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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씽 Dec 13. 2023

외부 발설을 꺼리는 그들


 


 


 나같이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은 이런 사이비에게 걸려들기 딱 쉽다. 그간의 친분, 그 사이에서 형성된 복잡하고도 끈끈한 감정들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외부 발설을 엄히 당부했던 것도 복잡한 감정들에 가리어져 나름의 일리가 있다 느껴졌, 선의를 베풀어주는 이의 부탁은 당연히 따라야 하는 처사라 생각했다. 그간 쌓아온 소중한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다만, 가족 그것도 남편에게까지 말하지 말라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싶었다. 퇴근한 남편과 하루 일과를 두런두런 나누는 것. 이것은 나에게 있어 하루의 깊은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값진 일이다. 그런데 그걸 하지 말라니. 당연히 따를 리 없었다. 그게 참 다행이었다.


 남편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허둥대는 나를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멈춰 세워주는 사람이다. 늘 그렇다. 내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릴 때도, 보이지도 않는 두려움들에 허우적댈 때도 조급하지 않게 멈춰 세워 붙잡아준다. 거짓 상황에 몰입되고 그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매몰 직전이었지만, 남편은 환기할 수 있는 창구멍을 내주었다. 그 구멍으로 잠시 멈추어 새로운 호흡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당시 의문을 제기하는 남편에게 소름 끼치게도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였지만,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 한 개라도 품을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남편과의 사이가 조금이라도 소원했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하기 힘든 상황에 빠져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하겠지. 문득 엄습하는 생각에 뼛속 시리듯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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