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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22. 2022

2월 22일 윤고운의 하루

입사한 지 이틀째

오늘로 입사한 지 이틀째다.


취준생일 때는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싶었다. 원하는 기업을 가지 못 했을 때는 눈물이 펑펑 났고 원하는 곳에 면접을 보러 갈 때는 밤을 새워서 준비를 했다. 회사에 대해서 계속 조사하고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몇 번이고 자기소개를 연습했다.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 원하는 곳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직 젊으니깐! 더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최종 면접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합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버틸 힘이 없었다. 당장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집에서는 눈을 낮춰서 취업을 하면 안 되겠냐고 말까지 할 정도라 어디든 가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목표로 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기업들로 입사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취업이 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취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부러웠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아직 제 자리에 있는데…. 남들만 더 앞서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의 마음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어딘지도 모르는 회사,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회사였다. 면접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회사였다. 정보가 많이 없는 곳이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을 때에도 나는 그곳에 이력서를 넣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할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으로 들어온 대표는 회사에 대해서 나에게 소개를 했다. 그는 나에 대해서 그리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작은 사무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하는 것 같은 회사,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는 회사 사람들…. 면접을 보고 나온 나는 회사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밤, 회사에서 합격 소식을 알렸다. 나의 무엇을 보고 이 회사는 나에게 오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친구들과 부모님한테 이런 곳에 합격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어떤 친구는 그런 곳은 피해야 한다고 나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고 부모님은 그래도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밤새 고민했다. 수없이 나를 떨어뜨린 회사의 이름과 무수히 많은 이력서를 보며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시 언제 합격할지도 모르는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 그냥 들어가자. 어차피 3개월 수습에 인턴 자격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말 싫으면 그만두고 그때 필요하면 다시 준비하자. 이렇게 생각한 난 다음 날, 회사에 전화를 걸어 출근 소식을 알렸다.


오늘로 입사한 지 이틀째다.


어제 입사한 첫날은 대표가 지방 출장을 가서 사무실에 없는 날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나를 반겨줬고 이것저것 물어봐줬다. 학교는 어딜 나왔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회사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는 김대리는 오늘 그래도 대표가 없어서 조금 여유 있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커피를 사주겠다며 근처의 괜찮은 카페로 데려갔다. 김대리는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마치 몇 년이라도 서로 알았던 것처럼 나에게 친밀하게 말했고 내가 궁금한 것들을 다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적당히 일하다가 빨리 옮기라는 조언도 해줬다. 나는 김대리에게 사실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왔다고 말했다. 김대리는 여기 회사 사람들 다 그렇다며 걱정하지 말고 모르는 것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고 했다. 밖에서 만났으면 더 친하게 지냈을 언니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간 나는 김대리가 던져준 업무 자료를 보며 회사가 하는 일에 대해 배워갔다. 작은 광고대행사인 이곳은 꽤나 큰 규모의 회사 일도 맡아서 하는 곳이었다. 회사의 클라이언트 중에는 내가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들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 회사들에 가게 되었다면 김대리를 다른 자리에서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자료를 보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김대리는 퇴근할 수 있을 때, 퇴근하라며 나에게 빨리 퇴근하라고 했다. 같이 퇴근하자는 나의 말에 김대리는 내일 오전까지 대표에게 보고할 것이 있어 그것만 정리하고 가겠다며 나에게 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김대리와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첫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 일을 배우는 데는 괜찮은 곳 같았다.


오늘로 입사한 지 이틀째다.


출근을 하니 대표가 출근을 했다. 내 얼굴을 보더니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눈치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대표는 겨우 내 이름을 기억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오전 회의 끝나고 잠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회사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대표는 30분 있다가 회의를 하자고 말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사무실이 크지 않아 몇 안 되는 사람들로 꽉 차는 공간이었다. 대표는 따로 자신의 방을 가지고 있지 않고 커피 머신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때 대표 옆으로 약간 뺀질거리는 남자가 나타났다. 어제 못 봤던 사람이었다. 대표에게 농담도 걸고 하는 걸 봐선 그와 친하고 직위도 있는 사람 같았다. 그를 쳐다보고 있자 김대리는 내쪽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을 조심해’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나도 본능적으로 저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전 회의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다 모였다. 다 해봤자 10명이 안 되는 규모였다. 여기에 휴가를 가서 내일 복귀한다는 분도 있다고 한다. 대표는 사람들 얼굴을 슬쩍 한 번 보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멈췄다.

 

“어제 인사들 했죠? 정팀장은 오늘 처음 봤겠고? 어제 봤겠지만 입사한 윤고운 씨라고 해요. 이름 참 예쁘죠? 고운 씨, 잠깐 인사해주세요”


어제 다들 인사를 했지만 나는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 안녕하십니까. 윤고운이라고 합니다. 처음이라 모르는 것이 많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배꼽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은데 잘해야죠! 잘해봅시다 우리.”


아까 김대리가 경계하라고 한 그 사람이 말했다. 아마도 정팀장이라는 사람일 것이다. 꼭 이런 자리에서 저렇게 딴지를 걸어야 성이 차는 사람인가 싶었다. 


“에이, 왜 그래 애한테. 여하튼 잘 왔어요. 모르는 거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우리 정팀장이나 나한테 물어봐도 괜찮아요.”


대표가 수습했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나의 자기소개 시간은 끝났다. 별거 아니긴 한데 괜히 긴장되고 부담되는 자리였다. 그래도 대표가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았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대표는 각 담당자들에게 업무 현황을 보고 받았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면접을 볼 때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전문성도 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업무 현황을 말하는 모습을 보니 다들 일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 같았다. 아니 정말 잘하고 있었다. 업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문제점과 해결책,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괜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부끄러워졌다. 그냥 가볍게만 생각했던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보고가 끝나고 대표는 어제 다녀왔던 출장에 대해서 공유했다. 그리고 내가 있어서 더 말해주는 것이라며 2022년 회사의 목표와 계획, 그리고 대표가 꿈꾸는 모습에 대해서 그는 한참 설명했다. 면접 때 들은 이야기도 있지만 회사의 직원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대표가 제시하는 비전은 꽤나 좋아 보였고 탄탄해 보였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비전이 충분히 있어 보였다. 회사와 함께 나도 성장하고 싶어졌다. 

회의가 끝나고 의욕이 생긴 나는 김대리에게 오늘 무엇이든 시켜만 달라고 말했다. 김대리는 작은 목소리로 대표가 한 말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하이텐션이었던 김대리가 오늘은 굉장히 축 처져있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그때, 대표가 나를 불렀다. 대표는 아까 회의를 했던 회의실로 날 데려갔다. 대표는 이제야 나에 대해서 궁금해졌는지 면접 때도 안 물어보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시키는 일 다 하고 하겠다고 말했다. 대표는 여기는 자율적으로 일하는 곳이라 정말 원하는 전혀 다른 사업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일단 김대리에게 일을 배우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내가 가진 잠재력이 있어서 나를 뽑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는 나에게 자리에 가서 일을 먼저 보라고 했다.

자리에 돌아간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봉이랑 근로계약서 이야기를 할 것 같았는데 별 말도 안 하고 끝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후가 되면 계약서를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어제 김대리가 줬던 업무 자료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표가 김대리에게 다가와서 이번에 경쟁 PT 하는 회사 자료를 요청했다. 김대리가 지금 다른 일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대표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쟤 있잖아?”라는 것 같았다. 김대리는 한숨을 쉬더니 “고운 씨 시킬게요”라고 했다. 

대표가 자리로 돌아가자 김대리는 업무를 지시했다. 그리고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어차피 예전에 썼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라 대충 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처음 받은 업무라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어째 의욕이 없어 보이는 김대리의 모습과 말투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뭔가 조금 이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뒷자리에서 갑자기 고성이 오갔다. 슬쩍 뒤를 보니 정팀장과 유 과장이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유 과장이 정팀장이 한 일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팀장이 더 높은 것 같은데 유 과장이 화를 내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더 놀라운 것은 둘이 싸우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대리는 에어 팟을 끼고 평온하게 일을 하고 있었고 대표는 유유히 커피를 마시며 걸려온 전화에 밖으로 나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일을 하고 있을 뿐 아무도 지금 벌어진 상황이 무엇인지, 둘이 저러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황한 얼굴로 슬쩍 뒤를 계속 보고 있는데 김대리가 톡톡 건드렸다. 놀라서 김대리의 얼굴을 보니 김대리는 손짓으로 컴퓨터를 보라고 했다. 컴퓨터를 보니 김대리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 저래. 정팀장 미친놈이야’


‘그래도…. 저렇게 싸워도 되는 걸까요 ㅠㅠ’


‘일주일 중 2~3일은 저래. 유과장님도 이제 성질 좀 버리면 좋긴 한데 그래도 정팀장이 빌런이니까 그래요. 우리 내일 저녁이나 먹을까요? 언니가 맛있는 거 사주면서 이야기해줄게!’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도 김대리를 의지하고 있는 지금, 김대리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김대리의 메시지에 답변을 하려고 하는 순간 김대리의 메시지가 왔다.


‘그럼 되는 걸로 알게요! 그리고 이 메시지는 바로 지워!’


김대리의 얼굴을 보니 김대리가 나에게 입모양으로 ‘뭐해? 지워’라고 하고 있었다. 그때 대표가 들어왔고 대표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둘을 그제야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대표는 아직 흥분한 정팀장과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아…. 어째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방금 오전 회의까지만 해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후,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시계를 보면 슬쩍 눈치를 보고 있는 나에게 김대리가 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수고했어요. 대충 마무리하고 내일 와서 해요. 오늘은 바빠서 못 챙겨줬는데 내일 좀 업무 짚어주고 어떻게 할지 알려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김대리님. 저 다들 너무 안 일어나고… 대표님도 계신데 일어나고 괜찮을까요?’


‘눈치 또 본다 또! 다른 건 몰라도 퇴근으로 눈치 주는 회사는 아니니까 어서 퇴근해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네 그러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타이핑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조용히 짐을 챙겨 김대리에게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대표가 내 얼굴을 봤다. 맞다. 계약서! 

대표가 내 얼굴을 보고 있자 나는 계약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기대했지만 대표는 나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무안해진 나는 대표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가려고 하다 보니 화장실에서 나오던 정팀장을 마주쳤다. 


“어? 벌써 가요? 나라면 조금 더 일 배우고 갈 텐데. 여하튼 수고했어요. 어디 도망가지 말고 내일 봅시다.”


말을 마친 정팀장은 옷에 손에 묻은 물을 묻히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에휴…. 말을 진짜 저런 식으로 해야 하나. 은근 짜증 나는 스타일이었다. 정말 김대리가 말한 데로 정팀장은 조심해야 하는 사람 같았다. 가급적이면 엮이고 싶지도 않지만 그러지는 못 할 것이다. 나도 유과장처럼 화내는 상황이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추웠다. 이제 출근 이틀 차. 원치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 조금은 고단하고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 길이 될 것 같다. 여기서 얼마를 버틸 수 있을지, 어쩌면 여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회사를 잘 다녀보겠다고 결심하며 나는 지하철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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