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중심이 점점 꺼져 들어가는 초를 본다. 시큼한 시트러스 냄새가 마음에 들어 샀던 삼천 원짜리 향초. 사실 태우면서 향이 퍼져가는 효과는 없는데 불꽃이 가까이 있는 기분이 좋아서 글을 쓸 때는 곁에 둔다. 소리 없이 타는 촛불은 적막함이 주는 위안이 있다.
처음 심지에 불을 붙였을 때 그 불꽃은 정갈하게 올곧았다. 높이 솟아 조용한 모습으로 강하게 타올랐다. 향초의 처음 불꽃은 깨끗하고 단정하지만 사용이 지속될수록 중심만 녹아들기 시작한다. 지금은 가운데가 푹 꺼졌다.
요즘에는 전기열로 녹이는 제품도 있지만 굳이 불을 붙이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붙일 때의 느낌이 좋아서다. 태우고 끌 때에 입으로 후 부는 것도 좋다. 꺼트릴 때 몇 오라기 흘러나오는 연기도. 탄내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향을 태울 때도 있지만 가족들이 눈이 맵다며 싫어하여 향초를 택했다. 이런 모양으로 녹을 거라면 전기열 방법으로 바꾸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슬슬 든다.
동굴처럼 깊은 굴을 이룬 사이에 실오라기처럼 남아있는 심지는 불꽃이 처음같이 않고 작다. 애기 손톱만 한 불을 지피면서도, 자근자근 흔들리면서도 초 안에 아늑하게 피어있다.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만 보는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러다가 저 밑동까지 꺼져 들어가면 불을 붙이기 힘들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
뭐든 처음은 타오른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맹렬하게 불붙어서 하던 것이 점점 작아질 때쯤 또 이러는구나 하며 자신을 본다. 밑동까지 내려가 심지도 닿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다. 타는 속도도 줄어든다. 향도 퍼지지 않고 내 안에 파놓은 굴 안에 조용히 들어가 작은 불빛으로 숨어들 뿐이다. 좋아하는 일 하나조차도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갖지 못하고, 처음에만 타들어가듯 실행에 옮기는 나는 이런 끈기로 어떻게 노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종종 갖는다.
여름이 되면 우리 집은 캠핑을 자주 다닌다. 캠핑장의 저녁시간은 이르다. 여기저기서 밥을 안치는 소리가 들릴 무렵 남자들이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불 붙이기. 장작을 쌓아 올려 불을 붙인다. 우리 집은 장작은 밤에 태우고 숯에다가 불을 붙인다. 타프 사이사이로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굴뚝이 없지만 천막으로 된 집을 지은 하나의 마을이다.
숯불에 고기를 구울 때는 불을 바로 붙이고는 익지 않는다. 토치로 불을 붙이고 부채질을 살살해주면 불씨가 생기는데 숯이 반쯤 타들어가면서 하얗게 변한다. 그때가 숯이 가진 열이 가장 깊다. 고기 굽기의 최적의 온도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보채면 급하게 고기를 올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숯이 열이 오를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며 애꿎은 고기만 뒤집을 때도 있다.
타다만 불이 뜨겁다는 것은 빨리 타버리고 작아진 심지만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지치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면 무언가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무언가 이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도 괜찮다는 위안. 작은 불씨로 오랫동안 타고 있는 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