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컵들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고유의 개성을 가진 매력 있는 컵들의 조합이 어떤 비싼 세트보다도 멋지다는 걸 다른 집에 방문했다가 깨달은 적이 있었다. 도기로 구워진 컵들은 갈색부터 하얀색까지 다양했고 윤이 나거나 혹은 투박한 재질이거나 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로 깎아 만든 그 집의 수저들 만큼이나 이상하게도 조화로웠다.
똑같이 다양하더라도 나의 사정은 다르다. 싱크대에 달린 철제 선반에 엎어놓은 컵들은 저마다 글씨가 있다. 커피 브랜드가 적혀있거나 의류 브랜드 마크, 동대문 쇼핑몰 이름 등이 적혀있고 하다못해 하은 인성이란 글자도 있다. 그렇다. 하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당시의 첫째가 자신의 이름을 삐뚤빼뚤 써놓은 것이다. 이렇게 나의 컵들은 어디서 행사 상품으로 받아오거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것들이다. 글씨가 없는 컵조차 그마저도 고추장을 샀더니 덤으로 딸려온 컵이다. 돈을 들이지 않은 물건에는 애정이 가기 힘들고 난 이런 컵들의 조합이 조악하게 느껴졌다.
요즘에는 예쁘고도 저렴한 컵이 여기저기 참 많은데 나라고 눈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크기의 컵은 없으니까라는 핑계로 몇 번 사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돈을 주고 사온 컵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다. 모두 이가 나가거나 깨져버렸고 오히려 증정품으로 받은 컵들은 튼튼하게도 자신의 자리들을 지키고 있다. 애초에 그런 운명을 타고나기 위해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듯이. 어떤 친구는 컵을 사고 싶다는 나에게 자신이 언제 한 번 들러 우리 집 설거지를 해주고 나면 컵을 살 수 있는 이유가 생길 거라고 했지만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기에는 어려웠나 보다. 오후의 짧은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는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적당히 커다란 머그컵 두 개를 샀다. 그려져 있는 그림도 귀엽지만 마음에 드는 건 내가 딱 좋아하는 정도의 노란색. 컵 두 개를 집으니 청록색의 작은 컵이 눈에 띈다. 손잡이 부분이 특이하다. 믹스커피는 마시지 않지만 그 크기가 적은 양의 물에 진하게 탄 믹스커피가 담기기 적당하다는 이유로 작은 것도 집어오고 말았다. 큰 컵은 이천 원, 작은 컵은 천오백 원. 굳이 금액으로 따지자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은 없었다.
진열대 앞에서 컵을 쥐어보고, 만져보고, 이미 본 가격표를 다시 보며 몇 분간을 망설였다. 집에 있는 컵들이 못쓰게 되면 그때 사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기분은 합리성과 충동성 사이에서 교묘하게 나를 저울질했다. 저렴한 가격은 머리보다 마음의 손을 들어주었다. 계산을 하고 신문지로 조심스레 포장하면서 이럴 때도 있는 거지 하며 지극히 소소한 충동구매를 두둔해주었다.
인생 중 하루에 오천오백 원을 즉흥적으로 썼다고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컵이 세 개가 늘었다고 집에 있는 살림살이들이 '이보시오. 주인 양반 때문에 자리가 좁소.' 하면서 투덜대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드는 원피스에는 오만 원이나 선뜻 투자해놓고는. 가끔 별거 아닌 것에 망설이는 나는 왜 이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