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Oct 20. 2022

10월 20일 임현지의 하루

예의

“안녕하세요. 팀장님 여러분. 요새 많이 바쁘시죠? 바쁜데 잠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 및 사내 문화를 만들고 있는 현지는 회사의 팀장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급한 업무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현지님도 고생 많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마케팅팀의 수정이 현지에게 물었다. 


“아 네. 바로 본론으로 갈게요. 얼마 전 대표님이 요새 들어온 직원 분들이 아주 간단한 직장 예절 같은 걸 모르는 것 같다고 하셔서요. 저희가 꽉 막힌 기업은 아니고 외국식 자유로운 문화를 추구하긴 하죠. 하지만 다른 회사와 커뮤니케이션하거나 내부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맞어. 요새 그 MZ 애들은 조금 개념 없는 것 같아!”


잠자코 듣고 있던 영업 2팀의 민석이 반응했다. 그가 말하자 다른 팀장들도 “맞아, 맞아”라며 동의했다. 회사 내에서 이른바 꼰대 라인으로 통하는 팀장들이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모두 MZ 중 M에 해당하는 세대였지만 현지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흠…. 일단 젊은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자! 이런 것은 당연히 아니고요. 간단하게 말하면 메일을 보내는 법부터 명함을 주고받는 방법, 직원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 외부 손님이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매뉴얼로 만들어서 교육을 시키면 어떨까라는 것이 대표님과 저희 팀의 결론이었습니다.”


“매뉴얼?”


재무팀의 진현이 되물었다.


“네. 매뉴얼이고 실제로 PDF로 만들었어요. 지금 보여드리는 것이에요.”


현지는 회의실 모니터에 자신들이 만든 매뉴얼을 팀장들에게 보여줬다. 50페이지가 넘는 파일이었다.


“와…이런 건 또 언제 만들었어요?. 대단하네요. 디자인 요소도 많은데 우리는 이런 거 요청받은 거 없는데요.”


문서를 볼 때 디자인부터 보는 디자인팀의 민경이 물었다. 


“하하…. 저희 인턴이신 희연님이 디자인을 아주 조금 해서요. 어디 외부로 나가는 문서도 아니라서 그냥 저희들끼리 만들었습니다. 디자인적인 요소는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민경님”


“아뇨. 잘 만드셨다는 이야기예요. 희연님이라고요? 나중에 한번 이야기해봐야겠네요.”


마침 디자인팀 인원을 보충할 생각이었던 민경은 파일의 디자인을 굉장히 흥미롭게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쓰는 건가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사팀에서 진행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는 부른 이유는 우리가 뭘 해줬으면 하는 거지요?”


사업팀의 진수가 현지에게 물었다. 


“아 네. 저희가 신입으로 들어오시거나 경력으로 들어오시는 분들, 가리지 않고 입사하시는 분들께는 이 자료를 드리고 간단하게 교육을 할 예정입니다. 물론 경력으로 들어오신 분들에게는 간단히 읽어보라는 식이 될 것이고요. 다만 이미 입사를 하신 분들이 계시니 저희가 회사 전체 직원들에게 이 파일을 배포할 예정입니다. 팀원들이 이게 뭐냐고 하면 팀장님들께서 한번 말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에… 뭐 덧붙이면 대표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아마 느끼셨을 겁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중구난방인 것도 있고 서로 친하게 지내느라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거 하면 꼰대스러워 보일까 봐 망설였는데 그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만든 것이니 여기 계신 팀장님들이 잘 협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현지가 진수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이사를 맡고 있는 승훈이 덧붙였다.  몇몇 팀장들은 ‘왜 이런 것까지 만들어서 꼰대 회사 같이 보이게 하느냐?’라고 하고 싶었지만 승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승훈은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팀장은 이런 분위기를 보고 ‘역시 꼰대 회사 맞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간 현지는 예의범절이 정리된 파일을 전체 직원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메일은 받은 직원들은 회사가 이런 것까지 만드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현지가 만든 파일을 제대로 읽어보는 사람은 적었다. 


“우리는 시험 볼 거야.”


영업 2팀 민석은 팀원들에게 매뉴얼을 숙지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아예 시험까지 보겠다고 했다. 팀원들은 영업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이런 걸 보고 있냐고 앓는 소리를 했지만 민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민석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다 각자의 대응을 했다. 아예 무시하라는 곳도 있었고 시험까지는 아니더라도 꼼꼼히 읽으라는 곳도 있었다. 

현지의 메신저에는 회사 곳곳의 직원들이 문의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파일을 만든 이유서부터 안 읽었을 때의 불이익까지 다양한 문의가 있었다. 현지는 그 모든 내용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선에서, 그리고 혼란을 주지 않는 선에서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현지는 오늘 하루 종일 이 이슈로 바쁠 예정이다.




이전 25화 10월 19일 한상혁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