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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21. 2022

2월 21일 김승진의 하루

아무것도 안 할래

오늘 아무런 이유 없이 연차를 쓴 승진은 점심을 훌쩍 지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도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승진은 오늘 연차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연차를 썼고 어느새 점심이 지난 오후 1시쯤에서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승인은 다소 허무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연차를 이미 절반이나 사용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하려고 시간을 보내거나 어디를 가려고 이동을 한다면 그만큼 시간과 체력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뒹굴거리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것이러고 승진은 생각했다.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승진은 슬쩍 일어나서 제대로 씻지도 않은 체 동네의 오래된 백반집으로 갔다. 이 동네에서만 10년 넘게 살고 있는 승진은 동네에 몇 가지 단골집을 가지고 있었다. 승진이 가는 백반집은 승진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요새 서울 물가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나오는 반찬들도 푸짐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무척 좋아서 반찬들도 하나같이 맛있었다. 


“어! 총각 왔어?”


승진이 가게에 들어가자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주인아주머니는  단골들의 얼굴을 기억했고 그들의 입맛까지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단골들이 오는 요일도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별한 요일에 오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그날의 메뉴가 정해졌다. 

이곳의 메뉴는 단 하나였다. 오직 백반정식 하나. 복잡한 메뉴도 필요 없었다. 이 메뉴만으로 단골들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승진은 주위를 슬쩍 보면서 오늘 메뉴가 무엇인지를 살폈다. 오늘의 메뉴는 전통적인 백반 메뉴 중 하나인 제육볶음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승진에게 먼저 밥과 찌개를 갖다 줬다. 이 백반집의 찌개 역시 승진이 좋아하는 메뉴였다. 너무 짜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콤하면서도 단 맛이 느껴지는 묘한 조화를 이룬 찌개였다. 취향에 따라 이 찌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승진의 입맛에는 최고였다. 이 백반집에서는 밥과 찌개만 먼저 갖다 주고 그 이후에 나머지 반찬을 가져다주는데 식당을 찾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찌개와 함께 이미 밥공기 하나를 비우게 된다. 찌개와 밥의 조화가 아주 좋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 메인 메뉴와 반찬이 도착할 때쯤에는 밥 한 공기를 더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승진도 역시 이런 무리 중 하나였다. 

오늘도 밥 한 그릇을 먼저 비운 승진은 새로운 밥과 함께 도착하는 반찬들을 살펴봤다. 승진이 좋아하는 깻잎이 있었고 김과 콩자반, 나물 몇 종류, 야채전, 메추리알, 김치, 그리고 1인분의 양을 훌쩍 뛰어넘은 제육볶음이었다. 이 백반집의 제육볶음은 양이 굉장히 많았다. 승진 같이 혼자 오면 거의 1.5인분에 가깝게 나왔고 2명이 가면 4인분에 가깝게 나왔다. 

승진은 군침을 흘리며 제육을 한 입 물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불의 맛을 그대로 살린 제육을 밥 한 숟가락에 올려 먹었다. 밥 알과 함께 고기가 제대로 씹혔다. 승진은 이게 제대로 된 제육볶음의 맛이라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오늘은 연차라서 여유로운데도 불구하고 승진은 빨리 먹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천천히 좀 먹으라며 이번엔 숭늉을 갖다 주었다. 이 백반집의 숭늉은 항상 나오는 서비스였는데 그 양도 꽤 많았다. 1명이 오나 2명이 오나 큰 그릇에 넉넉하게 담아 주었다. 

벌써 두 그릇째 먹었는데 아직도 반찬이 꽤 남은 것을 본 승진은 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요청했고 주인아주머니는 슬쩍 승진의 자리를 보더니 밥 한 그릇과 일부 반찬을 더 갖다 주었다. 승진은 이미 반찬이 많이 남아서 괜찮다고 했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더 먹으라고 승진에게 말했다. 승진은 주인아주머니의 친절에 감사하며 이번엔 조금 천천히 소화도 시키면서 밥을 먹었다. 

아무래도 욕심을 낸 것 같다. 승진은 더 이상 못 먹겠다 싶어서 수저를 내려놨다. 그래도 대충 둘러보니 어느 정도 반찬도 많이 비우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먹었다. 승진은 잠깐 자리에서 잠시 쉬다가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승진에게 내일은 닭볶음탕이고 저녁까지 하니 또 오라고 말했다. 승진은 일찍 퇴근하면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며 미소를 지으며 식당을 떠났다. 

밥을 든든히 먹은 승진은 이제 남은 하루에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지내기로 했다. 승진은 휴가 때 무엇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거 좋아하는 음식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때론 빈둥거리면서 그렇게 사는 것도 휴가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라고 승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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