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애에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

30대 여자 솔로가 연애를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비결이랄까.

by 기록하는 슬기


제주에 내려온 이후, 물리적으로 멀어졌다는 느낌 때문인지 친한 친구, 동생들에게 전화가 더욱 자주 오곤 한다. 그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오는 이유는 간단히 안부를 묻고 가벼운 수다를 떨기 위해서도 있지만, 대부분 어떤 선택 앞에서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나 마음에 깊은 고민이 있을 때다. 요 근래 주중에는 내가 워낙 바쁘게 지내는 걸 아는 내 친구와 동생들은 알아서 주말에 밀린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지난주 주말, 친구 B와 전화 통화를 나눴다. 이제는 각자 먼 곳에서, 각자의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초반에는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일상 이야기는 각자가 생활하고 생각하는 중요도 순으로 자연스레 흘러갔다. B와는 '회사 - 인간관계 - 가족 - 연애'로 이어지는 대화를 나눴다.


30대 초반의 여자 두 명의 대화에서 사실 빠질 수 없는 주제 중에 하나는 '연애'다. (아마 20대 때도 내내 빠졌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마냥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기는 지나간 지 오래다. 연애 이야기를 할 때도 그 감정보다는 앞으로 '미래'를 함께 할 때 어떤 사람과 함께 연애를 해야 하는지, 혹은 지금 이 시기에 어떤 연애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B는 어제 나와 연애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게 이렇게 물어봤다.

"너는 빨리 좋은 사람이랑 연애를 해야겠다는 그런 조급한 마음이 아예 없어?"

그 이전에도 종종 B는 자발적 솔로 기간을 이렇게 오래 지키고 있는 나를 신기해하며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확한 단어로 내게 물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도 그래서 더 정확하게 대답했다.

"응. 없어. 1도 없어. 내가 너한테 제일 솔직할 수 있잖아. 특히 연애에 대한 조급함은 하나도 없어. 지금 나한테 '조급함' 혹은 '빨리'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밖에 없어."


그러자 B는 정말 궁금하다는 말투로 다시 내게 질문을 해왔다.

"그러면 너는 혼자 있을 때 느껴지는 외롭고, 불안하고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해소해? 나도 너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좋기도 하지만.. 그 외로움과 불안함이 너무 힘들어. 솔직히 그 감정이 연애를 한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 알면서도 또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좋은 사람 만나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넌 그런 생각이 아예 안 생겨?"


"야. 나도 사람인데, 게다가 너나 나나 감수성 예민한 사람 중 한 명인데 그 마음을 왜 이해 못하겠어.. 음. 근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20살 딱 되자마자 계속 타지 생활만 했잖아. 내 타지 생활이 형편이나 상황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 불안함, 공허함 이런 거 때문에 나도 '사람'을 많이 찾았던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연애도 길게, 짧게 쉴 새 없이 해봤고, 너도 아는 별의별 사람 만나봤잖아. 그 과정에서 계속 상처 받고 깨지기를 반복하면서 깨달았어. 내가 느끼는 '외로움, 불안함, 공허함' 이런 감정은 아무리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런 감정을 자꾸 '해소'하려고 하는 거 자체가 나는 스스로 욕심을 부리는 것 같더라고."


B는 내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맞장구를 치면서 이내 다시 내게 질문을 했다.

"그렇지.. 그러면 너는 그런 감정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 바로 해결을 하지 않으면 그냥 참아야 하는 건가. 그래도 난 이렇게 전화라도 하면 조금 나은데.."


"음.. 나는 일단 그런 외로움, 불안함과 같은 감정이 들 때 바로 '어떻게 해야겠다. 해결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최대한 안 하려고 해. 그렇게 바로바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개 없더라고. 특히 가장 쉬운 건 주변 사람들한테 내 감정을 털어놓고 싶어 지잖아. 그래서 언제든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거고. 근데 너도 알잖아. 누군가한테 말하면 잠깐은 괜찮아지지만, 그게 본질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거. 그리고 그렇게 급하게 누군가를 외롭다는 이유로, 불안하다는 이유로 찾게 되면.. 나랑 잘 맞는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을 잘 못하고 덜컥 만나게 될 확률이 높잖아. 나는 그래서 아예 내 외로움, 불안함을 '연애'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 같아.. 이미 그런 실패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B는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사실 다 답은 알고 있지.. 지금 이런 마음 상태로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현재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불안함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야. 참 어쩌면 이것도 습관 같아. 자꾸 누군가한테 기대고 싶은 거.. 난 너의 그 조급함이 없는 마음이 부럽다."



부러워할 것도 없어. 우린 다 똑같이 외로운 사람인 걸.



B는 내게 내 마음가짐이 부럽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고 말한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믿는 것 하나는 있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마다 다른 성향과 성격에 따라 스스로 그런 감정을 얼마큼 인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따라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감정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연히 달라진다고 본다.


연애 이야기나 인간관계 이야기를 할 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는 유유상종이라는 말. 어쩌면 이 말을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기에 지금 연애에, 결혼에 조급함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도 좋지만 나는 조금 더 나아진 '나'의 모습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고, 나란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고 집중해서 살아갈 수 있는 나의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나와 비슷하게 준비된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즉, 나는 지금 나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그러한 인생의 목표를 위해 쉼 없이 걸어가고, 달려가고, 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나가가고 있는 중이다. 조금 더디고, 느릴지라도. 물론 이렇게 나와 비슷한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비슷한 템포로 함께 이 시기를 걸어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 또한 큰 욕심이라는 것쯤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상 속에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자꾸만 나를 찾아올지라도 일단은 묵묵히 다시 일어나서 걸어간다. 그게 지금 내가 당장 나의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고, 동시에 더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임을 알기에.




+)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친구 B가 나와 함께 조금은 더 묵묵하게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내가 이렇게 뒤에서 옆에서 늘 믿고 응원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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