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한 훈자 마을, 과연 나도 훈자의 블랙홀에 빠지게 될까?
바쁘게 내 얼굴 위를 때리던 얇은 빗방울들은 다행히도 20분을 채 못가 멈췄다. 그런데 여전히 닫히지 않은 창문을 통해 차가운 밤바람이 살짝 젖은 내 몸에 쉴 새 없이 부딪혀대니 체온은 급격히 떨어져 가고 있었다. 가장 큰 배낭에 어딘가에 있을 두꺼운 옷을 꺼내려고 하는데 수도에서 이미 멀어진 버스 창 밖으로는 짙은 어둠뿐이 없었다. 한 손에는 휴대폰 손전등을 들고, 한 손으로는 꽁꽁 싸매 놓은 배낭을 낑낑거리며 풀고 있었다. 그때 좀 전에 내게 인사를 했던 벡이 나를 쳐다보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빠르게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주며 한 마디를 했다.
"너 춥지? 이거 입고 내리기 전에 돌려줘. 나는 필요 없어 지금."
이미 내 두 손은 두툼한 맨투맨 티셔츠를 꼭 잡고 있었고, 고맙다는 인사도 하기도 전에 벡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이어폰을 꼽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기어코 건너편 벡의 자리 가까이 가서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벡, 정말 정말 고마워."
이전에 읽었던 훈자 여행기에는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상할 정도로'따뜻하고 정 많은 훈자 사람들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잘 믿지 않는 나의 성향 탓에 내 여행기에는 훈자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미 나는 길깃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만난 (나중에 알고 보니 훈자 사람) 벡부터 내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작은 키 때문에 불편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키가 작으면 외국인들은 나이를 어리게 보고 '사기 칠 상대 1호'로 지목하곤 한다. (일부러 한껏 힘준 나의 눈빛과 일부러 내는 앙칼진 목소리에 다들 포기하고 돌아서지만.) 작은 키가 여행 중에 장점으로 발휘되는 순간은 딱 이 순간, 장거리로 이동하는 버스 안이나 기차 안이다. 이때만큼은 작은 몸짓과 키 덕분에 어디에 누워도 나만의 작은 침대가 완성된다. 게다가 벡이 준 맨투맨 티는 포근한 이불로 완벽 변신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머리를 창문에 틈틈이 박아가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창 밖으로는 라다크로 넘어갈 때 보았던 갈색빛의 신비로운 산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버스는 작은 건물에 식당만 덩그러니 운영되고 있는 곳에 정차했다. 아무도 영어로 안내해주지는 않았지만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라는 것 같았다. 옆에서 나와 함께 새벽부터 빗방울 맞고 잠을 한숨도 못 잔 H언니(동행 언니)도 안색을 보니 말이 아니다. 언니는 귀찮다고 식당도, 화장실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앞으로 언제 또 휴게소에 들를지 모른다며 언니를 억지로 끌고 내렸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가파른 버스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버스 문 앞에 누군가 나를 보고 밝게 웃는다. 벡이었다.
벡은 아침을 같이 먹자며 자신이 메뉴를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나와 언니는 이런 그의 배려와 관심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라며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여행 중 대부분 이런 호의의 결말은 뒷목 잡게 하는 반전을 줬기 때문에. 그러나 막상 벡의 미소를 보니 거절이 쉽사리 되지 않았다. 함께 간단히 달걀 프라이와 짜파티(인도의 '난'과 비슷한 빵) 그리고 짜이를 먹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벡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계산하는 곳으로 걸어다더니 우리가 먹은 음식까지 계산을 하려고 했다. 우리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려는 벡에게 달려갔다.
"벡, 진짜 우리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우리 꺼는 계산하지 마!"
이미 계산을 마친 벡은 웃으며 "훈자에 가는 손님인데 내가 이 정도는 당연히 대접해야지."라는 이해가지 않는 한 마디를 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아침 식사 값을 벡에게 주려고 하는데 벡은 오히려 우리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내가 너희 한 끼는 살 수 있도록 해줘. 내가 정말 사주고 싶어서 사는 거야."
이전 여행지가 인도라서, 아니 한국에서 바로 이곳으로 왔어도 이런 호의는 낯설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이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버스는 다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위를 힘차게 달리고 달렸다. 예상보다 3~4시간 빠른 시간인 오후 1시쯤 드디어 길깃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다시 내 몸보다 큰 배낭을 어깨에 앞뒤로 올려놓았다. 벡에게 인사를 꼭 하고 헤어지고 싶었는데 이미 벡은 내 시야에서 없어졌다. 일단 우리가 할 일은 카리마바드 훈자까지 가는 택시나 봉고차를 잡는 일. 언니와 나는 눈에 보이는 봉고차를 붙잡고 "카리마바드? 훈자?"라고 물었지만 "노~노~"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린다. (이제 누군지 예상 가능하실 거다.) 벡은 이미 봉고차를 알아보고, 게다가 가격까지 협상해놓고 우리를 부르러 온 것이었다. 이 정도면 벡은 천사.. 인정이다. 지금 시간에 카리마바드 훈자까지 가는 직행은 없고 훈자와 가장 가까운 중심지인 알리아바드까지 가는 봉고차를 잡아놨으니 그곳에서 내려서 다시 지프차를 타고 가라고 벡이 알려줬다. 아마 벡이 아니었다면 배낭 메고 언니랑 한참 동안 헤맸을 것이다.
벡은 길깃에서 볼 일을 보고 이틀 뒤 가족들이 모두 살고 있는 훈자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급하게 서로의 sns 아이디를 교환하며 꼭! 훈자에서 다시 보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탄 봉고차는 훈자로 놀러 왔다는 파키스탄의 대학생들 한 무리를 태우고 그들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3시간 정도 봉고차는 포장이 잘 된 길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고, 알리아바드 시내에서 우리를 무사히 내려줬다. 우리는 시내에서 20~30분 정도 헤맨 후 카리마바드 훈자로 들어가는 지프차를 겨우 찾았다. 그리고 그 지프차는 오래 걸리지 않아 우리가 미리 알아 놓은 한 숙소가 있는 제로 포인트 앞에 섰다.
그때 시간이 오후 4시. 드. 디. 어 장장 30시간이 넘는 길고도 험난한 이동이 끝난 것이다.
인도 암리차르에서부터 파키스탄 훈자 마을까지 이동하는 동안 낮에는 땀에, 밤에는 빗방울에 폭삭 절여진 우리의 몰골은 차마 그 어떤 셀카 어플을 쓴다고 해도 수습이 안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가장 목말랐던 것은 '샤워'가 아니라 '한식'이었다. 제대로 밥다운 밥을 못 먹은 우리는 파키스탄 오지마을 훈자에서 현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한식집으로 향했다. 뜬금없지만 그곳의 수제비는 한국 분식집에서 팔아도 될 정도로 맛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우리 숙소와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한식집으로 너털너털 걸어갔다. 그리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훈자의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 둘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멋있다. 멋있긴 한데.. 이게 다 인가? 이거 보려고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을 한 거란 말이야..? 사람들은 도대체 훈자가 뭐 그렇게 좋다는 거지?"
오는 길이 험난하고, 고된 만큼 기대가 컸던 우리의 솔직한 훈자의 첫인상이었다. 한참을 걸어 한식집에 도착한 우리는 수제비와 감자전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그 수제비 한 입을 떠먹고 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음식 고유의 깊고 진한 맛.. 누군가가 이 집에 '다시다' 혹은 '미원'을 공급하는 게 분명했다. 역시 한국 사람은 MSG를 섭취해줘야 한다. 짭짤하고 시원한 국물로 배를 뜨뜻하게 채운 우리는 한껏 어두컴컴해진 훈자의 어느 골목을 걸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기야. 우리 훈자 언제 떠나지?"
"글쎄.. 언니 근데.. 훈자 왠지 일주일도 길 것 같지 않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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