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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30. 2022

너는 마침내 친구를 얻었어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파티. 다들 아껴두었던 파티 복장을 차려입고 웅성댄다. 한 집에 오래 살아온 식구처럼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게 된 서로를 이제 내일이면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식당의 스텝들이 근사하게 차려준 마지막 식사 테이블 앞에 앉았다. 접시 위에는 오늘 함께 부를 노래의 가사가 놓여있다.본격적인 식사를 하기에 앞서 우리는 처음 만난 날 그랬던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매사 무덤덤한 태도로 학교 생활을 해온 나는 심장에서부터 갑자기 울컥하고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내 뒤편에 계시던 미술 선생님 카트린느(Katrine)가 달려와 껄껄 웃으며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한나가 드디어 우는구나!" 선생님은 학교생활을 하는 일 년 내내 나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기꺼이 동행해 주시곤 하던 분이었다. 그녀는 내 눈물의 의미를 금세 알아보았다.


가을학기에 나는 브라질에서 온 하니(Rani)와 조교 역할을 맡아 100여 명의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없는지,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고립된 사람은 없는지를 살피곤 했다. 다양한 문화권의 젊고 혈기 왕성한 학생들이 함께 사는 공간이었기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없지 않았기에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방 키를 잃어버리고 마스터 키를 가진 내 방문을 한 밤중에 두드리는 학생들을 나는 늘 상냥하게 맞이하려 애썼던 한 학기였다. 


정신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콧물 때문에 노래는 부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옆에 앉은 친구들도 놀리듯 내 볼에 뽀뽀를 하며 연신 웃다 울다 했다. 뒤이어, 학기 내내 모두가 좋아하던 노래 ‘Fix You’가 들려왔다.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져나가고 친구들의 공명하는 목소리에 마음을 실렸다. 


노래는 끝내 마음을 건든다. 마음으로 통하는 문을 철옹성 같이 꼭꼭 닫아걸고 살아온 사람도 추억의 노래를 듣게 되면 이내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참기는 어려운 법. 깊고 어둑한 곳에 고여있던 마음을 톡, 하고 건드리는 노래는 분명 우리의 영혼과 직접 닿는 통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날 눈물, 콧물을 다 쏟는 내 곁에 앉아 깔깔 웃던 친구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 마치 어제 만난 듯, 다시 연결 되곤 한다.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하게 되는... 노랫말처럼 그런 친구를 얻었다. 이 글들을 쓰면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얼마 전 간호대학을 마치고, 외과 수술 분야에서 간호사로 갓 일하기 시작한 친구 레아(Lea)는 내가 그녀를 만난 2015년 가을 덴마크의 정당 선거에 출마 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사회 참여에 관심이 높은 친구다. 
 “나도 노래 부르기 문화에 대해 한국에 알려지는 것이 정말 좋아. 모든 나라에 이런 노래책이 존재한다면 좋겠어. 네가 어제 부탁한 대로 노래 리스트를 스크롤하다 보니 정말 많고 많은 추억들이 노래와 함께 떠오르더라. 어릴 때 엄마가 나에게 불러준 노래, 학교에서 불렀던 노래, 장례식이나 결혼식, 세례식에서 불렀던 노래, 그 밖에도 수많은 노래들이 있어. 정신 차려보니 시간이 엄청나게 흘러 버렸지 뭐야. 왜냐면 노래 하나하나를 다 들어보고 싶어졌거든. 내 추억이 들어 있는 노래들은 모두 멜로디와 가사가 좋아. 너도 맘에 드는 노래를 찾는다면 좋겠다.” 길고 긴 추천곡 리스트를 보내온 레아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링크를 보내주었다. 


또 다른 친구 필리파(Philippa)는 폴케호이스콜레를 다녀온 후 덴마크 프리스콜레 교사를 양성하는 교원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인 입양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한국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씩 담긴 귀여운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며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엄마가 된 필리파는 수시로 내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하며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에 답해 주었고, 어설픈 나의 덴마크어-영어-한국어 번역에 대한 감수도 해 주었다. 


또 한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앞선 페이지에도 등장한 바 있는 마리 로젠버그(Marie), 나는 그녀에게 늘 반했다. 그녀는 매사 호기심이 많은 내가 던지는 숱한 질문을 기꺼이 환대해 주었다. 덴마크의 자전거 문화도, 트리 주변을 돌며 노래하던 크리스마스도, 덴마크의 멋진 작가, Halfdan Rasmussen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만큼 깊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내게 불러준 노래들과 그 속에 담긴 그녀의 추억 조각들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호이스콜레연합의 스텝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호이스콜레 175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호이스콜레에서 배우는 10가지 <10 Lessons from Denmark Folk High School > 책 작업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은 사라(Sara) 덕분에 2019년 그룬투비 호이스콜레에서 열렸던 175주년 기념 International Summit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서 미국, 캐나다, 그린란드, 필리핀, 일본, 네팔,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등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교육 운동(Movement)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만난 다양한 교육자들, 실천가들과의 교류가 바탕이 되어 이 글을 더 잘 써 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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