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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Sep 23. 2024

회사원의 삶 vs 여행자의 삶, 나의 선택은?

[중독된 방랑_세계 여행] 막상 떠나려니 망설여졌다.


[중독된 방랑_세계 여행] 막상 떠나려니 망설여졌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소비'하는 행위이다. 내 돈과 시간을 써서 내가 선택한 곳에서의 경험을 사는 행위이다. 그래서 여행을 길게 하려면 먼저 그 기간 동안 쓸 돈과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2014년 겨울 동남아 배낭여행을 끝내며 지겹도록 여행만 해보자고 결심한 나는 일단 한국에서 돈을 벌기로 다짐했다.


그때 내 계획은 1년 정도 빡세게 돈을 모아서 그 돈으로 1년 정도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내가 한 일은 경기도 본가를 떠나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떠났다. 어차피 목표는 '돈'이었기에 굳이 회사에 들어가기보다는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뛸 생각이었다. 일단 당장의 생활비가 급했던 나는 대형마트 단기 알바 위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단기 알바는 시급도 센 편이고 무엇보다 급여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기 알바는 쉬는 날도 불규칙하고 하루 온종일 일을 해야 해서 투잡을 뛰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해서는 고생만 하고 돈도 못 모으고 몸만 축날 것 같았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월~금에는 사무직으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이때 정말 다양한 분야의 회사와 여러 카페에 가서 면접을 봤다. 한 회사에서 잠시 사무직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또 하루에 12시간 넘게 혼자 일하는 카페에서 일하기도 했다. 짧으면 몇 주, 길게는 3~4개월을 일했다. 모든 경험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세상을 혹독하게 배웠다. 성희롱을 밥 먹듯 하는 상사들부터 임금을 띄어먹으려는 사장까지, 별에 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그 후 나는 다시 계획을 바꿨다. 아르바이트 말고 회사에 정식으로 들어가자고. 내게 입사란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뿐었으니, 어떤 특정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거나 하는 목표는 애초에 없었다. 그저 정상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취준은 다시 시작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통유리로 보이던 빌딩숲 전경과 처음 받아본 명함은 은근히 나를 설레게 했다.



당시 완전한 신입으로 들어갔기에 월급은 적었지만 그래도 이전에 잠시 다녔던 회사와는 달랐다. 그때 내 나이는 딱 25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삼성역 대로변을 거닐 때면 '어엿한 이 사회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여행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회사였지만 회사원이라는, 어느 조직에서 내 자리 하나가 있다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한 달 최선을 다해 일을 했고 돈을 벌었다. 돈이 모이는 속도는 내 예상보다 느렸다. 최저 시급에 가까운 월급을 받으면서 서울이라는 타지에서 목돈을 모은다는 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때 또다시 내 계획은 수정됐다. 1년이라는 기간을 정해놓지 말고 한 달에 설정한 금액만큼만 성실히 돈을 모으자고.


정신없는 하루는 돈이 모이는 속도와는 다르게 너무도 빨랐다.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나는 퇴근 후에도 업무 고민을 하는 열정적인 사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열정적인 사원의 삶은 이 회사를 들어간 목적을 잊게 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여행을 사랑했고, 여행을 갈망했는지 따위의 내 마음은 희미해져만 갔다.  


사원증을 목에 찬 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일 잘하는 사원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팀 내에서 내가 하는 일은 많았고, 팀장님은 내게 중요한 업무를 믿고 맡겨주셨다. 회사에서 내 입지는 점점 단단해져 갔다.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탄탄대로 일 것 같았다. 



불편함이 익숙함이 될 때까지 참 많은 일이 있던 이 자리에서의 시간. 그럼에도 마지막에 남은 감정과 기억은 감사함이 가장 크다.



가까운 친구들은 나에게 늘 물어봤다.

"그래서 너 여행은 언제 가는 거야?"


맞다. 내가 하도 '떠난다~ 떠난다~'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언제나 자신 있게 "나 돈만 모아지면 바로 떠나야지!"라고 말했었는데, 이제는 '돈'이 이유가 아니었다. 장기 여행을 하기 위해 내가 정한 최소 금액은 이미 모아졌다. 솔직히 나는 아까웠다. 이대로의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1년만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모을까?' 싶었다. 여행이라는 꿈도, 서울에서 생고생하며 만들어낸 자리도, 둘 다 놓기 싫었다. 


원래 어떤 선택 앞에서 고민을 한다는 것은 49% vs 51%와 같은 비등비등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도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똑같은 모양과 양으로 고정될 수 없다. 찬찬히 잘 들어다 보면 어느 한쪽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것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마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지금이 아니면 여행을 못 갈 수도 있어.

 지금 네가 헷갈리는 거야. 

 넌 지금의 '너의 자리'가 아깝다기보다 그저 '익숙함'을 놓기 두려운 것일 뿐이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잘 생각해 봐."


2년 전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서 여행이 끝나는 게 싫다며 혼자 눈물을 흘리던 내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주체되지 않던 뜨거운 마음으로 내 온몸을 가득 채웠던 그때가 떠올랐다. 맞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찾은 꿈은 여행이었다.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두고두고 아주 오랫동안 지금의 나를 원망할 것 같았다. 인생은 결과론이라지만 그때 나는 그랬다. 단순히 '퇴사'가 아닌 '나를 이루던 모든 익숙함들과의 이별'을 결심했다. 







팀장님께 모두 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당시 내가 맡고 있던 업무가 많았기에 팀장님은 충격적이라며 줄담배를 연신 피우셨다. 그러고는 일단 내게 바로 떠나야 하는 아니라면 인수인계 기간을 2개월로 잡아줄 있냐고 부탁을 하셨다. 당시 팀 사정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고 당장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퇴사를 말하고 다음날, 팀장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다.

"슬기님이 떠나는 건 저로서는 너무 서운하고 아쉽지만 진심으로 멋있어요. 저도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오랫동안 여행해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일에 치여서 살다 보니까 이제는 엄두도 못 내겠네요. 아마 저 같은 사람 많을걸요. 서울에서 슬기님 여행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을게요.

우리 남은 2개월 동안 마무리 잘해봐요. 마지막으로, 여행 끝나고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요!"


고마웠고, 미안했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밉기도 정말 많이 미웠던 팀장님이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나를 무척이나 생각해 주시고 챙겨주셨던 것을.

정든 사람들, 익숙한 이 장소를 떠날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역시 익숙함과의 이별은 어렵다.


하지만 이별 덕분에 이 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떠나고 싶어 했구나. 결국 나는 떠나야 하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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