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파키스탄 훈자 마을까지 총 30시간 고행 길이 시작된다.
지난 세계여행 때 갔던 수많은 도시들 중에 나의 뇌리의 깊게 박힌 여행지를 세어보면 아마 열 손가락은 다 접힐 것 같다. 그렇다면 내 가슴속에 깊게 새겨진 여행지는.. 한 세 손가락 정도 접히지 않을까. 그만큼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곳,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 세 곳 중 가장 짧게 머물렀지만 그 여운은 가장 오래 남던 곳. 그곳에서 내가 마주했던 순간과 그 순간 속 아직도 내 기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곳을 여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길, 이 곳은 가는 길도 어렵고 힘들지만 이곳을 떠나는 길은 몇 배로 더 어렵고 힘들다고 한다.
그곳은 바로 파키스탄의 깊은 산속에 작은 마을, 훈자라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동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왜 '이상한'동네라고 했는지는 앞으로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파키스탄 훈자 마을을 가기 전 정보를 수집하던 중 여러 여행기에 한 번쯤은 등장하는 공통된 문장이 있었다. 파키스탄 훈자 마을을 육로로 이동한다면 그 길은 상당히 위험하고, 또 고될 것이라는 말. 오랜 이동 시간도 한몫하지만 특히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훈자까지 가는 그 길은 버스 창문 너머로 보면 핸들만 살짝 잘 못 틀어도 데구르르 그 버스가 굴러 떨어질 것 같다고. 그만큼 산속의 비포장 도로라 위험하다고 한껏 겁을 주며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무시무시한 사진과 글을 읽고도 겁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뭐야.. 라다크 가는 길보다는 낫네..'라고 생각했다. 파키스탄 훈자 마을에 가기 전 나의 여행지는 북인도의 라다크였기 때문에 불과 2주 전 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자동차 도로를 포함해서) 지옥의 비포장 도로 위를 안전벨트도 없는 낡은 지프차를 타고 18시간을 넘게 달렸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라다크 보다 고도도 낮고, 안전벨트가 있는 더 큰 몸집의 버스였기에 자신만만했다. 내가 두려웠던 건 단지 서구 언론에서 비췄던 '파키스탄'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 그뿐이었다.
내가 장기 여행할 당시 (2017년)에만 해도 파키스탄 관광비자는 꼭 한국에 있는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받아가야 했다. 그 준비 절차도 무척 복잡했고, 서류도 꼼꼼하게 보고 인터뷰까지 해야 했다. 파키스탄 비자를 준비하며 주변에서는 여자 혼자 무슨 파키스탄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 때 훈자를 가지 않으면 꿀 빠진 꿀떡, 우유 빠진 라떼 같은 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사전에 조사를 많이 해보고 같이 갈 동행도 미리 구했다.)
주변의 걱정, 그리고 나 조차도 조금은 무섭다는 마음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훈자를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훈자 여행기에서 보았던 온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설산의 풍경, 혹은 훈자와 가까이 있는 히말라야 K2 산맥의 절경 이런 것들이 나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단지 훈자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여행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 "꼭 다시 올 훈자.", "못 잊을 훈자."라는 수식어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가는 길도, 가서도 열악한 곳에서 다들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꼭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온몸의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파키스탄을 육로로 통해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인도와의 국경을 통해, 두 번째는 중국과의 국경을 통해. 나는 북인도 여행을 마친 직후 다음 목적지가 훈자였기 때문에 인도 암리차르(국경도시)에서 파키스탄 라호르(국경도시)를 통해 훈자로 향했다. 인도에서 파키스탄 훈자 마을까지 가는 루트는 이러했다.
인도 델리 - 암리차르 - (국경 건너서) - 파키스탄 라호르 - 이슬라마바드 - 길깃 - 카리마바드 훈자
인도 델리에서 암리차르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고, 암리차르에서 2박 속성 관광을 하고 다음날 국경까지는 오토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 이동에서 가장 걱정했던 곳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이었다. 국경을 걸어서 가는 그 길에서 곳곳에 서있는 군인들, 그리고 잦은 ID(여권) 검사는 나와 동행 언니의 쫄보 근성을 한껏 증폭시켜주었다. 그렇게 군인들이 가라는 방향으로 고분고분 걸어가니 멀리서 인도 군인과는 다른 디자인의 군복을 입은 파키스탄 군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여권 검사를 마치고 나니 바로 앞에 앉아있던 중년의 파키스탄 군인 아저씨께서 우리 둘을 보고 활짝 웃어 보이시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웰 컴 투 파키스탄!!!!"
오랜 시간 여행하며 지나온 수많은 여행지를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의 표정과 그들이 내게 했던 말에서 느껴지는 온도였다. 군인 아저씨의 밝은 표정과 목소리 덕분에 파키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그려왔던 이미지가 과연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졌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 군인 아저씨의 환영한다는 말 그대로 우리는 파키스탄 이미그레이션, 짐 검사까지 모두 무사히 잘 마쳤다.
사실상 훈자로 가는 고행의 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파키스탄 국경에서 라호르(국경도시)에 있는 대우 버스 터미널까지 가야 했다. 국경을 육로로 넘어봤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모두 아시리라. 국경에 있는 택시 기사들과 가격 '흥정'은 '흥정이 아닌 전쟁'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택시 기사들과 눈 하나 끔뻑하지 않는 척하며 그보다 더 낮은 가격을 부르는 여행자들, 하지만 여기서 절대 을은 '여행자'이다. 이곳에서 도심으로 나가는 방법은 이들의 택시를 타거나 혹은 걸어가는 방법 그 둘 중 하나기에. 그럼에도 인도 여행을 몇 주는 해봤다고 당시에 내 두 눈에는 택시 사기꾼들에 대한 온갖 빡침('화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으로 가득 차있었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어떤 외국인 여자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은 인도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하며 방향이 같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다행히 목적지 방향이 같았고 여자분은 택시기사들과 가격 흥정에 나섰다. 그 여자분은 '현지인이니까 우리한테 제시한 가격보다는 덜 바가지를 씌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현지인이고 뭐고 자비가 없는 택시 기사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격 깎기의 달인(=필자)'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자분과 내가 나서서 영어와 파키스탄어가 오가는 복잡하고 긴 협상을 마치고 결국 택시에 올라탔다.
우리의 목적지인 대우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매표소로 가서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5분 뒤에 바로 출발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만 급하게 들리고 우리는 간단한 간식도 사지 못 한 채 바로 버스에 탔다. 그동안 긴 여행 중에 장시간 이동을 하며 다양한 버스를 많이 타봤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이슬라마바드행 버스는 잊지 못한다. 내부는 한국 우등 버스만큼 혹은 그보다 더 깨끗했고, 에어컨도 빵빵, 게다가 와이파이까지 빵빵빵했다. 그리고 승무원들이 시간에 맞춰서 음료수도 주고, 간식도 주고, 필요하면 언제든 물까지 줬다. (나의 사랑 저가 항공보다 서비스가 좋았다.) 버스에서 달콤한 5시간은 꼭 50분처럼 짧게 느껴졌고, 이슬라마바드 대우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낯선 도시의 모습, 그리고 우리를 더욱 낯설게 쳐다보는 현지인들의 눈빛에 조금은 겁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본능적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봐도 여행자 차림의 우리를 보고는 6~7명의 택시 기사들이 달라붙는다. 아마 인도 여행을 하지 않고 바로 이곳부터 왔다면 분명 나는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낭여행의 끝은 인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인도 여행을 짧게나마 선행 학습하고 온 나이기에 두 눈에 센 언니인척 힘 빡! 주고 가장 순해 보이는 기사 아저씨와 협상을 하고 그다음 목적지인 나트코 (NATCO)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낡고 작은 봉고차에 무거운 배낭과 더욱 무거워진 몸을 겨우겨우 차 위에 실었다. 창 밖으로는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불빛이 듬성듬성 보이는 어두운 거리가 보였다. 이곳이 과연 TV에서만 들어보던 나라 '파키스탄'이구나, 그것도 그 나라의 수도.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파키스탄의 모습과는 반대로 거리는 깨끗했고, 현지인들의 첫인상도 그리 무섭지 않았다.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있는데 미리 블로그를 통해 예습했던 그곳 나트코 버스 정류장의 모습이 보였다. 택시 기사 아저씨께 우리는 훈자까지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저씨가 직접 정류장에 가서 매표를 하는 것 까지 도와주셨다. 자꾸 비교를 하면 안 되지만 오히려 '인도'에서 느꼈던 첫인상보다는 더욱 따뜻했다. 직원은 시간이 늦어 카리마바드 훈자까지 가는 직행 버스는 없고 길깃까지 간 다음에 카리마바드로 가라고 안내해줬다. 약 15분 뒤면 버스가 오니 잠시 휴게실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줄곧 이동만 하느라 한 끼도 먹지 못한 우리는 간식이라도 사 먹으려고 휴게실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쉬는 곳, 휴(休) 게실이었다.
직원이 말해준 시간에 맞춰 큰 버스 한 대가 우리가 있는 건물 앞에 섰다. 버스 직원에게 미리 준비한 여권 사본 10장을 건네주니 맨 끝 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안내해준다. 우리 자리로 가기 위해 버스 통로를 쭉 걸어 올라가는데 잠시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버스에 앉아있던 현지인 모두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지나가는 우리를 뚫어져라 끝까지 쳐다본다. 인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그 이상으로. 그래도 일부러 버스 기사는 우리가 외국인이고 여자라서 맨 끝 자리에 한 사람당 두 자리씩 쓰라고 배려해준 것인데 우리 주변에 앉아있던 현지인들은 뒤돌아 우리를 구경하기 바빴다. 밤 버스이고, 게다가 승객 90% 이상은 남자였기에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속으로 '길깃 도착할 때까지 잠자지 말아야지! 그냥 밤새야겠다!'라고 다짐하던 찰나 앞자리 누군가가 "Hello~"라며 말을 걸어온다.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beck'(벡)이라고 소개하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리고 내게 훈자로 가는 거냐고 먼저 물어왔다.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맞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럼에도 벡은 내게 '이름이 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디 어디 여행했었는지, 훈자에는 왜 가는지'꼬치꼬치 물어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보니 정말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이었을 뿐 내가 불쾌하다고 느낄만한 말투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벡은 자신도 길깃까지 가니 가는 도중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에게 먼저 말하라며 편히 쉬라고 했다. 그래도 수다스러운 벡 덕분에 온몸에 긴장감이 가득 찼던 내 몸에 조금은 안정이 찾아왔다.
양 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살짝 편안해진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밤 버스에 온갖 감성들을 맡기려고 하는데 점점 버스 위에 내 몸은 월미도 디스코 팡팡을 탄 것처럼 바운스를 타기 시작했다. 맞다.. 여기가 훈자 여행자들이 말했던 그 비포장 도로의 시작이었다. 그래도 큰 버스니까 그 충격은 이전에 라다크행 지프차보다는 덜 느껴지긴 했지만, 문제는 버스가 너무 오래되어서 이미 열린 버스 창문이 닫히지 않았다. 버스를 탄 시간이 밤 9시가 넘은 시간.. 슬슬 추워져 오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창밖으로 얇은 빗방울들이 바쁘게 내 얼굴을 때린다. 창가 자리에서 멀어져 통로 자리로 옮겼더니 이게 또 웬일. 이번엔 버스 천장에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빗방울이 내 이마를 때리는 거 아닌가. 라다크로 올라갔던 그 길이 최악의 비포장 도로라고 생각하고 이 여정을 우습게 봤던 나의 자만에 혼쭐을 내주나 보다. 문제는 이 버스로 이런 길을 20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것..
'나 무사히 훈자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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