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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23. 2022

10월 23일 정지형의 하루

연애 후 50일 차 이야기

지형은 올해 생애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에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이 찾아오지도 않았지만 막상 찾아와도 지형은 숙맥이라 실제 연애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그러다 올해 기적적으로 지형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28년 인생 처음으로 연애를 하게 되었다. 

지형의 첫 연애 상대는 동생이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30살이 다 되어가도록 연애 한 번 못하는 오빠를 불쌍히 여긴 동생은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 괜찮은 사람 한 명을 찾았다. 그녀는 동생의 친구의 아는 사람의 직장 동료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형의 동생은 아직까지 오빠의 여자 친구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건너서 받은 연락처를 오빠에게 줬을 뿐이었다. 지형의 동생은 일면식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오빠에게 소개해준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동생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 사람은 지형과 잘 맞는 사람이었다. 지형은 여전히 숙맥이었기에 둘의 연애는 성사되지 않을 뻔했지만 오히려 여자 쪽의 적극적인 구애 덕분에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동생은 무척 기뻤다. 원래는 연락처를 준 사람과 동생, 지형, 그리고 여자 친구까지 함께 만나 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형은 오늘까지 50일째 연애를 하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50일째, 지형은 여자 친구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고작 50일 가지고 뭘 챙기냐고 했지만 지형은 진심으로 여자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지형은 비싼 선물까지 고를 뻔했지만 이 사실을 안 동생의 만류로 그만두게 되었다. 동생은 그 대신 적당히 분위기 좋은 곳에서 밥이나 먹으라고 조언했다. 동생은 오빠를 위하여 직접 데이트 루트까지 짰다. 동생은 그만큼 오빠가 제대로 연애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음… 근데 어제부터 연락이 잘 안 되고 있는데, 문제없겠지?”


“어? 연락이 뭐 얼마나 안 되는데? 카톡도 안 봐?”


“응. 어제 보낸 메시지가 1도 안 없어지는데. 내가 오늘 어디서 볼지 연락 준다고 했는데…. 전화를 해볼까?”


“당연하지 이 바보야. 당연히 전화부터 해야지. 그럼 지금까지 카톡만 했어?”


“응….”


“와 진짜 미쳤나 이 오빠가!!!! 빨리 연락해!!!”


동생은 답답해 죽겠다며 물을 마시러 갔다. 지형은 동생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여자 친구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울렸지만 여자 친구는 받지 않았다. 지형은 여자 친구에게 ‘아직 자고 있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했어?”


동생이 물을 마시면서 다시 지형에게 다가왔다. 


“아니. 안 받는데?”


“아니. 안 받는데???? 그게 대답이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생은 계속해서 지형을 다그쳤다. 


“어…. 그래서 카톡 보냈어!”


“하아…. 저기 오빠 씨. 그 언니 집 주소 알아?”


“어? 아니 모르는데….”


“…. 정확한 주소는 아니더라도 어디쯤 사는 건 알지? 적어도 지하철역이 근처에 뭐가 있는지는 알 거 아니야?”


“사당? 이수? 방배? 그 근처일걸?”


“…. 너 여자 친구 집까지 안 데려다줬니?”


“왜 또 오빠한테 너라고 해. 여튼 안 그랬지. 항상 갈아타는 지점에서 각자 집으로 갔어. 아니면 데이트하고 나는 버스 타고 간 적도 있고.”


“하아….”


동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핸드폰을 들고 자기 방으로 갔다. 그 사이 지형은 계속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여자 친구의 답변은 없었다. 지형은 혹시 여자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동생의 메시지였다. 메시지 내용은 처음 보는 주소지가 적혀있었다. 


“메시지 받았지?”


동생이 다시 지형 앞으로 다가왔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아니 지금 상황이면 뭐겠어? 내가 너 그 언니 소개해준 사람한테 연락해서 주소지 확인한 거야. 둘이 단짝이라서 예전에 같이 산 적도 있데. 아직 그 언니는 그 주소지에 살고 있고. 넌… 아니 오빠는 대체 뭘… 아니 사귀기는 하는 거야?”


“어 사귀지. 얼마 전엔 손도 잡았는걸?”


“아…. 어… 손??? 아… 음… 그래, 그러시군요. 대단한 거 하셨네요. 여튼 그 언니가 몸이 아플 수도 있으니깐 한번 근처 가서 연락하거나 초인종 눌러봐. 와 오빠가 내 오빠가 아니라 내 동생이었으면 지금 진짜 죽었다.”


“하하… 매번 고마워. 지금 가야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아… 적당히 좀 해 오빠.”


지형은 동생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하며 옷을 입으러 갔다. 지형이 옷을 다 챙겨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 지형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 친구의 전화였다. 


“어…. 전화했어?”


지형은 화들짝 놀라며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


지형의 여자 친구가 힘없게 말했다.


“어디 아픈 거야? 나 지금 너희 집 갈까?”


“아니…. 그냥 피곤한 거야. 오빠 우리 집 어딘지 모르잖아.”


“어…. 음… 그래 일단 오늘 만날 수는 있는 거야?”


“응…. 오늘 만나야지. 혹시 괜찮으면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날래?”


“어?? 아 사실 오늘 50일이라서 좀 괜찮은 곳 알아봤거든…아 너 피곤하면 집 근처에서 봐도 되고.”


“50일이 뭐 별거라고…. 고마워 오빠. 오늘은 내가 좀 힘이 없어서 근처에서 보면 좋겠어. 뭐 예약까지 한건 아니지?”


“어? 어어 예약은 안 했어. 괜찮아. 그럼 언제쯤 보면 될까?”


사실 지형은 이미 식당을 예약까지 했었다. 


“그냥 오빠 준비되면 바로 와도 상관없어….”


“응… 바로 준비해서 나갈게.”


“고마워. 내가 장소 카톡으로 보내줄게. 이따 봐.”


“응… 이따 봐 사랑해.”


“…. 오면 연락해.”


잠시 후, 지형의 핸드폰에 여자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어. 여자 친구의 집에서 멀지 않은 카페였다. 지형은 이미 나갈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동생에게 바로 출발한다고 말했다.


“오 연락 왔어? 내가 거기 가면 내가 추천한 메뉴 먹어. 그거 정말 괜찮아. 와인도 마시면 좋고!”


“어…. 그냥 오늘 피곤하다고 집 근처에서 보자고 해서. 그럼 다녀올게. 오늘 고마워!”


“어? 어어… 그래, 잘 다녀와.”


동생은 지형의 말을 듣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녀는 오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그냥 몸이 아픈 거겠지??….”


동생은 불안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괜히 박수를 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

.

.


지형이 집에 돌아온 것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동생은 지형이 늦게 오는 것을 보고 오늘 데이트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지형은 나오지 않았다. 동생은 지형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기다리다가 결국 지형의 방 문을 두드렸다. 


“오빠, 자? 들어간다?”


동생은 방 문을 슬쩍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자? 진짜 자는 거야?”


동생은 혹시나 오빠가 깰까 봐 조용히 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 동생의 귀에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은 놀라 소리가 나오는 곳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던 방이 익숙해진 동생은 이제야 방 안의 상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지형이 침대 구석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던 것이었다. 동생은 놀라 불을 켜고 오빠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아니, 울지도 않던 사람이 왜 갑자기 울고 그래? 무슨 일 있어?”


“흑……하아…. 오늘 나랑…. 그만 만나고 싶다고 그… 래서…”


지형의 말을 듣자마자 동생은 자신의 불안하던 느낌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동생은 설마 헤어지자는 말까지 여자 친구가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잠깐…그 언니, 아니 걔가 헤어지자고 했다고? 아니, 무슨 지난주까지만 해도 사이좋았다며?”


지형은 흐느끼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은 당장 주선자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지금 일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일은 오직 두 사람만의 일이었다. 


“어휴… 진짜, 다 큰 남자가… 그것도 30살 다 되어가면서 이렇게 울고 있어…. 됐어. 내가 다음에 더 좋은 사람 소개해줄게.”


동생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 역시 진심으로 화가 난 상황이었다. 남녀 사이에서 결국 자신의 오빠가 잘못을 해서 결국 헤어짐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것을 동생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동생은 조용히 오빠의 등을 토닥여줬다. 어린 시절, 자신이 울고 있으면 따뜻하게 토닥여주던 어린 오빠처럼 지금 동생은 자신의 오빠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지형이 첫 연애를 한 지 50일 하고 이제 하루가 더 지나갈 무렵, 그의 첫 연애는 끝나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처럼 이별하는 법도 모르는 지형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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