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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월스트리트는 차원이 달라!

모압→브라이스캐년시티(433 km, 5시간)

by Tatte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1.

14일여간의 로드트립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모압에서 브라이스캐년으로 이동하는 길은 차로 무려 5시간 이상 걸린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운전을 해야 하는 구간. 사실상 마지막 고비다.


아침에 일어나 등산을 하고 오후에는 차로 이동을 하는 타이트한 일정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느낀다. 하루에 등산하며 1만 5천보 이상 걷다 보니 살은 저절로 빠진다.


2.

애리조나와 유타, 네바다주를 크게 한 바퀴 그리는 그랜드서클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거친 바위와 돌로 뒤덮인 산길을 지나 어느 순간 고요한 평야를 달리다 보면, 뜬금없이 작은 마을이 나오길 반복한다. 이런 산골짜기에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구나 잠깐 놀라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끝없는 평야가 나온다. 맑았던 하늘에서 어느 순간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운전 환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지만 있는 힘을 다해 집중력을 쥐어짜본다.

3.

브라이스캐년시티로 가는 마지막 1시간은 말 그대로 직진만 했다. 끝없을 것 같았던 이 길은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이 있는 '브라이스캐년시티'가 나오면서 끝이 났다.


오늘의 숙소는 루비스인Rubby's Inn으로, 100년이 넘은 이 지역 대표 롯지rodge이다.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데다, 내부에 마트와 기념품 샵도 있어 사실상 이 지역의 쇼핑센터 역할을 한다. 차로 5분이면 브라이스캐년으로 진입할 수 있고, 숙소 앞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어 여러모로 편리하다. 가격은 사악하다. 조식 포함해 1박에 40만원에 달했으니 말이다.

브라이스캐년 '퀸스가든트레일'을 걷다 만난 후두 지형의 모습

4.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바로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브라이스캐년은 고지대에 있어 일교차가 크지만 한 여름의 낮 기온은 35도 이상 올라간다. 해가 중천이 되기 전 등산을 마치려면 최대한 부지런히 일정을 끝내야 한다.


5.

이곳의 가장 유명한 트레일은 나바호 루프 트레일Navajo Loop Traill과 퀸스가든 트레일Queen’s Garden Trail이다. 나바호 루프 트레일은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협곡을 볼 수 있는 길이고, 퀸스가든 트레일은 브라이스캐년의 독특한 지형인 후두(Hoodoo)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다행히 두 트레일이 연결되어 있다. '나바호루프트레일→퀸스가든 트레일' 방향으로 이동해도 되고, 그 반대로 이동해도 된다.


브라이스캐년 퀸스가든 트레일

6.

사실 이날 다수의 관광객들은 '나바호루프 트레일→퀸스가든 트레일' 방향으로 이동했는데 나는 퀸스가든 트레일에서 산행을 시작해 나바호루프트레일로 끝마쳤고, 이렇게 가는 것이 훨씬 등산하기 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퀸스가든트레일은 나바호루프트레일보다 완만하지만 길이 긴 편이라,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에는 오랜 시간 끊임없이 지루하게 올라가야 한다. 퀸스가든트레일을 내려가는 길에 나와 반대로 이 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은 헉헉 대며 힘들어했다.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브라이스캐년의 후두(Hoodoo) 지형

7.

퀸스가든 트레일은 이름처럼 '여왕의 정원'을 꾸며놓은 듯 아름다운 후두들이 펼쳐져 있다.


후두란 비, 눈, 바람, 얼었다 녹는 반복적인 기후 작용으로 바위가 깎여 형성된 기둥 모양의 지형을 말한다. 뾰족한 첨탑 모양의 침식암들이 산을 이루고 있어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어느 천재 건축가의 건축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후두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은 세계 각지에 여럿 있지만 그중 브라이스캐년은 그 밀집도와 규모, 색감 면에서 가장 유명하고 독특한 곳이라고 한다. 이 지역 원주민인 파이우트족은 후두들을 “사악한 존재들이 돌로 변한 것”이라 여겨 신성히 여겼다고 한다.

브라이스캐년의 월스트리트

8.

후두를 구경하며 천천히 퀸스가든 트레일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나바호루프 트레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나온다. 나바호루프 트레일의 시작점으로 가다 보면 가파른 절벽길이 나오는데, 이 구간을 '월스트리트Wall Street'라고 부른다.


후두와 협곡이 만나는 가작 극적인 구간이다. 브라이스캐년 특유의 침식 작용과 물의 흐름 등이 만들어낸 협곡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스위치백 계단, 하늘이 좁게 보이는 높은 벽, 중간중간 솟은 후두들이 장관을 이룬다.


협곡의 깊이가 압도적이어서 위에서 내려봐도, 밑에서 올려봐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다.


9.

뉴욕 '월스트리트'의 wall은 실재하지 않는다. 과거 네덜란드인들이 맨해튼 남쪽 끝에 4m 높이의 나무벽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지금은 전 세계 금융 패권의 상징이 됐지만 그 흔적은 지명과 역사 속에만 남아있다.


수백 년 전 뉴욕에 있었던 인공적인 벽보다 더 멋진 자연의 벽이 이곳 브라이스 캐년에 실재한다. 난간 하나 없는 지그재그 엇갈린 길을 정신없이 따라 올라가면 어느새 밑에서 보았던 하늘까지 나를 데려다준다.


10.

이번 로드트립을 통해 거쳐 온 그랜드캐니언부터 앤탈로프캐년, 모뉴먼트밸리, 아치스 국립공원까지 수많은 자연경관을 봤지만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것이 없이 다채롭다. 어느 것 하나는 좀 적당히 아름다울 법도 한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에서조차 그간의 경험을 다 엎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장관을 목격하게 된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 브라이스캐년시티에서는 루비스인에서 숙박하길 권장합니다. 금액이 다소 높긴 하지만 여러모로 이점이 많습니다.
- 브라이스캐년에서는 '퀸스가든 트레일→나바호루프 트레일' 순으로 방문하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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