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 년이 넘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또래의 엄마들은 어느 동네에 새로 지은 임대가 좋다더라며 부러워하거나 수납이 잘 되어 있다는 이유로 신축 아파트로의 이사를 꿈꾼다. 심지어 아파트 분양 정보를 알려주는 어플까지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집값이 오른 아는 누구의 행운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쁘고 똑같이 십 년 넘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그곳의 사정은 다르다. 부동산 세금이 높지 않던 시절의 정권을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동네든 초등학교 앞의 아파트들은 제일 높은 금액을 유지하고 전세 물건마저도 없다. 학원이 많으면 아파트도 많다.
얼마 전 옆동네의 아파트가 뉴스에 출현했다. 눈에 익은 익숙한 건물. 어디서 본 듯한 페인트 색. 많이 지나가 본 것 같은 단지의 구조. 어디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건물에 금이 가서 주민들이 급히 대피했고 경로당에 모여 쪽잠을 자야 했다. 그곳도 이십 년 차를 향해가는 아파트여서 나는 뉴스의 보도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정확한 원인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았지만 노후된 건물에 대해 드는 미심쩍은 불안감이 슬며시 찾아왔다.
어느 날 살아오던 집의 외벽에 금이 생긴다면 나는 제대로 된 생활을 보낼 수 없겠지. 안전과 보상의 문제로 핏대를 세우고 뜬눈으로 뒤척이다 피곤한 몸으로 신경질을 내며 아이들을 등교시킬 나를 상상하니 제발 우리 아파트의 건설사가 십여 년 전 바른 마음을 먹고 물 타지 않은 콘크리트로 빼먹지 않은 빽빽한 철근 위에 지었기를 간절히 바랬다. 남의 불행을 보며 공감을 하다 결국은 나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결론을 내는 나는 고작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해결책을 찾은 듯한 후속 기사를 보며 다행이라고 혼잣말을 되뇌는 걸로 죄책감을 덜어냈다.
오래되어 가는 중인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이사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우리 동네가 딱 좋다. 조용한 시골 같은 분위기에 역과는 멀지 않은 곳. 새로운 가게라도 들어오면 온 동네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는 곳. 단지 안의 할머니들이 안면이 익은 젊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백 미터 밖에서부터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곳. 가을이 되면 여기저기 고추를 널어놓고 BMW 위에서도 호박을 말리는 것이 중요한 곳이어서 좋다. 이것은 반은 은행에 의지해서 사느라 이사를 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서 하는 변명은 아니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마침 논에 벼가 빼곡하게 자라난 계절이었다. 넓게 펼쳐진 들판 사이 논길을 걸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에 박힌 보름달을 보았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 길을 걸어 산책을 하고 돌고 돌아 먼 친척일지도 모를 백가 아저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목살을 먹다가 개구리도 마주쳤다. 2년을 살다가 막내가 찾아와 우리 집은 다섯 식구를 이루었고 공원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 아기를 재우다가 뛰어가는 고라니를 목격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산업단지가 더 생겨났고 큰 공원이 들어오고 논은 사라졌지만 동네의 집들이 새 빌라로 바뀐다고 해서 정취마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부들이 바라는 브랜드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올 예정이었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여전히 오래된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다. 구옥의 이층에 붙어있는 가정집 미용실의 쪽 간판, 아직도 영업을 하고 계시는지 모를 참기름과 라면만이 먼지 쌓인 철제 선반 위에 놓인 작은 슈퍼, 학생증 사진을 인화하러 갔다가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밤마다 차를 끓이며 작은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는 노총각 아저씨가 사는 통나무집 사진관. 동네 안에는 아직도 작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집이 넘쳐나는 세상에 집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가진 것에 만족도를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들어온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깜깜한 주차장에 가을 소리가 동굴같이 울려 퍼진다.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비벼대는 길고양이 루루도 잠시 비를 피해서 들어온다. 인공적인 구조물이 자연을 품는다. 새벽도 아닌데 울어대는 닭의 목청 돋는 소리에 안쓰러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의 동네를 사랑하는 까닭을 묻는다면 아마 이 모든 게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