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사랑에 후회하지 않는 방법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을 연습하는 몹쓸병을 앓고 있는 나와 당신에게

by 기록하는 슬기


"아.. 여기 너무 좋다. 여기를 어떻게 떠나지? 벌써 떠나는 날이 걱정되네.."


위에 적힌 한 줄은 3년 전 떠났던 장기 여행 중 혼잣말이든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든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대사 중 하나일 것이다. 새롭게 도착한 어느 지역, 그 안에서 만난 아기자기한 골목길, 따뜻한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카페 등 어떤 곳이 진심으로 '좋다'라고 느껴질 때마다 무심결에 나온 말이다. 사실 일종의 이런 내 습관은 비단 여행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도 어떤 장소, 동물, 사물, 특히 사람이 좋아질 때마다 해오던 생각과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 연애사를 돌아보면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도 함께 시작됐던 것 같다. 특히 몇 번의 이별을 겪은 후 다시 사랑이 시작되려고 할 때 나는 그 누구보다 방어적이었다. 이미 본능적으로 사랑임을 느꼈기에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마음속에 또 다른 나는 언제든 이 사랑으로부터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내 주변 사람들은 사랑을 막 시작할 때만큼은 현실적인 문제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아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푹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나는 그와 정반대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할 때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내 안에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번갈아가며 계속해서 대립했기 때문이다.


'너 그 사람을 좋아하잖아. 일단 사랑을 시작해. 지금부터 이별을 생각하지 마.'
VS
'너 지난번처럼 또 이별하고, 상처 받고 싶어? 애초에 사랑 같은 거 시작도 하지 마.'




우리는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다. '이별이 두려워도 사랑하게 될 나를. '<사진 : 2019. 07. 서울>



여기서 재밌는 점은 아무리 긴 시간 동안 이 두 마음이 다툰다 해도 승자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와 내가 상상하는 미래가 뻔히 그려질 지라도 결국 나는 '사랑'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힘들게 사랑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온 마음을 다해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을 아껴주고, 사랑하고, 또 그런 나의 마음을 표현해도 모자란데 그 사랑이 소중해지는 만큼 나는 조용히 또 이별을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사랑이 시작되어도 나는 언제 있을지도 모를 이별을 준비하며 피곤하면서도 슬픈 사랑을 해왔었다.


그런 사랑이 끝난 후에 나는 긴 시간 동안 지나간 사랑과 사람을 자주 떠올렸고, 뒤돌아봤고, 가끔은 기억 속 그 자리에 돌아가 후회하곤 했다. 내가 사랑했던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을 보여주고 전달하지 않은 내가 떠올라서, 그 사람이 주려고 했던 사랑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두렵지 않을 만큼만 받았던 모질었던 내가 떠올라서.


이런 패턴의 사랑과 이별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나는 이런 나의 습관 아니, 이 고질병을 고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3년 전에 떠났던 장기 여행에서도 계속되었다. 1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만남과 이별, 그 사이에서 나는 최대한 내가 실제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별을 미리 연습하고 상상하는 이 못된 습관은 내겐 고질병을 넘어 불치병이었나 보다. 이별하는 날이 명확할수록 나는 현재인 그 순간에 더욱 집중을 못했다.


지금까지 사랑 앞에서 내 모습은 마치 두 눈을 뜨면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바로 바라볼 수 있음에도 굳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와 미래 그 어딘가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그려 넣으려고 했던 것과 같다. 그렇게 연습하면 혹시나 그 사랑이 떠나간 후 이별 앞에서 무덤덤해질까 싶어서, 그러면 조금 덜 아플까 싶어서.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랑과 이별을 할 때면 늘 같은 것을 깨달았다. 미리 수십 번, 수백 번 상상하고 그려본 이별 연습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막상 눈 앞에서 사라진 후에는 두 눈을 꾹 감아봐도,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어도 계속해서 내가 사랑했던 존재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별 후,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이 두 눈을 꼭 감았을 때 나와 같은 장면을 떠올렸길. <사진 : 2017. 05. 베트남>



이렇게 사랑과 이별이 한 번씩 나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내 머릿속에 점점 더 진해지는 한 문장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슬픈 명제,

'만남은 곧 이별이라는 것.'


그렇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연한 인연이 겹치고 겹쳐 나와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결국은 이별하게 된다. 이 명제를 더 넓게 보면 나의 삶에서 겪게 되는 만남뿐 아니라, 나의 삶 그 자체에도 적용이 된다. 내 삶도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우연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만남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 삶과 이 세상과의 만남에도 이별은 있기 마련이다.



'사랑'이 현재, 이 순간의 일이라면
'이별'은 과거의 한 순간의 일이기도 하고, 미래 어느 순간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가 지난 사랑과 그 기억을 놓아주지 못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후회했던 이유, 그리고 새로운 사랑 앞에서 늘 머뭇거리고 도망갈 준비부터 했던 이유는 바로 이별 그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 순간,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살아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 세상에 당연한 이별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가 사랑하고 싶은 존재들을 마음껏 '사랑'하기로 했다.

이것이 이미 지나간, 앞으로 지나갈 사랑과 삶에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에.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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