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공장과 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우리 동네는 아마도 이 지역에서는 가장 느리게 변화하고 있는 곳일 거다. 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에 이사를 왔지만 살다 보니 이렇게 시골 같은 곳도 없어서 천천히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든다. 집값 상승을 기대한 남편에게는 큰일 날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정말 시골에서 살 자신은 없다. 역과 가까운데 적당히 개발되고 적당히 시골 같은. 그래서 우리 동네가 마음에 든다.
한 가지 또 좋은 점은 밥집이 많다는 점이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매일 달라지는 식당. 그곳에는 메뉴가 많다. 반찬 서너 가지에 중화요리가 나온다. 비빔밥을 해서 먹을 수도 있다. 후식으로 식혜와 매실 맛에 음료, 누룽지가 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자주 먹으면 그 맛에 질리는 법이라 한동안 가지 않았었는데 뜸하다 다시 들러본 그곳은 맛이 변해 있었다. 자주 나오던 좋아하는 생선 반찬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단골로 가던 곳을 한 군데 잃은 것 같아 마음이 서운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계란빵과 바나나빵을 팔고 있는 트럭에서 덜 배불러 아쉬운 속을 달랬다. 밥이 생각나서 나갔다가 빵 식사를 한 기분이다.
모든 변하는 것은 슬프다. 단골 식당의 손맛이 변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도 또는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변하는 것도. 달라진다는 것은 마음을 두렵게 한다. 결과가 긍정적 일지 부정적일지도 모르면서. 오랫동안 친했던 친구가 내가 베푸는 호의들을 점점 당연시할 때도 그랬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 잦아지고 나와 대화할 때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산책을 다니는 공원에 건너가는 길이 달라지고 있는데 작물들을 정리하고 콘크리트가 깔리기 위해서 땅을 다지는 작업 중이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공원이 있던 자리는 모두 논이었어서 논둑길을 달을 보며 걸을 수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변화가 늘 안 좋은 결과만 보여 준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공원이 처음 생겼을 때 걸을 수 있는 곳이 많아져 좋았고 산업단지가 늘어나니 가게가 좀 더 생겨나서 좋았다. 힘들게 하는 인간관계들은 멀리하니까 오히려 편해졌다. 몇 년간 지속하고 있는 요가도 허리가 아파 집에서 기어 다닌 후로 시작하게 된 취미다. 물건들을 정리하는 데 눈을 뜬 2년간은 집안의 짐을 반으로 줄게 했고 변화가 주는 홀가분함도 느껴볼 수 있었다. 소비가 주는 마음의 위안도 거짓이었다는 것도 알았고. 변하는 과정은 그 중심을 보게 해 준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이전과 같은 나로 살아온 적은 없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하듯이 마음은 수시로 바뀌고 선택해야 하는 결정들도 바뀐다. 살면서 겪는 변화는 이렇게나 하찮고 작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것들이 모여 어제와 다른 심지어 아침과 다른 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은 변화에 잠시 멈칫거릴 때 오히려 좋은 것이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용기가 생긴다.
계절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듯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국에서 낸 연구결과 중에 친한 사람은 5년 주기로 바뀐다는 결과가 있었다. 익숙하다는 것이 주는 편리함에 젖어서 무턱대고 변화를 두려워만 하는지도 모른다. 여백으로 돌아가니 새로운 사람들이 주변에 생겨났다. 생각지 못한 관계는 정말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연히 일어나기도 했다. 변화 없는 일상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 우리 주위에는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했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은 주는 관계에서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인연이 시작되는 것 그리고 끝나는 것도 어쩌면 섭리처럼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닷물이 증발하면 소금이 반짝이는 알갱이로 남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얻어진 교훈들도 있었다. 떠나가는 사람들로 나를 탓하는 짓은 이제 하지 않는다.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 혼자 있는 시간들도 외롭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타인을 보는 마음이 생긴다. 잘된 건지 아닌지는 그 일이 지나간 한참 후에야 판단할 수 있다. 더 이상 상심치 말고 다른 밥집을 찾아봐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