어줄 수 있게 유도하였다.

종호는 언변의 귀재이기도 했다. 그의 화법은 아주 간단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대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자신의 말을 따르게 유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이 결국 종호의 말을 들어줬다는 것을 거의 인지하지 못했고 나중에 인지한다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인데 종호는 절묘하게 선을 넘지 않았고 그리 힘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종호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종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종호의 앞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종호는 그런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종호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했다. 단순히 정치력만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 능력으로 직위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종호에게 회사는 너무나 재미있는 곳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위와 함께 책임과 권한이 강해지는 경험도 종호에게는 보람찬 일이었다.

작년, 종호는 마침내 회사 부장 자리에 올랐다. 회사에서는 최연소 부장이었다. 종호는 어느새 라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종호 역시 회사에서 가장 강력한 라인을 잡고 있었다. 종호는 그 사람을 따르기만 한다면 꿈에 그리던 임원이 될 수 있었고 종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종호에게 충성하기만 하면 회사 생활을 순탄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종호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경력직으로 들어온 정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정부장은 대기업 출신의 인재로 꽤나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부사장과의 인연으로 지금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종호에게는 꽤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부사장은 종호의 라인과는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종호가 충성하고 있는 사람은 나전무였는데 그는 향후 회사를 물려받을 사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부사장은 한때 가장 신뢰받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회장의 눈밖에 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종호가 나전무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부사장 라인이 여전히 건재하는 것은 사실이었고 종호는 그것이 너무 거슬렸다.

처음에 정부장은 자리에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종호는 사람을 잘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정부장을 떠보면서 혹시 자신의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한적 하려고 별 짓을 다했다.

그러나 사실 정부장은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종호 같은 스타일을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종호를 멀리하려 했다. 종호가 거는 수작을 모두 눈치채고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종호는 정부장이 점점 싫어졌다.

매일 아침 종호는 정부장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출근한다. 회사에서는 어느새 정부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사장이 회장의 눈밖에 나있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는 점도 불안한 부분이었다. 사장은 사실 나전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사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종호는 자신이 라인을 잘못탄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에 시달렸다. 종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을 때, 그 마지막 순간에 실수하거나 잘못 행동해서 모든 것을 망쳤던 순간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실패는 메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종호는 또다시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불안해졌다.

오늘 정부장은 종호에게 저녁을 같이 먹을 것을 제안했다. 종호는 정부장이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정부장에게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부장은 종호에게 힘을 같이 합쳐 회사를 더 잘 성장시키자고 말했다. 일종의 동맹 제안이었는데 종호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부장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종호는 어쩌면 정부장이 승리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호는 자신의 라인이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지금 정부장에게 굴복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종호는 조금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정부장의 제안에 감사하면서도 너무 당연한 것을 말해서 따로 할 말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둘 간에는 조금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종호는 대리 기사를 불러 자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종호는 절대 자신이 정부장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때, 종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전무의 전화였다. 뒷좌석에 누워있던 종호는 자세를 고치고 바른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나전무는 짧게 무언가를 종호에게 전했고 종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전문와 통화를 마친 종호는 그대로 힘이 풀려버렸다. 입술과 손이 파르르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창밖을 쳐다봤다. 서울의 야경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쓸쓸해 보였다. 종호는 이제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대리 기사는 자신의 손님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는 빨리 종호의 집에 도착해서 이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집에 도착한 종호는 한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기사가 몇 번이나 종호에게 내리라고 말한 다음에야 종호는 차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종호는 땅바닥에 한참 앉아있었다.

종호가 이렇게 오랫동안 충격을 받은 이유는 나전무의 전화 내용 때문이었다. 나전문가 종호에게 전한 말은 아주 짧았다. 나전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종호는 과거의 자신이 다시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에 무너지는 자신 말이다. 그제야 종호는 정부장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게 되었다. 종호는 울고 싶었지만 이제 울음이 나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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