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실수- 자신의 나이 듦에 관하여

일상생활

by 소박하며화려한

식당에 순서표를 작성하면서 인원수를 잘못 적어 놓았다. 우리는 모두 5명인데 무슨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4명이라고 적어 넣은 것. 별거 아닐 수 있는 이런 실수에 움츠러든다. 알바는 4인 착석을 할 수 있는 자리만 남겨두었다가 5인이 들어온 우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고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는 말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다가 화가 조금 났다.

사실 내가 죄송할 일이다. 식당은 사람이 많았고 대기 순번을 받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원수에 맞는 자리가 비면 순서대로 연락을 주는데 그런 시스템을 알고서도 이런 실수를 했으니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 같은 기억은 사실 몇 달 전에도 있었다. 제주도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잘못 예약해놓은 줄도 모르고 공항에서 한 시간을 넘게 가족들과 앉아있었다. 남편은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거냐고 나에게 말했다.

어이없는 실수가 나이 듦에서 나오는 거라는 것을 느낀 후에 어찌할 수 없이 나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또는 피하고 싶은 일일 수 있다. 20대의 나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겠지만 30대 아니 40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그, 덤벙대긴.' 하며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실수로 다가오지 않는다. 뇌가 슬슬 퇴화되는 것일까. 머릿속의 오류는 뇌를 쓰지 않아서 그런가. 전업주부로 살면서 머리를 사용할 일이 너무 없었던 걸까 등등의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이를 먹었다고 인정하기에 나는 아직 20대 옷이 좋고 그들의 감성이 좋다는 것이다. 유행에 관심이 있으며 일정 부분 따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37이라는 나이를 생각해볼 때에는 떼끼, 이 녀석.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라는 혼을 들을 수도 있는 위치이다. 인생에서 위치한 나의 포지션을 바라보면 너무 앞에 있지도 그렇다고 뒤에 있지도 않은 자리. 난 아직 멀었어라고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만끽하기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난 이제 늦었을까라고 말하기에는 나보다 늦게 시작하는 인생 선배들도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신발끈을 다시 묶어야 하는 나이. 이제 와서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시작해볼 수 있기에 다행이다라고 좋아하다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한참 뛰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며 홀로 쓸쓸해지고는 한다. 조금 일찍 시작할 걸. 조금만 먼저 알았더라면. 감상에 젖어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에 다시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이가 많은 남편과 함께하는 부부생활은 나를 어디에도 서있지 못하게 한다. 중학생이 된 큰 아이를 보면서, 하나둘씩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남편과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십 년 뒤 미래에 잠시 다녀왔다가 돌아온다. 이제 아이를 낳고 시작하는 친구들. 결혼을 일찍 해서 먼저 와버린 나. 저 앞에 훌쩍 가고 있는 남편과 주변의 사람들. 또래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대체 어디쯤 서있는 사람일까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오히려 나를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두게 했다.

주말에 북 토크를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런 자리에 가면 20대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많아야 30대 초반이다. 그리고 기혼자는 나 혼자다. 그녀들은 늦어지는 취업에 자신들도 늦었다고 말했다. 아직 무언가를 하려고 꿈꾸고 있는 나는 혹시 늦은 걸까. 살짝 두려움이 밀려왔다가 그녀들도 나도 늦었다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자유롭지 않구나라는 안도감이 조금 남는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소설들이 앞으로 만들고 싶은 나의 책이 어쩌면 그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가져본다. 북 토크를 연 작가처럼 젊지 않아도 말이다.

유투버 스타 박막례 할머니.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한 할담비 지병수 할아버지. 80세에 런웨이를 걸어 다니는 짱짱함을 보여주시는 왕데슌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나라의 모델 김칠두 할아버지. 전례 없던 노인들의 전성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의 성공 앞에서 적은 숫자에 연연하며 늦었네 빠르네 판가름하려 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발견한다. 인간의 삶은 유동적이기에 아름다운 것을. 미래를 모르기에 우리는 늙지도 젊지도 않다.

노인에게 사랑이 어딨는가라고 말하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머리가 희어져도 소녀 같은 미소를 띠던 할머니들. 매번 같은 스타일인 빠글빠글한 파마를 하고 돌아와도 새댁 같다는 칭찬 한마디에 볼이 발그레해졌던 어릴 적 '밀두리 아줌마'를 떠올린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의 저자 bon, pon부부의 백발머리와 커플로 멘 백팩이 잘 어울렸던 뒷모습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하겠지. 내가 지금 20대 후반의 아가씨들을 보며 '함부로 늦었다는 단어를 입에 올리다니!'라고 생각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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