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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Sep 25. 2024

세계여행의 시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독된 방랑_세계여행] 장기여행을 시작하고 알게 된 '여행자의 숙명'

[중독된 방랑_세계여행] 장기여행을 시작하고 알게 된 '여행자의 숙명'



2017년 5월 12일,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세계 여행이 시작됐다. 내 두루뭉술한 계획은 이러했다. 일단 최소 1년 정도 세계 일주를 하고, 그 후에 상황에 따라 워홀을 하든 아니면 한국에 다시 돌아가든 결정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1년 동안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여행만 주구창장 할 거라는 단호한 계획이었다.


1년 동안 내가 혼자 여행을 해낼 수 있을지,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늘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1년 동안 여행의 끝, 그러니까 '여행과의 이별'을 생각하지 않고 내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언제 돌아올지 그 끝을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은 내게 오래된 로망이었기에 그것만으로 나는 꿈을 이룬 듯했다.


첫 번째 국가는 베트남이었다. 호치민으로 입국한 후 베트남의 중남부 도시를 2주 동안 여행했다. 당시 베트남 도착 비자 기간은 최대 2주였기 때문에 미리 라오스로 가는 버스 티켓을 예매해 놓았었다. 그런데 여행만 나오면 대문자 'P'가 되어버리는 무계획형 인간인 나는 라오스로 가는 버스 티켓도 찢어버리고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덜컥 예매해 버렸다.


그렇게 도착한 태국 방콕. 며칠 후 나는 또 예정에 없던 남부의 한 섬, '꼬창'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우연히 함께 갈 동행을 구해서도 아니고,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도 아니다. 태국이라는 낯선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낯선 어딘가로 떠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이 과정에서 겪은 '이별' 때문이다.



꼬창으로 떠나는 날, 하늘에서는 두꺼운 빗방울이 쉼 없이 떨어졌다. <꼬창 가는 선창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돌이켜보면 내 여행의 시작은 이별이었다. 영영 못 보는 것 아니지만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불투명한 재회를 앞둔 이별은 더욱 짙은 법이다. 출국날 중학교 2학년 이후로 쭉 나만의 공간이었던 '내 방' 문을 닫고 나오던 순간. 내 몸뚱이 보다 큰 짐이 한 걱정인 엄마와 현관문에서 쿨한 듯 쿨하지 않게 인사했던 순간. 아빠와 오빠가 인천공항 '출발'하는 곳 앞까지 배낭을 메주고는 잘 갔다 오라며 배웅했던 순간.


이 순간은 그 어떤 이별보다도 나의 원초적인 익숙함, 따뜻함과의 이별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가족들 앞에서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온갖 감정들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그 누구라도 나를 툭 치면 감정들이 줄줄 흘러나올까 봐 꾹꾹 참았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간 후 뒤돌아보니 조금 전만 해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던 아빠와 오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참았던 감정들이 두 눈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사실 내 여행의 시작은 혼자가 아니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베트남 여행만이라도 함께하고 나를 배웅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계획은 베트남에서 9일을 같이 여행한 후 그는 한국으로, 나는 라오스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여행을 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부터 며칠이라도 돌아가는 날짜를 미루고 싶다고 했다. 결국 그는 3일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며 기존의 비행기 티켓을 찢었다.


그와의 이별이 며칠 뒤로 미뤄졌을 때 다행스러웠다. 짧지만 3일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동시에 그와 헤어진 후 앞으로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할 여행이 두려웠다. 그러면서 그와의 시간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함께할 때도 곧 다가올 나와의 이별만을 걱정했지만 나는 곧 다가올 혼자만의 여정을 걱정했다.


보너스 시간처럼 받은 3일은 더욱 빠르게 흘렀다. 그가 떠나는 날이 왔다. 다낭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장 앞에서 그는 내게 편지를 건넸다. 편지를 주는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있었다. 2년 반 동안 만나면서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의 눈물을 보니 그제야 조금씩 이별이 느껴졌다. 그는 '안전히 잘 다니라고, 이 여행을 응원한다고.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혹여나 내가 울까봐 끝까지 나를 웃기려고 노력했다. 피식 웃는 나를 보고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꼭 껴안아주고는 출국 게이트로 나섰다. 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엄지 손가락보다 작아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별이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여행이었기에,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나 연습했기에 덜 아플 줄 알았다. 아니었다. 여행하던 첫날 겪은 깊은 이별과 비슷한 놈이 또다시 찾아왔다.



설레기만 할 줄 알았던 출발하는 날. 예상치 못한 깊은 이별의 감정에 휘청거렸었다. <2017. 5. 12 한국을 떠나기 전>



내가 익숙해하고 많이 좋아했던 곳인 방콕으로 가면 이별이 조금은 희미해질까 싶었다. 방콕에서 지낸 며칠 동안은 새로운 여행자 친구들 덕분에 이별이 옅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친구들도 각자의 목적지, 돌아갈 곳으로 떠나야 했다. 결국 또 내가 하는 일은 '배웅'이었다. 허무했다. 이전에 겪은 이별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서 난 이름도 잘 몰랐던 섬, 꼬창으로 떠났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내가 아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떠나면 애초에 이별이 없을 테니까.






장기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몰랐다. 장기여행을 떠올리면 몸보다 큰 배낭, 검게 그을어진 피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친구들, 처음 먹어보는 생소한 음식들, 2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이동, 배낭여행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쌩고생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여행자로 살아보니 아니었다. 여행길 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와 만나고 기약모를 다음을 약속하며 이별하는 그 장면이다. 맞다. 여행자의 숙명은 이별이었다.


끝을 정해놓지 않고 떠나면 여행과의 이별을 떠올리지 않아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없는 여행길 위에서는 내가 쉴 새 없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이별이었다.

내 여행은 이별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별하지 않기 위해 찾은 꼬창. 만남은 없었는데 이별은 있었다. <오롯이 혼자 거닐었던 꼬창의 화이트 비치>




★본 브런치 북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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