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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10. 2022

3월 10일 정시환과 송효섭의 하루

선거, 다음날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있는 날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생긴 날이었다.


시환과 효섭은 어릴 적부터 매우 친했다. 같은 동네,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시환과 효섭은 항상 함께였다. 둘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를 하고 있었고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서로를 챙기며 도움을 주려고 했다. 둘은 서로를 의지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정이 변치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 둘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효섭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며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 그래도 시환과 효섭은 가끔 서로 연락하고,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여전히 우정을 쌓아갔다. 둘은 취미도 같았고, 좋아하는 노래도 비슷했다. 서로 간의 관심 있는 공통 주제가 많았기에 둘의 술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단 하나, 정치 이야기만 빼고 말이다.

둘의 정치 성향은 전혀 달랐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었지만 성인이 된 둘의 생각은 점점 달라졌다. 시환과 효섭이 자란 동네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다. 매우 강했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도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시환도 그러하였다. 하지만 효섭의 생각은 달랐다. 부모님의 성향에 반대했고 성인이 되면서 점차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시환과 효섭이 군대를 다녀왔을 때는 둘이 생각하는 관점과 지지하는 정당, 좋아하는 정치인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둘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항상 언성을 높여 싸우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시환이나 효섭 둘 중 한 명이 정신을 차리고 ‘친구끼리 이런 걸로 싸워서는 뭐하냐’라고 말하며 대화의 주제를 돌리며 끝날 때가 많았다. 그래도 20대 때는 둘이 이런 이야기 말고도 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았기에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둘의 생각은 고착화되기 시작했고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가 되며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40대가 된 시환과 효섭은 이제 정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특히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둘의 사이는 점점 험악해지지고 했다. 둘의 사이를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은 “나이 들어서 왜 싸우냐’라며 둘을 말렸지만 시환과 효섭은 서로 감정이 상해 연락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2022년 선거일이 다가오자 둘의 의견은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서로 친구가 있는 단톡방에 각자가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서 홍보하고 상대방의 약점에 대한 선전지 성 글을 공유했다. 친구들은 시환의 성향과 비슷했기 때문에 시환이 던지는 화두에 더 공감하는 편이었다. 효섭은 어떻게든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호응이 없고 오히려 한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점차 친구들의 단톡방도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만난 자리에서도 효섭은 기분만 상해할 뿐이었다.

시환은 효섭이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효섭 역시 시환이 지지하는 사람이 나라를 이끈다면 반드시 나라를 망칠 것이라 봤다. 둘의 생각은 좁혀지지 않았고 즐거워야 할 술자리에는 어색한 공기만 맴돌았다. 그나마 눈치 있는 다른 친구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며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 시환과 효섭의 의견 충돌만 보면 원수 사이나 다름없었다. 둘 다 지나치게 과몰입하고 있었다. 

선거의 밤, 둘은 각자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고. 누군가는 그 결과에 허탈해했고, 누군가는 그 결과에 기뻐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싫어하는 정부가 바뀐다는 사실에 부푼 희망을 가졌고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부가 무너지게 되는 것에 슬퍼했다. 시환과 효섭은 그렇게 각자 같은 결과를 다르게 바라보며 3월 10일을 맞이했다.

누군가에게는 승리, 누군가에게는 패배였지만 시환과 효섭은 오늘만큼은 서로를 도발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서로 축하 혹은 위로를 하며 그동안 정치 때문에 서로가 멀어졌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서로 보냈다. 시환과 효섭 모두 서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그냥 생각이 다를 뿐이었는데 어느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싫어하게 되는 것 같았다. 시환과 효섭은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둘이 만나 술자리를 가지며 서로 간의 아쉬운 것을 털기로 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둘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니 둘은 예전처럼 친한 친구로 있고 싶어 했다. 다시 5년이 지나면, 둘은 다시 대립할 수도 있다. 그때는 시환과 효섭이 50대에 가까운 나이라 생각은 더욱 고착되어있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될지 여전히 모르지만 시환과 효섭은 어린 시절의 우정이라는 감정 하나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일상으로 다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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