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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04. 2022

3월 4일 손재민의 하루

기업 리뷰

“재민님 그거 썼어요?”


아침에 출근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은별님한테 메시지가 왔다. 


‘그거?'


나는 은별님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잠시 고민했다. 오늘 이야기 나눌 업무일인가 생각했는데 이건 따로 뭘 쓸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별거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기억이 안 나서 나는 은별님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그거가 뭘까요? ㅠㅠ 오늘 써야 하는 것이 있던가요?”


메시지를 보내고 도대체 은별님이 말한 그것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은별님이었다. 은별님은 손짓으로 나보고 회의실로 가자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은별님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에휴… 그거 있잖아요. 기. 업. 리. 뷰. 평. 점. 전에 대표가 난리 친 거 있잖아요. 그거요.”


회의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은별님이 나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제야 은별님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 그거요. 안 썼는데. 그거 쓰시게요?”


“아니요. 근데 민수님이 어제 저한테 넌지시 물어보더라고요. 나 참 어이없어서. 그런 걸 쓰라고 은근 압박 주는 회사가 다 있다니. 인터넷으로만 듣던 이야기인데 실제로 일어나니 어처구니가 없어요.”


은별님은 그렇게 한참 불만을 토로하더니 거래처 연락할 시간이 되었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은별님이 저 정도로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기업 리뷰 평점.


왜 이걸 까먹고 있었을까. 다른 일이 바빠 잊고 살았지만 어이없게도 지난 몇 주건 회의 안건으로도 나왔던 키워드였다. 


몇 주전, 회사 채팅방 중 하나에 스크린샷 이미지가 하나 올라왔다. 그 이미지는 기업 리뷰 평점 사이트에 올라온 우리 회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채팅방은 회사의 팀장급들이 있는 곳이었고 이미지를 올린 것은 인사팀장인 민수님이었다. 민수님은 스크린샷에 이어서 ‘최근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저 리뷰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의 대부분이 저런 글들이었고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메시지에 대해 크게 호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회사의 이사였다. 대표의 친구이자 회사의 모든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정민님은 채팅방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팀장 회의 시간에 이 이야기에 대해 노발대발하면서 난리를 쳤다. 말 그대로 난리를 쳤다. 


“왜 이런 게 올라오죠? 아니, 저도 퇴사한 사람이 이런 글 쓰는 건 이해해요. 그런데 거짓말이 있잖아요. 뭐 여기? 능력 없는 사람 한 명이 물을 흐린다고? 우리 중에 이런 사람이 누가 있어요? 회사 돈으로 다른 짓을 한다고? 우리가 그런 적이 있어요?”


얼굴이 시뻘게진 정민님을 보며 아니면 아닌 거지 저리 흥분할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른 팀장 중 일부가 정민님의 말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좀 악의적인 글들도 있네요. 누가 쓴 것인지도 알 것 같은데요?”


회사에 오래 있었던 동윤님이 거들었다.


“아아…. 그러면 누군지 알겠다. 참 내 자기가 사고 쳐서 나갔으면서 뻔뻔하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미혜님도 이에 동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뭐 이런 거는 우리가 잘하고 있고 하니깐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맙시다.”


항상 진중한 성격의 서현님은 흥분한 사람들을 좀 진정시키려고 했다. 


“서현님 말도 맞는데. 그래도 회사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좀 그러네요.”


처음 이 사실을 알렸던 민수님이 내려온 자신의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민수님 말이 맞아. 대표님과도 이야기해봤는데 억울하다고 하시더라고. 누가 썼건 그건 관심 없고요. 좋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려는 이 시점에 지금 같은 리뷰글을 그냥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정민님은 은근슬쩍 대표의 의중을 알려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리뷰글을 그렇다고 지우는 건 좀 그런 것 같습니다. 동윤님과 미혜님이 말씀하신 데로 아는 사람이 악의적인 글을 남겼다면 리뷰글을 지우면 그걸로 난리 치고 또 글을 올릴게 뻔하니까요.”


나는 이들의 행동에 조금 브레이크를 걸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내 의견을 솔직히 말했다. 그래, 지우자니. 가만 듣고 있으니 진짜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다 여기는.


“지우는 건 저도 반대. 그러면 우리 리뷰 쓰는 건 어때요? 나쁜 말 말고 좋은 말이요. 조작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 만족하고 있잖아요? 저희들이나 회사에 좀 믿을만한 사람한테 넌지시 말해서 회사에 좋은 리뷰를 남기는 방식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미혜님 의견에 찬성합니다.”


미혜님이 의견을 말하자 동윤님이 곧바로 그녀의 의견을 거들었다. 둘이 짜고 있나 싶었다. 그런데 동조하는 것은 둘 뿐이 아니었다.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이사님이 허락해주신다면 저희들끼리라도 좋은 리뷰글 남기는 걸로 하겠습니다.”


원하는 답이 나왔는지 민수님이 의견을 정리하려고 했다. 



“거 좋네. 그런데 미혜님이 말한 데로 믿을만한 사람은 따로 구할 수는 없어요. 여기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결국 해야 하고. 그러면 소문이 커지고 잘못하면 회사 밖으로 이상한 소리만 돌 수 있으니깐. 여기 있는 사람들 다음 주까지 좋은 리뷰 좀 써줘요. 극찬을 하라는 게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의심받으니깐. 적절하게 서로 의논해서 누구는 보통 정도의 리뷰, 누구는 비전이 보인다는 리뷰 등 잘 알아서 좀 해줘요. 나도 대표님한테 오늘 일 잘 이야기할 테니깐. 그러면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어디 다른데 세어나가지 않게 해요. 그러면 이제 다음 주 업무 관련해서 이야기합시다.”


정민님이 이야기를 정리하며 업무를 지시하며 일단 이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 나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은별님은 이 이야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그녀 역시 이에 동조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내 앞에 앉은 서현님에게 슬쩍 봤다. 회의를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서현님이었지만 그녀의 평소 성격을 비추어 봤을 때 아마 속으로는 회사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을게 틀림없을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슬쩍 회사에 대한 리뷰를 봤다. 회사의 평점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모든 리뷰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안 좋은 것은 확실히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제일 압권이었던 것은 이 문구였다.


‘원수에게도 추천하지 않을 회사’


나는 이 문구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빵 터질뻔했다. 얼마나 회사를 싫어했으면 이런 글을 남기는 것일까? 이 글을 올린 사람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리뷰를 남기라고 해서 하나 빨리 써볼까 생각했지만 막상 쓸 말이 없었다. 회사에 불만도 바라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물론 이걸 쓰라고 하는 게 거의 유일한 불만이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보다 심각하게 안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업계 최고의 회사만큼은 아니지만 복지나 회사의 정책들도 점차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온 지 2년이 넘은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해봤자 지금 들어오거나 회사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들 입장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회사를 평가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악평 중에는 나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나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기업 리뷰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고 내 원래 업무에 집중했다. 그 이후로 정민님도 민수님도 다른 사람들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은별님이 말하는 걸 보니 인사팀 시켜서 리뷰 썼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에구야. 머리가 아프다. 이런 것을 시키는 것도 어이없는데 했는지 확인까지 하다니.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민수님이 나를 찾았다. 민수님은 나와 따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재민님은 리뷰 쓰셨나요?”


“네? 아아.. 그거요.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하하 다들 쓰고 계신 거죠?”


민수님이 물어보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은별님도 안 쓴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저도 안 썼어요. 다른 사람들도 물어보니 동윤님은 쓰신 것 같고 미혜님은 말씀 안 해주시고요. 여하튼 리뷰가 아직 올라온 게 없어서 정민님이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아 정민님이 보고 계시는군요. 이번 주에 쓸게요.”


“아뇨. 사실 저도 이거 시켜서 그러는 거지. 별로예요.”


민수님의 대답은 솔직히 의외였다. 회사 경영진의 비위를 잘 맞추던 사람이라 항상 회사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까 놀란 눈치네요. 저도 월급쟁이인데 회사에서 시킨다고 다 좋아하겠습니까. 어차피 언젠가 나갈 회사인데요. 그렇다고 회사에 안 좋은 리뷰가 올라오는 건 기분이 안 좋지만요. 여하튼 저도 답답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쓰면 제가 정민님이나 대표님한테도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냥 적당히 남겨주세요. 퇴사할 때 지우시고요.”


민수님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이런 말을 하면서 은근히 압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헷갈렸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 써야겠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회사의 리뷰를 보면서 어떤 글을 쓸까 한참 고민했다. 여전히 쓸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욕을 쓸 수도 없었다. 에휴… 그저 한숨밖에 안 나온다. 고민하던 나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한 줄 평가 :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


장점 : 회사의 아이템이 좋아 투자를 많이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회사도 점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복지정책도 있고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점도 회사의 장점입니다. 회사의 직원들도 능력이 좋은 분들이 많아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단점 : 인원이 부족하여 일을 이중삼중을 맡을 때가 있습니다. 워라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조금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무난하게 쓰자. 귀찮은 숙제를 마친 나는 리뷰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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