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생활
마흔 살의 여자가 노인이 된 부모님과 같이 산다. 결혼을 걱정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엄마는 딸의 행복을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셋이 이대로 사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비집고 나와 종종 깜짝 놀란다.
그들의 평균 연령은 60세.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시고 엄마는 자주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신다. 그녀는 퇴근길에 백화점 식품 코너를 들리는 것을 좋아한다. 조용한 세 식구는 잔잔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생활하고 식후에는 꼭 간단한 간식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그녀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조용함은 무슨 이유인지 다음 책, 또 다음 책을 찾게끔 만들었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힘인 듯하다. 에세이 두 권과 만화책 한 권을 샀다. 집에는 이미 그녀의 만화책 두 권이 있다. 그림이 있는 것이 나는 훨씬 와 닿지만 그녀의 만화책은 만화가 아닌 잔잔한 에세이이다. 나는 장르가 주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책을 펼치고 그녀의 삶 언저리에서 기웃댔다.
똑같은 일상에 안심하다가도 한 번씩 모르는 척 놔두고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 나는 그녀의 책을 찾아든다. 미혼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삶도 나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식사를 준비해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 말고는. 아이 뒤치다꺼리를 안 해도 된다는 것 말고는. 또 무엇 무엇 말고는. 적다 보니까 다른 점들이 많았구나. 그래서 다른 집 창 너머 훔쳐보듯 그녀를 훔쳐보았나 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시간은 나에게 휴식기가 되어준다.
다니는 요가 학원의 오전 강사님을 일 년여 만에 만났다. 해진 후 저녁시간에 요가를 하다가 오랜만에 본 그녀는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아직 그녀도 싱글이다. 수업을 준비하고 와서 준비한 것을 풀어놓고 가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지만 예전만큼은 못하고. 운동을 가르치면서 본인도 힘든 운동들을 도전하기 위해 열심히 배우러 다니고. 답도 없는 미세먼지 경보 문자에 어제 하루는 씩씩대고 화가 나있었던 것이 바로 그녀의 일상이다. 못 본 사이에 초코송이 머리가 되어 있었다. 잠시 그녀의 일상도 훔쳐보다가 집에 돌아왔다.
일찍 결혼하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것이다. 또래보다 아이들을 일찍 키워놓았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훔쳐보며 산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결혼을 준비하거나 혹은 꿈꾸는 사람들도 반대의 삶이 궁금한 점에 있어서는 나와 같다.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켜서 바라볼 때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감정에 라벨링을 하는 연습도. 타인의 삶을 슬쩍슬쩍 엿보면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들의 삶에 이입되어 살펴보면 잠시 그들이 된다. 그리고 편해진 마음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다른 사람의 삶도 잠시 살아봤기에 나는 여러 삶을 살아본 사람이 된다.
자신의 인생도 그렇다. 영화를 보듯, 책을 보듯 살펴보는 삶. 그렇게 보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라고 안달할 필요도 없고 아쉽거나 억울할 필요도 없다. 삶이 얽매는 주체성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주체적인 삶. 그 모호한 과제를 어렵지만 조금씩 풀어보려고 하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