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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심신 단련 16화

당신은 나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인이라서

by 박기복

제주도에서의 일이다. 아침식사차 현지인에게 이끌려 간 곳은 식당이 아니라 '마지막 휴게 편의점'이었다. 중산간에 위치한 그곳은 등산이나 골프를 목적으로 온 여행객들이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가게였고 그래서 보통의 편의점과 달리, 주력 상품이 김밥, 어묵, 골프공이었다.


보통은 길가에나 있을법한 어묵 포장마차가 가게 내부에 차려져 있었다. 김이 펄펄 나는 국물 안에서는 어묵이 익어가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종이컵에 담은 국물을 호호 불어가면서 어묵과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도 김밥을 주문했다. 알루미늄 호일 속에서 이미 차가워진 김밥을 꼭꼭 씹어가면서 따끈한 국물을 들이켰다. 간이 딱 맞고 칼칼한 국물 덕에 빈 속이 따뜻해졌다.


그제야 가게 안을 둘러보는데 벽에 붙은 문구가 너무 참신해서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서나 보이도록 벽면마다 붙여놓은 안내사항은 바로, "텀블러 사용 금지"


실소가 터져 나왔다. 겨울 산행을 앞두고 있는 여행객이 배낭 속에서 텀블러를 꺼내 국자로 국물을 퍼담는 모습을 그려 본다. 상상만으로도 난처하다. 근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안내문을 부착한 것을 보면 이미 그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건데.


아.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두 번째 장면은 텀블러 사용 금지 구역을 목격한 다음 날의 얘기다.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책방 투어를 계획하고 서점 한 군데에 들렀다가 이어 인근의 북카페로 향했다. 검색으로 알게 된 곳이었고 높은 평점에 마음이 동했다.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은 북카페는 밖에서 봐도 이미 감성 충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출입문을 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고, 카페 사장님이 메뉴판을 들고 나를 따라온다. 놀란 내가 “자리에 앉아서 주문하나요?" 물으니 "주문은 카운터에서 해주시고요 이건 안내문입니다." 라며 손에 든 나무판을 건넨다. 메뉴판이 아니라 안내판이었다.


안내문에는 카페 이용 규칙이 적혀 있었다. 빼곡히 꽂힌 수많은 책들 중에서 편히 가져다가 자리에 앉아서 읽어도 되는 책과 값을 치러야만 자리로 가져갈 수 있는 책에 대한 안내, 카페 내에서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행동에 대한 당부였다.


그래서 불쾌했느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는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레이스 테이블보가 덮인 테이블마다 방명록으로 쓰이는 노트 한 권과 볼펜까지 놓여 있었다. 이 공간을 찾는 손님이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사려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저 ‘아, 고단한 삶이여’ 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다. 어제 어묵을 먹으며 본 풍경과 겹쳐져 진상 손님과 자영업자의 고통 같은 것들이 줄줄이 떠올라서다. 꽤 오랫동안 자영업자의 딸로 살았던 경험 탓일까. 구구절절한 부탁과 당부를 안내문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기까지 그간 북카페 사장님이 겪었을 사건들이 (딴 데서 주워들은 사연들을 바탕으로)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서 두 장면을 엮어 글을 쓸 생각을 했을 때,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에 대해서 푸념을 늘어놓으려고 했었다. 나는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상식이 아닐 때 벌어지는 비극과 고단함에 관해서 말이다. 안내문을 써붙일 수밖에 없었던 사장님의 사연, 그 분노와 울화 같은 것을 과장되게 상상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단하다’는 말은 다분히 새삼스럽고 어쩌면 감상적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갈등은 삶의 기본값이니까. 그들은 그저 주인의 일을 한 것이다. 해당 공간의 책임자로서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대응을 했을 뿐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행동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추운 겨울날 산행을 앞두고 어묵 국물을 텀블러에 담아 가고 싶은 사람들, 북카페니까 으레 모든 책을 다 가져다가 읽어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조용한 북카페에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 통화를 해가며 업무를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대단한 악당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은 영업에 큰 지장을 주고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제지를 당해야 마땅하다.


생계를 목적으로 재산과 열정을 쏟아부은 공간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규정하는 것은 사장님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책으로 가득한 정결한 공간에서 서로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고 (테이블마다 방명록을 둔 것으로 짐작컨대)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간다는 북카페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서 안내문은 무척 정당하다.


안내문을 보고 몇몇은 싫은 티를 냈을 수도 있고 어떤 행동을 제지당한 누군가는 거칠게 짐을 싸서 카페를 떠났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갈등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책임이 운영자에게 있고 그건 본인의 이익을 수호하는 방식이자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공익을 실현하는 길이 된다. 너덜한 새 책을 사고 싶은 사람도, 시끌시끌한 독서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평점이 높은 걸 보면 사장님의 의도대로 굴러가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잠시 더 생각을 굴려보자면 이건 비단 자영업자의 과제만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영역에 무엇을 들일지 말지, 누구를 들일지 말지, 어느 선까지를 허용해야 할지를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매 순간 선택한다.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은 천차만별이고 기준을 어느 정도 따를지도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말은 결국 기준을 스스로 마련하고 결연하게 그 기준대로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일 터다. 아예 기준이 없거나 자신이 정한 기준을 침해당하고도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고단한 삶을 불러들이는 셈이 되고, 그런 식의 고난을 자초하는 이에게 ‘주인’이라는 직함은 과분하다.


주인 된 삶을 살기로 작심한 나는 그래서 요즘 좀 어렵다. 나에게는 ‘시민’이라는 이름표도 있어서다. 주권자로서 가지는 권리와 의무에 더 민첩하려면 뉴스를 봐야 하는데, 뉴스를 보기가 싫어서 안절부절이다. 갈등과 혼란을 목격하는 일이 힘들다. 잘못은 했지만 벌은 받기 싫어서 아이처럼 떼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지친다. 억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있으면 이미 세상이 망가져버린 것처럼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럴 때면 가게를 꾸려가는 주인의 마음을 생각해 볼 일이다. 진상 손님 때문에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선을 넘는 행동은 제지하고 원하는 바를 명료하게 당부할 수밖에.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당신은, 국민을 그러니까 ‘나’를 개돼지 취급하는 당신은, 궤변과 억지 논리로 세상을 오염시키는 당신은 나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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