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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04. 2022

9월 4일 임세호와 유송아의 하루

냉장고 털이

“뭐 먹을래?”


“글쎄….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 거 아무거나 먹자.”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핸드폰만 보던 세호와 송아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주말이면 보통 배달 음식을 시켰지만 배달비가 지나치게 올라 부담이 되던 세호는 오늘은 냉장고 털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송아는 냉장고를 확인하더니 점심 저녁을 챙겨 먹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세호에게 말했다. 둘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점심과 저녁에 식사와 설거지 당번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가위바위보 결과 점심은 세호가, 저녁은 송아가 각각 식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식사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자동으로 설거지를 해야 했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둘이 같이 일은 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세호와 송아는 연애 4년 차의 커플이다. 올해 3월부터 동거를 시작하면서 집세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지만 식대비에 대한 부담은 크게 줄지 않았다. 평일에는 같이 식사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주말에는 대부분 배달로 식사를 해결했다. 냉장고에는 냉동 음식, 밀키트,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보내준 반찬거리가 있었지만 세호와 송아는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오늘 점심 세호가 선택한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며칠 전 사둔 나물류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려고 한 것이었다. 세호는 간단히 재료만 손질하고 빠르게 비빔밥을 먹을 준비를 마쳤다. 세호는 비빔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빠르게 김치찌개를 끓였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이것저것 넣었기 때문에 김치찌개보다는 잡탕찌개가 되었지만 세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송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송아는 세호에게 저녁때 뭘 만들어 먹을지 물었다. 세호는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송아는 그러면 그냥 냉동 만두랑 2주 전에 남은 냉동 고기를 적당히 구워서 먹자고 했다. 세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둘 사이의 대화는 그 이후 다시 끊겼다.

송아가 점심때 사용한 그릇을 설거지하는 동안 세호는 집안을 환기시키고 청소기를 돌렸다. 송아는 이불 빨래도 같이 해줄 수 있냐고 세호에게 물었다. 세호는 자신이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릴 테니 송아에게 건조기만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송아는 오늘 날씨가 좋고 다른 이불도 있으니 세탁비도 아낄 겸 오늘은 집에서 빨래를 돌리자고 제안했다. 세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자고 했다. 

각자의 집안일이 끝나자 세호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송아는 의자에 앉아 책을 봤다. 집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하지만 평화로운 침묵이었다. 

다시 밥을 먹을 시간이 찾아왔고 송아는 약속대로 만두와 고기를 준비했다. 특별히 어려운 것도 없어서 음식은 빠르게 만들어졌다. 세호는 송아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둘 사이에는 저녁 시간에도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각자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둘은 서로를 대했다. 하지만 서로의 핸드폰을 보면서도 각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귀신같이 눈치채고 챙겨줬다. 침묵은 이어졌지만 둘 사이의 호흡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식사 후에도 둘은 서로 간의 약속된 일을 말없이 했다. 세호는 설거지를 하고 송아는 새로운 이불을 꺼내 잠자리를 준비했다. 일을 마친 이후에는 다시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세호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봤고 송아는 노트북을 꺼내 내일 자신이 해야 하는 업무를 정리했다. 계속 핸드폰을 보던 세호는 졸리다며 먼저 씻고 자겠다고 했다. 송아는 세호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다시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가서 헤드폰을 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가 끝나자 송아도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친 송아는 집안의 불을 끄고 먼저 잠든 남자 친구의 옆에 누웠다. 송아는 잠시 핸드폰을 하다가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집 안에는 이제 완전한 적막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평화로운 적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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