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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19. 2022

10월 19일 한상혁의 하루

숟가락 얹기

상혁은 회사에서 오래된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간단히 메일을 체크한다. 정말 메일을 체크하는 정도라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그는 관심이 없다. 정말 중요한 내용은 밑에 있는 실무진이 체크할 것이고 만약 상혁의 컨펌까지 있어야 하는 내용이면 아쉬운 사람이 따로 연락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일 체크를 마친 이후에는 밑의 직원들의 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업무 피드백은 아니다. 거의 시비에 가까운 참견, 혹은 그냥 지나가는 말에 가깝다. 직원들은 그래서 상혁의 지적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그다음에 상혁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게임을 한다. 상혁이 5년째 하고 있는 게임이다. 이제 질릴 만도 하지만 상혁은 여전히 재밌어하는 게임이다. 게임을 하다가 상혁은 컴퓨터에서 지도를 검색하며 근처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를 찾는다.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간은 상혁이 출근한 지 1시간 정도가 겨우 지난 시점이다. 점심까지는 아직 2시간 이상 남아있지만 상혁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메뉴를 고른다. 회사가 지금 위치로 옮긴 지 5년 이상이 되었기에 근처 맛집, 맛없는 집 모두 꾀고 있는 상혁이지만 그는 여전히 점심 식당을 찾는데 고도의 집중력을 사용한다. 


“저, 오늘 디자인 시안 확인 부탁드릴게요. 괜찮으시면 간단하게 보고도 하고 싶습니다.”


업무 말고 다른 짓이나 하고 있는 상혁을 다시 업무로 불러오는 사람은 밑의 직원이다. 상혁에게 보고할 것이 있는 수민은 자신의 상사를 굉장히 한심하게 보고 있지만 표현하지는 못 하고 속으로만 한숨을 쉰다. 


“어? 그게 무슨 일이었지?”


수민은 익숙한 듯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을 보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한다. 상혁은 그제야 자신이 오늘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아 그거 알지 알지. 바쁜데 무슨 보고야. 그거 파일 그냥 보내주면 내가 확인할게요.”


“파일 메일로 어제 보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수민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는 것은 오직 상혁이다. 


“아니, 그런 것은 메신저로 보내지. 왜 메일로 보냈어요?”


“어제 메일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상혁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려 하지만 이미 그의 수는 수민에게 읽힌 다음이다. 


“그럼 확인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거 말고도 말씀드릴 것도 있는데… 급한 것은 아니니 시간 괜찮으실 때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 그래요.”


수민은 상혁의 말을 듣자마자 자기 자리로 휙 가버린다. 상혁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고 메일을 다시 확인한다. 이미 읽음 처리된 수많은 메일 중 수민의 메일을 찾는 데 성공한 상혁은 그녀가 보낸 파일을 확인한다. 상혁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본다. 그리고 무언가를 본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수민을 부른다.


“네. 확인하셨나요?”


“그래요. 확인했는데 이 부분 이거 있잖아. 이번 이벤트랑 조금 안 맞는 거 같아요. 느낌이 좀 파랗네요.”


수민은 상혁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른다. 피드백도 이상하고 그래서 무엇을 수정하라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민은 이번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음…. 수정해보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조금 다듬을게요.”


“네? 하실 줄…. 아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야 수민은 조금 동요한다. 디자인 시안을 상혁을 직접 수정하는 것을 그녀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민은 자신이 작업한 것을 누가 직접 수정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

.

.


1시간 후, 상혁은 수민을 다시 부른다. 그는 수민에게 디자인을 수정했으니 이대로 진행하라고 한다. 수민은 상혁이 수정한 파일을 확인한다. 변한 게 없다. 수민은 다시 속으로 한숨을 쉰다. 상혁은 자신이 파일을 이대로 진행하겠다고 본부장에게 보고 하겠다고 한다. 수민은 짜증이 몰려오지만 참는다. 상혁은 수민이 작업한 내용을 본부장에게 보고 하고 본부장은 상혁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오전의 업무가 끝나간다.



“그래서 또 그 사람은 숟가락 얹기를 한 거야?”


“항상 그런 식이지 뭐. 지가 뭘 안 다고 계속 간섭인지 모르겠어.”


점심시간이 되자 수민은 동료들과 함께 상혁을 흉보면서 밥을 먹는다. 그들의 대화 주제에는 상혁이 단골로 등장한다. 누구 한 명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다른 사람이 상혁에게 입은 피해를 공유하는 식이다. 

그리고 상혁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상혁은 현재 회사의 디자인 파트 업무를 맡고 있지만 그는 원래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혁은 원래 마케팅 실무를 하다가 디자인 파트의 팀장이 공석이 되자 임시로 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상혁이 디자인에 대해서 완전히 문외한은 아니지만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정말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상혁이 컨펌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에 시비를 걸고 자신의 공을 조금이라도 얹어 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모든 공은 자신에게 돌린다. 만약 잘못될 것 같은 일이 있으면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 하고 만약 들어오면 다른 사람의 책임이 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상혁이 현재 회사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왜 그런 사람을 회사는 안 자를까?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하는 것도 없잖아?”


“어디서 보니까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의 마인드와 우리 같이 실무를 하는 사람의 마인드가 다르다고 하더라.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을 안 자르고 일을 더 시키는데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끔찍하지만 일단 일은 어떻게든 굴러가게는 하잖아.”


직원들은 상혁을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다. 직원들이 생각하는 것과 상혁이 생각하는 것, 그리고 회사 경영진이 생각하는 것이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

.

.


“오, 소진님. 이번에 하는 일 그거 우리가 잠깐 도우면 안 될까요?”


“네? 아하…. 네 뭐 도와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오후 업무 시간. 상혁은 다른 팀의 팀장인 소진을 만나 그들이 하는 일에 자신들도 끼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회사에서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젝트로 성공할 가능성도 많은 것이다. 상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몫을 챙길 속셈으로 소진에게 다가간 것이다. 소진이 상혁의 노림수를 눈치 못 챌 사람은 아니었지만 대놓고 상혁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일단 알았다고 한다. 소진 역시 상혁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참견을 하고 숟가락을 얹으며 자신의 성과를 챙긴 상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는 5년 동안 한 핸드폰 게임을 다시 한다. 게임을 하다 지겨워지면 컴퓨터로 여행지를 검색한다. 그는 주말에 어디를 놀러 갈 생각이다. 상혁은 주위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핸드폰과 컴퓨터로 딴짓을 한다. 그렇게 상혁의 하루는 마무리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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