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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09. 2022

3월 9일 이현문의 하루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 적은 있지만 어떤 꿈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를 했고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님이 좋아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척했다. 하지만 항상 시험을 잘 보는 것은 아니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항상 떨리는 마음이 컸다. 공부를 잘하는 게 내 꿈은 아니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성적에 목을 맷을까?

나는 항상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바라는 역할에 맞춰줬다. 그래서 나에게 붙는 말을 ‘성실한 사람’이었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무엇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이 자라왔다. 그저 남들이 바라는 모습을 그대로 살아왔다. 목표를 향해 살아왔을 뿐, 내 꿈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 목표를 내 꿈이라고 착각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직업을 바라지는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그저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를 원했을 뿐,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이정표도 제시하지 않으셨다. 변호사, 판사, 의사 등등 전문직으로서의 내 모습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부자가 되는 것도 그리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셨고 20살이 되기 전까지 나를 엄격하게 양육하셨다. 

19살, 수능이 끝났다. 점수는 꽤 잘 나왔고 명문 대학교에 진학할 성적이 되었다. 부모님은 그저 내가 성적을 잘 낸 것에 기뻐하실 뿐이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그래도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막연하게 경영학과를 가면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경영학과를 다녔다. 그곳이 내 생각만큼 재미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은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말 재미가 없었다. 대학교를 진학하니 이제 취업을 생각해야 했다. 

군대를 가니 조금 마음이 편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까라면 까고, 시키는 일만 잘하면 좋은 병사, 좋은 후임이 되었다. 수많은 부조리가 있었지만 나는 견뎠다. 그런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전역을 하던 날, 나는 매우 우울했다. 이제 시키는 데로 가 아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전역을 하고 나는 보통의 복학생처럼 대학교를 다녔고 보통의 취준생처럼 취업을 준비했고 운이 좋게도 좋은 회사에 한 번에 합격했다. 친구들은 내 인생이 순조롭게 흘러감에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미션들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재수 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회사를 가니 매일매일 나에게는 목표가 주어졌다. 내 꿈이라는 것을 설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나는 위에서 시키는 일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하면 됐다. 점차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고 내 인생은 다시 무난한 기류 위에 서게 되었다. 아주 무난한 20대 후반의 인생이었다.

30살이 되던 해, 나는 문득 꿈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저 남들이 시키는 데로 살아온 내 인생이 벌써 30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럽게 우울해졌다. 꿈이라는 것을 가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저히 꿈이 없었다. 회사원이 되는 게 꿈이었을까? 말을 잘 듣는 것이 꿈이었을까? 나는 30년, 그 이후 30년을 어떻게 살게 되는 것일까?

그 후로 약 1년 동안 나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꿈을 찾는 것이 나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나는 우연히 TV를 보다가 마추픽추를 봤다. 그때 문득 그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가면 내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휴가를 착실히 모았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내가 가기엔 너무나도 먼 곳이 남미였다. 적어도 2주 이상의 휴가를 모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남미 여행책을 수도 없이 찾아봤다. 직장인들이 큰 용기를 내서 여행을 떠나는 책도 봤고,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는 책도 봤다. 이상하게 그런 내용들이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나도 무언가 큰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자를 테면 잘라봐라라는 심정으로 아주 긴 휴가를 회사에 냈다. 회사에서는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 뜻은 확고했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내가 누군가나 체제에 대항한  것은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나는 항상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으니깐….


5년 전, 3월 9일은 내 첫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그날, 나는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사실 TV에서 볼 때가 더 멋있었다. 그리고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풍경, 이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바랐던 나의 첫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한참 동안 마추픽추의 모습을 내 눈에 담았다. 한참을 서서, 한참을 앉아서 그곳에서 평생 살고 있는 사람처럼 마추픽추와 하나가 되었다. 그날의 풍경, 공기, 날씨, 느낌. 모든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꿈이 이루어진 첫날이었고, 내 인생의 많은 것을 바꾼 날이 되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예전 회사에 더 이상 다니지 않고 있다. 5년 전, 여행을 다녀오고 쓴 글이 화제가 되어 분에 넘치게 여행 작가로 불리게 되었고, 결국 작년부터는 전업 여행 작가를 선언했다. 지난 5년 간 수많은 여행지를 다녔고 내 감정을 솔직히 기록한 여행기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되었다. 

여행 작가가 내 꿈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5년 전, 3월 9일이 내 꿈을 처음으로 이룬 날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많이 바꾼 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새는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어 국제구호단체와 시민단체와 많은 일을 같이 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그런 쪽으로 흘러갔다. 어쩌면 내 새로운 꿈을 찾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다.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떨림이 있는 그곳으로 여전히 가고 있다. 2022년 3월 9일. 나는 여전히 내 꿈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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