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을 연습하는 몹쓸병을 앓고 있는 나와 당신에게
"아.. 여기 너무 좋다. 여기를 어떻게 떠나지? 벌써 떠나는 날이 걱정되네.."
위에 적힌 한 줄은 3년 전 떠났던 장기 여행 중 혼잣말이든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든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대사 중 하나일 것이다. 새롭게 도착한 어느 지역, 그 안에서 만난 아기자기한 골목길, 따뜻한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카페 등 어떤 곳이 진심으로 '좋다'라고 느껴질 때마다 무심결에 나온 말이다. 사실 일종의 이런 내 습관은 비단 여행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도 어떤 장소, 동물, 사물, 특히 사람이 좋아질 때마다 해오던 생각과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 연애사를 돌아보면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도 함께 시작됐던 것 같다. 특히 몇 번의 이별을 겪은 후 다시 사랑이 시작되려고 할 때 나는 그 누구보다 방어적이었다. 이미 본능적으로 사랑임을 느꼈기에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마음속에 또 다른 나는 언제든 이 사랑으로부터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내 주변 사람들은 사랑을 막 시작할 때만큼은 현실적인 문제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아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푹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나는 그와 정반대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할 때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내 안에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번갈아가며 계속해서 대립했기 때문이다.
'너 그 사람을 좋아하잖아. 일단 사랑을 시작해. 지금부터 이별을 생각하지 마.'
VS
'너 지난번처럼 또 이별하고, 상처 받고 싶어? 애초에 사랑 같은 거 시작도 하지 마.'
여기서 재밌는 점은 아무리 긴 시간 동안 이 두 마음이 다툰다 해도 승자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와 내가 상상하는 미래가 뻔히 그려질 지라도 결국 나는 '사랑'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힘들게 사랑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온 마음을 다해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을 아껴주고, 사랑하고, 또 그런 나의 마음을 표현해도 모자란데 그 사랑이 소중해지는 만큼 나는 조용히 또 이별을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사랑이 시작되어도 나는 언제 있을지도 모를 이별을 준비하며 피곤하면서도 슬픈 사랑을 해왔었다.
그런 사랑이 끝난 후에 나는 긴 시간 동안 지나간 사랑과 사람을 자주 떠올렸고, 뒤돌아봤고, 가끔은 기억 속 그 자리에 돌아가 후회하곤 했다. 내가 사랑했던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을 보여주고 전달하지 않은 내가 떠올라서, 그 사람이 주려고 했던 사랑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두렵지 않을 만큼만 받았던 모질었던 내가 떠올라서.
이런 패턴의 사랑과 이별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나는 이런 나의 습관 아니, 이 고질병을 고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3년 전에 떠났던 장기 여행에서도 계속되었다. 1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만남과 이별, 그 사이에서 나는 최대한 내가 실제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별을 미리 연습하고 상상하는 이 못된 습관은 내겐 고질병을 넘어 불치병이었나 보다. 이별하는 날이 명확할수록 나는 현재인 그 순간에 더욱 집중을 못했다.
지금까지 사랑 앞에서 내 모습은 마치 두 눈을 뜨면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바로 바라볼 수 있음에도 굳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와 미래 그 어딘가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그려 넣으려고 했던 것과 같다. 그렇게 연습하면 혹시나 그 사랑이 떠나간 후 이별 앞에서 무덤덤해질까 싶어서, 그러면 조금 덜 아플까 싶어서.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랑과 이별을 할 때면 늘 같은 것을 깨달았다. 미리 수십 번, 수백 번 상상하고 그려본 이별 연습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막상 눈 앞에서 사라진 후에는 두 눈을 꾹 감아봐도,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어도 계속해서 내가 사랑했던 존재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사랑과 이별이 한 번씩 나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내 머릿속에 점점 더 진해지는 한 문장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슬픈 명제,
'만남은 곧 이별이라는 것.'
그렇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연한 인연이 겹치고 겹쳐 나와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결국은 이별하게 된다. 이 명제를 더 넓게 보면 나의 삶에서 겪게 되는 만남뿐 아니라, 나의 삶 그 자체에도 적용이 된다. 내 삶도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우연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만남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 삶과 이 세상과의 만남에도 이별은 있기 마련이다.
'사랑'이 현재, 이 순간의 일이라면
'이별'은 과거의 한 순간의 일이기도 하고, 미래 어느 순간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가 지난 사랑과 그 기억을 놓아주지 못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후회했던 이유, 그리고 새로운 사랑 앞에서 늘 머뭇거리고 도망갈 준비부터 했던 이유는 바로 이별 그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 순간,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살아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 세상에 당연한 이별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가 사랑하고 싶은 존재들을 마음껏 '사랑'하기로 했다.
이것이 이미 지나간, 앞으로 지나갈 사랑과 삶에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에.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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