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Feb 20. 2022

2월 20일 송동주의 하루

MBTI 환생

나는 어제 죽었다. 


지금 나는 아주 하얀 공간에 홀로 남겨져있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무엇 때문에 죽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떠보니 이 하얀 방이었다. 아니 방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벽도 바닥도 하얀색이었고 그 경계선마저 보이지 않았다. 문도 보이지 않아 이곳은 하얀 방이라기보다는 하얀 공간에 가까웠다. 자세히 보니 나의 옷도 하얀색이었다. 내 피부와 머리색만 빼고 모든 것이 하얀 공간이었다. 

손목에는 시계가 하나 채워져 있었다. 내가 평소에 쓰던 시계가 아니었다. 아니 이걸 시계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계는 현재 시간을 표시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았다. 시계 화면에서는  2월 19일로부터 몇 시간이 지났다가 표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보고 내가 2월 19일에 죽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현재 내가 죽었다는 것만은 꽤나 명확하게 느껴졌다. 이게 꿈일 거야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나는 죽은 상태로 하얀 방에 있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을 해봤다. 이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어쩌면 나는 하얀 방의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천국의 공간이라 이렇게 하얀색만 있는 것일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까 말했듯이 눈을 떠보니 이 공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죽음 이후의 공간을 다룬 수많은 만화와 영화에서 보이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공간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왜 죽었는지를 계속 기억해내려 했지만 기억하면 할수록 점점 기억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사림이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몇 살이었는지, 가족이 누구였는지, 그 희미한 기억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내 생각을 멈췄다. 조금이나마 있는 생전의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똑똑”


하얀 공간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나는 한 공간에 그동안 없던 선이 있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선은 네모가 되면서 하나의 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문이 열리고 검은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등장했다.


“에…. 이름이 뭐더라….. 아! 송동주 씨죠? 나오세요.”


검은 공간에서 온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보더니 나에게 손짓을 하며 나오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저 사람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아 침을 삼키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검은 공간으로 가는 것인가? 그때 손목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놀란 나는 시계를 쳐다봤다. 시계의 시간은 내가 죽은 지 24시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문밖으로 나오자 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크게 놀랐다. 갑자기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현재 어떤 도시보다 더 고도로 발전된 도시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사람들. 초고층 건물 등 흔히 SF에 많이 나오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여기가 저승인가요?”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며 나도 모르게 나를 부른 사람에게 물었다. 


“네. 다들 놀라더라고요. 도대체 인간 세상에서는 저승을 어떻게 묘사하길래 다들 이리 놀라는지 원….”


나를 부른 사람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요? 저는 지옥으로 가는 걸까요?”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사실 지옥에 가기 싫다는 표현이었다.


“동주 씨는 죄를 많이 지으셨나 봐요? 그냥 자기가 바로 지옥에 갈 거라고 그러네?”


“아? 네 아.. 아뇨… 사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요.”


“설명하기 귀찮긴 한데 동주 씨는 계속 물어볼 거 같아서 대답해줄게요. 아이고 귀찮아. 동주 씨가 방금 있던데는 화이트 룸이라고 해서 죽은 영혼들은 모두 저 방에서 24시간 동안 있게 돼요. 그냥 공허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죠? 그게 지난 생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몸을 조금 가볍게 하기 위해 하는 일이에요. 이 세계에 들어온 영혼들이 모두 겪는 일인 거죠.”


나를 데려온 사람은 퉁명스럽지만 꽤나 자세하게 나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줬다. 화이트 룸이라….. 내가 기억하려면 기억할수록 나의 과거가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그럼 이제 천국으로 가는 건가요?”


나는 이 다음 과정이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아니, 왜 이번엔 천국에 간데? 동주 씨는 자신 있나 봐요?”


그가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 양반에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이런 거 설명할 시간은 없는데 그래도 귀찮지만 대답해 줄게요. 동주 씨는 환생을 하게 될 거예요. 하늘의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몸을 미시고 오시면 환생센터에서 그다음 절차를 진행해 줄 거예요. 그다음은 저도 자세히 몰라요. 제 일이 아니라서요. 그건 그쪽 담당 직원이 설명해 줄 거예요. 그 사람도 귀찮아서 말 안 해주겠지만….”


“환생이요? 놀랍네요. 어제 죽은 것 같은데 바로 환생이라니…. 목욕탕은 왜 가는 거죠?”


“더러우니까요.”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구나. 나는 내가 환생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제가 환생하는 이유도 알고 계신가요?”


“그건 기밀이에요.”


그의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그런 지금 목욕탕으로 가는 건가요?”


“동주 씨는 역시나 질문이 많으시네요. 보통 화이트 룸 다녀오면 그런 호기심도 없는 상태로 잘 따라오던데 …. 화이트 룸 담당자에게 방 관리 똑바로 하라고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여하튼 원래는 바로 목욕탕으로 가는데 지금은 좀 귀찮은 게 생겼어요. 목욕까지 하면 정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해서 이런 과정을 넣어다나 뭐라나…. 하여튼 위의 사람들은 그거 인간 세계에서 유행하면 다 따라 하려 한다니깐.”


그는 계속 구시렁거렸다. 내가 자꾸 물어봐서 화가 난 건지 귀찮아서 저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구시렁거리던 그는 어떤 건물 앞에서 멈췄다. 


“자,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제 그만 물어보시고, 들어가 주세요. 좋은 환생 하시길!”


이 말을 하고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 앞에서 사라졌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병원 같았다. 의사 가운은 아니었지만 하얀색 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한 사람이 달려와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까 나를 데려다준 사람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적지로 나를 인도했다. 그리고 어떤 방 앞에서 나를 세웠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상담을 해주실 것이라 말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의 구조는 단순했다. 큰 책상에 굉장히 특이하게 생긴 컴퓨터 같은 물건이 있었고 어떤 사람이 바쁘게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창문 하나 있지 않아 굉장히 넓지만 답답해 보였다.



“앉으세요. 시간이 없으니깐."


타이핑을 하던 남자는 나에게 손짓을 하며 책상 앞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굉장히 까칠해 보이는 안경 쓴 남자의 얼굴을 슬쩍 봤다. 그는 나에 대해 그리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얼핏 보기에 의사로 보이는데 왜 이 사람과 상담을 하는 것일까? 몸이 아픈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일까? 근데 나는 죽었잖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의문만 커지고 있는데 이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굉장히 어색해졌다. 근데 아까 시간이 없다며….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자! 송동주 씨는 INFP네요?”


침묵을 깨고 갑자기 들린 남자의 말은 너무나 어처구니없었다. 


“네? INFP요? 그랬던 걸로 기억나네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나는 그저 황당했다. 대답을 하긴 했지만 이 사람이 나에게 묻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그게 맞는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뭐 나쁘진 않은 성격이네…. 다음엔 E 성향으로 태어나 보는 건 어때요?”


남자의 말을 듣고 나는 그 설마의 MBTI를 이 저승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저…. 근데 이걸 왜 하는 건가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인간 세계에서는 이걸 의미 있어서 하나요? 재미로 하는 거죠? 저희도 그래요. 그래도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생각보다 도움이 되어서 저희도 얼마 전부터 환생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절차를 추가했어요.”


남자의 말에 말에 나는 계속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이, 뭐야. 여기 오기 전에 제대로 설명도 안 해줬나 보고만…. 짧게 말할게요. 동주 씨는 환생을 할 텐데 여기서는 성격도 고를 수 있어요. 원래는 성격도 랜덤으로 주어졌는데 지금 저승 정책을 담당하는 분은 자꾸 환생자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성격도 고를 수 있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저는 매사에 자신감 있는 성격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막상 환생센터 놈들은 이걸 어떻게 반영하냐고 불만을 표시했어요. 그래서 뭔가 인간 세상에서 측정화된 도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찾아보다가 요새 MBTI를 많이 한다고 해서요,. 그러면 적어도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해서 요새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MBTI 공부를 많이 했죠.”


진짜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 저승이라는 곳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한 곳이었다. 그래, 이건 꿈일 거야. 갑자기 나는 지금이 꿈일 것이라는 생각에 볼을 꼬집어봤다. 하지만 깨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황당한 곳이 정말 저승인가 보다. 남자는 나의 행동을 유심하게 지켜보고 바쁘게 다시 타이핑을 했다. 


“그래서 MBTI를 물어보시는 거고 제가 다음에 어떤 성향으로 태어나고 싶다 하면 그걸 반영해주신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요새 많이 태어나고 있는 거고요?”


“네? 반영하는 건 맞는데 이거 어제부터 실행한 거라 아직 사례가 많이 없어요.”


어제라고? 그저 한숨이 나왔다. 그냥 빨리 환생을 하고 싶었다. 


“E 성향이요? 좋죠. 외향적이면…. 생각해보면 내향적인 성격이라 제가 손해 보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런 성격을 다음 생애에서 고칠 수 있다면 고치는 것도 나쁘진 않죠.”


남자는 내 대답을 들으며 바쁘게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내 기록을 계속 적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것 빼고는 제 성격에 만족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MBTI라는 게 조금 짜 맞추는 게 있어요. 저는 INFP라고는 하지만 다른 유형의 설명을 들어도 공감 갈 때가 많아요. 오히려 저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건 그냥 재미죠. 이것도 찾아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혈액형으로 성격을 나누기도 했어요. 사람의 성격이 4가지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MBTI도 마찬가지예요. 뭐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적용했다고 하지만 이걸로는 큰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의 성격은 선천적으로 정해진다고도 생각 안 해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가 자라면서 정리한 생각 등…. 성격 형성에 미치는 요인이 많은걸요. 정말 죄송하지만 이게 의미 있는 대화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여기 시스템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설명한 것은 아닐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남자는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타이핑을 바쁘게 했다. 그리고 타이핑이 끝나자 이어진 침묵이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했다.


“여기는 저승이에요. 인간 세계에서는 이곳을 굉장히 대단하게 묘사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주고,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행복을 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환생은 그저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는 거죠. 아까 말했듯이 원래 그냥 환생의 기회만 줄 뿐 성격까지 선택할 수 있게 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다른 것은 선택하지 못해요. 외모나 나라, 부모님, 재산, 환경 이런 것들은 선택하지 못해요. 그런 것까지 선택하면 누가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고 싶겠어요. 그래도 성격이라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조금은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과 다른 성격을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거죠. 다 동주 씨의 선택이에요. 동주 씨가 말한 것들 어떤 말씀인지 알겠는데 그래도 선택을 해야 해요. 동주 씨가 다음 생에서 가지게 될 성격 말이죠.”


침묵을 깬 남자가 설명했다. 기회를 주는 것이라….



“MBTI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제 맞춰 설명하자면…. 예전에는 ESFJ 성격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텍스트 상의 성격도 그렇지만 실제로 이런 성향인 친구가 있었어요. 매사에 밝고 친구들을 위하고 책임감이 있던 그 모습을 부러워했던 것 같아요.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이상하군요. 아까 화이트 룸에 있을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여기에 앉으니 조금씩 예전 일들이 떠오르네요.”


대답을 하다 보니 정말 예전 일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까는 기억이 많이 지워져 있었는데….


“여기서 상담을 할 때는 그래도 기억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장치가 좀 되어있죠. 이제 목욕탕에서 몸을 씻으면 모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아까 나 데리러 온 사람은 더러워서라고 했는데…. 이 자식이!!


“음…. 그렇군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ENFJ 성격도 좋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술술 말하니깐 제가 MBTI 모든 성격을 꾀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그런 건 아니고 기억나는 성격들이 그렇네요.”


나는 MBTI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인상 깊게 생각했던 성격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서 둘 중에 어떤 성격으로 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다른 유형?”


남자가 이제 대화를 끝내려고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아니요. 성격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성격은 그렇게 정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만약 규칙 때문에 성격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그냥 INFP로 해주세요. 제 성격 그렇게 싫지는 않아서요.”


“흠…. 잘 알겠습니다. 확답은 못 드리지만 동주 씨의 그 말 잘 전달드리겠습니다. 자아,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현생 생활 고생 많으셨고 좋은 환생 하시길!”



모든 상담이 끝나고 밖에 나와있으니 이번엔 어떤 여자가 나를 마중 나왔다. 그녀는 이제 나에게 숙소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숙소라니? 오늘 바로 목욕탕에 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우선 숙소로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 목욕탕에 가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녀를 따라 나는 숙소로 향했다. 작은 숙소를 상상했는데 굉장히 고급스러운 호텔의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이 저승이라는 곳에서 영혼을 대하는 태도는 굉장히 좋은 것 같았다.


호텔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시 침대에 누웠다. 잠시 아까 생각을 했는데 그냥 성격에 대해서 좋은 성격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모든 건 내 선택인걸. 잠이 안 올 것 같았는데 슬슬 잠이 든다.

놀랍게도 죽은 상태에서도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현생에서 내가 살아왔던 순간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기 전날까지…. 꿈은 굉장히 길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고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죽은 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슬펐던 날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들이 꿈속에서 보인 것 같다. 


잠에서 깨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내니 다시 꿈속에서 봤던 꿈의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내가 살아왔던 삶인데…. 이제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잠시 후, 호텔 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 목욕탕에 갈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 카운터에서는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나에게 라커룸 키를 줬다. 라커룸에서 옷을 벗은 나는 이제 목욕을 하러 갔다. 

아주 거대한 샤워 호스가 있었다. 샤워가 아니라 폭포를 직접 뿌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샤워 호스였다. 샤워기를 트니 굉장히 큰 샤워 호스에서 아주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니 샤워 호스는 굉장히 크면서 왜 물은 이거밖에 안 나오는 거야…. 의아하고 있는 내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여기는….



어딜까….


똑 


….



물방울 하나하나 떨어질 때마다 

아주 작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나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태어날까?

어디서 태어날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는 왜 죽은………….


순간의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마치 잠들기 전의 공상 상태와 같았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다시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목욕탕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제 탕 안으로 들어간다.

아주 깊숙이 몸을 안으로 넣으면 된다고 한다. 


서서히 몸이 잠긴다.

이제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

나의 현생이 완전히 잠긴다.

이전 21화 2월 19일 김다연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