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단련> 연재를 마치며
매일 그리워하면서도 데이트는 피하는, 도통 그 맘을 알 수 없는 연인처럼. 나는 그렇게 굴었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친구를 만나면서도 자주 글쓰기를 떠올렸고(그러나 정작 쓰지는 않으니) 조바심마저 느꼈지만 나는 무척이나 태만했다. 기대가 높아서,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우물쭈물하다가 도달한 지점이 결국 태만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는 절대 못 만나. 고집을 부리다가 사랑을 놓쳐 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은, 다행히 되지 않았다. <심신 단련>을 연재하기로 결정한 덕분이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발행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쪽의 돌을 저쪽으로 굴려 옮기는 것만큼 쉬운 일일지 모르나, 내게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미 완결이 나서 기승전결을 헤아려 여러 차에 걸쳐 발행할 이야기랄 것이 내게는 없었다. 게다가 태생적인 에너지 기복 탓에 비슷한 텐션을 유지하며 몇 개월간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도 퍽 부담스러웠다. 그런데도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욕심이 부담감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요일을 정해 글을 꼬박꼬박 발행하기로 공표해 놓으면 뭐라도 쓰지 않을까. 싫증은 잘 내지만 책임감은 강한 편이니 거기에 기대보기로 했다. 잘 이행한다면 확실한 ‘성공 경험’이자 ‘자기 증명’이 될 터였다. 좋아하는 일조차 꾸준히 하지 못한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나는 태만을 끝장내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이라도 발행한다면 태만 혐의를 벗을 수 있으리라.
밑천 없이 장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쫄리는 마음이었지만 ‘심신 단련’이라고 제목을 지어놓으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지금껏 써왔고 앞으로도 쓸 확률이 높은 이야기라면 나를 돌보고 돌아보는 이야기가 될 터. 첫 글을 발행할 무렵은 자유수영을 부지런히 다닐 때라 수영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명상, 미라클 모닝, 건강한 식생활. 꾸준한 나의 관심사들을 적어 내려갔다. 순수한 재미를 느꼈다.
당시의 나는 그런 루틴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명상하듯 자유수영을 하고 건강한 음식들을 골라먹으면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알량한 내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건강 검진을 거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처음이라 충격이 컸는데 가장 다루기 힘든 건 질병으로 직면한 외로움이었다. 내 몸에서 벌어진 일이라 오롯이 내 몫이라는 실감이 외로움의 형태로 나타났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상황과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서 중심을 잡아준 것은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서 숙고할 수 있었다. 솟아오르는 감정을 문자로 적으면 다르게 볼 틈이 열렸다. 불안한 마음이 씨앗이 된 글이었지만 숙고해 가며 한 줄 두 줄 이어가는 사이에 서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결국 나는 끝내 이기는 사람, 아니면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세상은 나를 돕고 있었다. 그러니 나만 생각을 고쳐먹으면 될 일이었다.
브런치북 <심신 단련>의 첫 문장은 ‘아까는 무척 화가 났다’였다. 수영장에서 새치기를 당한 일로 씩씩거리며 시작하는 글이었다. 그 글을 쓸 때 아마 내 머릿속에서는 ‘타인은 지옥이다’ 같은 문장이 맴돌았을 것이다. 그런데 5개월이 흐르는 사이, 갑상선암이나 내란 사태가 초래한 괴로움 속을 헤매던 나를 위로한 것이 바로 그 타인의 존재였다. 좌절에 맞서 어려움을 극복한 환자들이나 불의에 맞서 용기를 낸 시민들의 이야기가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단지 매주 한 편의 글을 발행하는 사람이기를 소망했을 뿐인데 19개의 글을 연재하고 나니 많은 것이 변했다. 20번째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첫 글을 발행하던 까칠하고 새침한 나로부터 조금은 멀리 왔다(고 믿고 싶다). 여전히 나는 명상, 건강한 식생활, 산책 같은 것이 내 삶을 지탱해 준다고 믿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적어준 몇 개의 문장이 내 하루를 화사하게 밝혀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열린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띄우는 글들이 정확하게 갈 곳을 찾아 날아가는 필연도 믿는다.
수술 전날 병원에서 김창완의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를 읽었다. 슴슴하고 편안한 문장들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비쳐드는 것 같았다. 통찰이 담겨 있으되 젠체하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뛰어난 문장력을 갖추는 일보다 좋은 삶을 사는 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삶의 제1 덕목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삶이 아닐까. 동그라미가 조금 찌그러졌다고 유난 떨며 살아온 듯 뜨끔하다.
<심신 단련>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소소한 노력들을 나누려는 의도로 시작한 브런치북인 바, 결국 피날레는 글쓰기의 몫이 되어야 맞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연재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심신을 단련하는 일에 진심이었다. 동기 부여이면서 과정의 기록, 성장을 감지하는 게 모두 글쓰기의 공이다.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진심이야. 힘들지만 애써볼게. 우리 화요일마다 만나. 다시 제정신이 든 연인처럼 글쓰기를 향한 구애를 펼쳤고 그래서 든든한 사이가 됐다. 연인을 잃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20250225)
*** 지금까지 브런치북 <심신 단련>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부러 댓글까지 써주신 여러 귀한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