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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Sep 30. 2022

9월 30일 김형주의 하루

버티기 

회사 무엇 때문에 다니는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나의 발전을 위해? 아니면 단순히 취업을 했기 때문에?

10년 전, 내가 지금 회사에 취업을 했을 때는 오직 돈 때문이었다. 취업을 하면 내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회사를 다니고 나니 재미있었다. 내 주위 사람들도 마음에 들었고 그들과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공부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었던 실전을 익히고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회사에 많은 돈을 가져다주는 것을 보며 보람도 느꼈다. 나는 아직 말단 직원이었지만 내 명함에 찍힌 회사 간판을 보고 나보다 나이 많고 경력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명함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회사 담당자를 소개해줄 수 없냐고 물었을 때는 나는 마치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업무의 특성상 대행사들과 많이 일을 해야 했는데 이들은 내 한마디, 한마디를 어려워했고 어떻게든 내 비위를 맞춰주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의 태도가 부담스럽고 죄송스러웠지만 언젠가부터 내 모습은 익숙해졌다. 소위 말하는 갑질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어 후회스러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한때였다. 연차가 쌓일수록 나에게는 내가 하는 업무와 방식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대행사를 굉장히 잘 쪼는 스타일이라 붙은 별명이었다. 그렇게 상대방을 쫘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냈다. 나는 몇 년간 일에 미쳐 살았고 나 자신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행사에 다니고 있는 아주 친한 친구와 일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나도 친구 한 테만큼은 도저히 난리를 부릴 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친구에게 좋게 설명하려고 했고 일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친구는 자신의 회사에서 내 소문이 얼마나 안 좋게 났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나도 건너 들어서는 알고 있었지만 친구를 통해서 들으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내 업무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실적은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실적이 떨어지니 이번에는 회사가 나에게 뭐라 뭐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내 스타일을 바꾸면서도 실적을 올리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매일 우울한 상태로 출근했었다. 실수도 잦아지고 그걸로 다시 혼나기도 했고 결과를 잘 내보려고 한 일이 최악의 결과가 된 적도 있었다. 결국 나는 부서를 옮기는 조치를 당했다. 

단순히 업무 스타일을 바꾸면서 생긴 변화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말 못 할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은 새로 옮긴 팀의 팀장님이었다. 팀장님은 새로 옮긴 팀도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니 내가 좌천된 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는 매일 같이 나를 챙겨주면서 업무를 가르쳤고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왔다. 그는 나의 은인이었다. 팀장님 덕분에 나는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팀장님과 나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팀장님은 창업을 하겠다며 작년에 퇴사를 해버렸다. 우리 팀의 과장님도 팀장님이 데려갔기 때문에 나는 내심 나도 데려가는 것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아쉬워하자 팀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자기는 모험을 하러 떠나지만 지금은 회사 안에 있는 것이 좋을 것이고 그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다. 그렇게 팀장님은 우리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팀장님이 떠난 이후,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는데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된 사람이었다. 업무적으로 다양한 성과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 팀에서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 사람같이 보였다. 약간 미심쩍었지만 나는 새로운 팀장 밑에서 그가 시킨 업무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팀장은 소위 말하는 입만 산 사람이었다. 사내 정치와 자신의 네트워크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 조직 관리 측면에서는 능력치가 0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업무를 배분할 줄도 몰라서 우리끼리 혼란을 겪을 때가 많았다. 일은 빨리 진행되지 않고 우리가 보고한 내용은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지도 않았다. 예전 팀장님이 있었을 때는 한 달이면 끝났을 일이 지금 팀장 아래에서는 두 달이 넘도록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팀에 대한 회사의 신뢰는 점점 적어지고 있었고 원래라면 우리가 했어야 할 업무를 다른 팀에서 맡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팀장은 전혀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실적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리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업무에 대한 흥미를 크게 잃기 시작했다. 결과로 나오는 것도 없어 내 성과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대로 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체 퇴근했다. 그저 퇴근할 때 ‘퇴사하고 싶다’면서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은 반년 넘게 반복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목적의식도 없어졌다. 그냥 나는 출근하고 퇴근하는 기계가 되었다. 

회사는 무엇 때문에 다니는 걸까? 몇 달을 고민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답이 있었다. 바로 용기가 없어서 회사를 다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이직을 준비하고 싶어 구직 사이트를 들어갔다. 어느 회사에 지원할지 고민했지만 우리 회사보다 좋은 조건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받는 연봉, 그리고 회사와 집의 거리 등 현실적인 요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회사의 네임 벨류. 이 회사를 나가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다. 이직을 한다면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더 이름 있는 회사로 이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남는 것은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몇몇 회사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회사들을 지원할 수는 없었다. 막상 지원하려고 보니 면접이나 서류에서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 내가 10년 가까이 쌓아온 경력으로 그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나 스스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구직 사이트면 3시간 넘게 보고 컴퓨터를 껐다. 나는 이직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새로운 거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있다.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비슷한 시간에 퇴근을 했다. 회사와 상사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찌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어쩌면 이직이라는 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회사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상사가 아무리 별로여도 이직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예전 팀장님처럼 용기 있게 밖으로 나갔다가 더 큰 시련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회사에서 버티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매일 밤 이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내가 도망갈 이유는 없다.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 나는 회사를 지금 버티기 위해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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