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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25. 2022

9월 25일 송지원의 하루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오늘 있을 공연을 위해 우리 밴드는 다양한 노래를 선곡했다. 밴드 멤버들의 최애곡 하나씩과 정말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노래 한곡, 그리고 밴드 동아리 1기 선배가 작곡했다고 하는 대표곡까지…. 우리는 우리의 셋리스트를 완성하고 한 달이 넘게 공연 준비를 했다. 

이번 공연은 나에게도 뜻깊었다. 동아리의 대표 밴드의 메인 보컬로 내가 데뷔하는 무대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동아리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된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원래 메인 보컬이었던 형이 갑자기 밴드를 그만두면서 생긴 기회였기에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밴드 멤버들이나 동아리 선배들이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배들이 나를 응원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동아리 대표 밴드의 메인 보컬이라는 이유로 나를 더 엄격하게 대하기도 했다. 특히 노래를 하는 데 있어서 틀리거나 가사를 잘못 말하는 경우에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건 다 괜찮았다. 내 실수가 있으면 고쳐야 하는 것이 맞았으니까. 그런데 이른바 지적 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유형은 바로 노래를 부르는 감정으로 나에게 시비를 걸 때였다.



“그 노래, 그 감정으로 하는 게 맞아?”


며칠 전, 동아리에서 유난히 시니컬하던 준호 선배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워낙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라 그의 말에 함께 연습하던 연주를 멈추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아… 형. 죄송해요. 감정 다시 잡아볼게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준호 선배를 향해 말했다.


“그 곡. 네가 선정한 거 아니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감정이 맞아?”


반복되는 지적에 나도 모르게 얼굴 표정이 굳어 버렸다. 감정? 그래, 선배가 생각하는 감정은 그래서 뭔데요?


“다시 노래해보겠습니다. 다들 죄송해요. 처음부터 다시 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밴드 멤버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연주를 처음부터 할 것을 제안했다.


“응 괜찮아. 괜찮지. 준호 형 말대로 다시 감정 잡고 시작해보자.”


밴드의 리더이자 내가 인정하는 멋진 기타리스트인 성민이 형이 밴드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성민이 형의 멋진 연주로 다시 우리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Here comes the rain again

Falling from the stars~



“아니지, 지원아 그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또다시 준호 형이 방해했다. 밴드 멤버들은 연주를 멈췄고 성민이 형도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최준호. 뭐가 문제인데?”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성민이 형이 준호 형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소리는 왜 또 지르고 그래? 네 연주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 지원이 노래가 부족하다는 거야.”


준호 형은 성민이 형 쪽을 힐끔 보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노래 무슨 내용인지 알지? 빌리 조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곡이야. 단순한 곡이 아니라 그런 슬픔도 노래해야 한다고. 빌리 조의 라이브를 보면 가끔 옛 생각에 울컥하면서 노래를 부르잖아? 그런데 네 노래에는 그런 감정이 없어.”


준호 형의 주장은 너무나 황당했다. 원작자의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니? 너무 어처구니없는 시비였다. 준호 형이 말하는 노래의 감정을 이야기하기엔 나는 겨우 초보 보컬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노래의 사연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라 나도 최대한 원작자의 감정을 녹여서 부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너무 황당했다.


“최준호. 네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디 무슨 경연 대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얘가 무슨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우리끼리 연습하는데서도 이런 말을 해야겠냐? 그리고 다른 곡 연습할 때는 왜 그런 지적은 안 한 거야?”



성민이 형이 차분하게 준호 형에게 항변했다. 준호 형 쪽을 쳐다보니 그는 별다른 표정 변함없이 성민 형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거 송지원이 선곡한 거 아니야? 자기가 자신 있는 곡인데 이렇게 밖에 안 부르니 내가 지적하는 거지. 송지원! 내 말이 틀려?”


“아닙니다. 형. 저도 최대한 그래도 감정 살리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나는 마이크 줄을 꼬면서 준호 형에게 대답했다. 할 말은 많지만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대표 밴드의 메인 보컬이잖아? 내가 이런 지적도 못 하는 게 어이없다. 다들 내가 불편해? 현우는 정말 잘했는데…. 걔가 그립다.”


“야!! 최준호!!!”


예전 보컬인 현우 형 이야기까지 꺼내며 나와 비교하는 준호 형의 태도에 성민이 형은 진심으로 화를 냈다. 심각성을 깨달은 다른 사람들이 둘 사이를 중재했다. 결국 준호 형이 화를 못 참고 동아리 방을 나가고 나서야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 현우는 현우고 너는 너야.”


성민이 형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형. 감정 표현하는 거 조금 더 생각하고 노력해볼게요. 공연 얼마 안 남았는데 제가 죄송하네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성민이 형한테 대답했다. 우리는 다시 연습을 시작했지만 누구 하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화 없이 연주와 노랫소리만 들리는 침묵의 연습을 3시간 정도 더 하고 그날의 연습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며 내가 선곡한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보컬의 감정에도 집중했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보컬의 감정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싶었다. 


내가 선곡한 노래는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라는 곡이었다. 밴드의 보컬인 빌리 조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일종의 추모곡이라고 할 수 있다. 준호 형의 말처럼 빌리 조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가끔 눈물을 흘리고 했다. 실제로 빌리 조의 아버지는 빌리 조가 10살 때 돌아가셨고 어린 소년은 매일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울었다. 어머니는 매일 우는 아들을 걱정했고 아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줬다. 그런 어머니에게 어린 빌리 조가 한 말이 바로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였다. 빌리 조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9월 1일이었다. 

이 노래는 빌리 조 개인의 노래이기도 했지만 모든 미국인의 노래이기도 했다. 9.11 테러 희생자를 위한 노래이기도 해서 지금도 9월이 되면 미국에서 많이 들린다고 한다. 

노래 자체는 쉬운 편이지만 감정을 살리라고 하면 참으로 어려운 곡이기는 하다. 준호 형의 지적은 아마도 이런 데서 출발한 것 같고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다만 준호 형이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거칠고 감정적이라서 문제지….

나는 노래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원작자의 감정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빌리 조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아직 우리 가정은 너무 화목했고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노래에 그런 감정을 실어서 불러야 한다면 어떻게든 상상을 통해 감정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의 데뷔 무대인데 후회만 하고 싶지 않았다. 수천번을 불러서라도 내 노래로 만들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했다.

다음 날, 나는 또 준호 형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똑같은 지적을 당했다. 성민이 형은 이번에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리고 또 다음 날도 나는 노래를 불렀고 준호 형은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악착같이 이 노래를 완벽히 소화하려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준호 형이 만족할만한 노래가 나왔다. 준호 형의 표현에 따르면 100%가 아닌 60% 정도 왔다고는 했다. 나는 그런 준호 형이 야속하면서도 내가 어느 정도 해낸 것 같아 기뻤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노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혼신의 노력 끝에 무대에 선 우리 밴드는 관객들에게 최상의 공연을 보여주려고 했다. 관객들은 열광했고 우리도 우리의 연주와 노래에 후회가 없었다. 공연이 무르익었을 때쯤, 드디어 문제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부를 시간이 찾아왔다.


“다음 노래는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입니다. 누군가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노래인데요. 다들 마음속에 다양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으실 텐데요. 이 노래로 마음속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예정되지 않은 멘트를 관객들에게 했다. 멤버들은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윽고 박수를 쳐줬고 관객들도 큰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성민의 형의 기타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내가 노래를 부를 순간이 다가오자 나는 그동안 연습했던 모든 감정을 담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데뷔 무대,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늘 나는 후회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Summer has come and passed

여름은 또다시 흘러가고

The innocent can never last

선한 이도 언제까지나 세상에 머물 수는 없겠죠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 주세요

Ring out the bells again

또다시 종을 울리죠

Like we did when spring began

봄이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 주세요




https://youtu.be/22dvKCjsI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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