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캐년시티→스프링데일(140 km, 2시간)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1.
14일간의 로드트립의 사실상 마지막 일정인 자이온 캐년Zion Canyon 등산을 앞두고 스프링데일에서 여독을 푼다. 스프링데일은 자이온 국립공원의 진입점이자 호텔, 레스토랑이 밀집한 작은 관광 마을이다.
2.
마지막 숙소로 선택한 <springhill suites by marriott springdale zion national park> 호텔은 이곳에서도 가격이 꽤 높은 편에 속하는 고급형 리조트다. 스프링데일은 작은 관광 마을이고 이곳에 있는 숙소는 호텔과 모텔, 롯지 모두 가격이 높은 편이다. 모텔급의 어정쩡한 숙소에 돈을 들이느니 돈을 더 보태 좋은 호텔에서 마지막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1박에 285달러로, 환율과 세금을 감안하면 40만원 정도.
3.
등산과 장거리 운전을 일주일 넘게 반복하다 보니 체력은 고갈된 상태. 숙소에 도착해 얼리 체크인을 하자마자 주변을 구경할 새도 없이 방에 쓰러지듯 누워 잠들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숙소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시설 모두 훌륭했다. 로비와 수영장에서는 자이온 캐년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30초 거리에 스포츠 펍이 있어 요깃거리를 찾으러 들어갔다. 우리를 제외하고 손님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백인 커플이었다. 미국 현지에서도 사랑받는 휴양지라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 별 기대 없이 시킨 블루치즈 버거는 풍미가 좋았다.
4.
자이온캐년 국립공원은 주차난으로 악명 높다. 자이온캐년의 주요 등산 코스에 가려면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방문객에 비해 주차 공간이 너무 좁다 보니 아침에도 표류하는 차들이 국립공원 입구에 줄을 잇는다.
주차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면 새벽같이 일어나 산으로 향해야 한다. 나의 경우 7시에 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우리보다 일찍 온 관광객들이 많아 주차 공간이 90% 이상 차있는 상태였다. 이른 시간이지만 셔틀버스 대기줄도 길어 한 대를 보내고 탈 수 있었다.
5.
오늘 우리가 타깃한 코스는 '더 내로우즈The Narrows'라는 트레일이다. 자이온 캐년의 가장 좁은 구간으로, 노스 폴킹 버진 강North Fork Virgin River을 따라 수중 산행을 한다. 계곡을 가로질러 1000피트 이상 높이의 사암 협곡 사이를 걷는 독특한 트레일 경험을 할 수 있다. 때때로 수심이 가슴 높이까지 와 사전에 장비도 준비해야 한다.
6.
스프링데일의 여러 스포츠용품점에는 더내로우즈를 가는 사람들을 타깃해 방수 장비를 유료로 대여해 준다. 방수 신발과 방수 양말, 하이킹 스틱 가장 기본적인 구성의 세트다. 여름엔 이 정도 세트면 충분하다. 봄, 가을은 수온이 낮다 보니 방수 슈트도 빌릴 수 있다. 우리는 미리 아쿠아슈즈를 구매했던 터라 장비를 빌리지 않았다. 다만 방수 가방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점은 아쉽다. 막상 가보니 계곡물의 깊이가 꽤 깊었기 때문이다.
7.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템플오브시나와바Temple of Sinawava(Stop 9) 정류장에서 내리면 리버사이드워크Riverside Walk 트레일이 나온다. '난이도 하' 수준의 초급자 산책길인데, 이 길을 따라 20여분 산책하듯 걷다 보면 길이 끊기고 계곡물이 나온다. 더내로우즈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더내로우즈에 가기 전, 주의 깊게 봐야 할 표지판이 있다. 홍수 flash flooding 위험성이다. 이날은 위험도가 가장 낮은 날이라 물 속을 걷기에 적합했지만, possible 단계부터는 주의가 필요하다.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언제든 갑자기 수위가 높아질 수 있고 물살도 순식간에 거세질 수 있어서다.
8.
자이온캐년의 온도는 스프링데일에 비해 3~5도 이상 낮은 편이다. 오전 7시 정도라 산 중턱의 온도는 아직 서늘했다. 계곡물의 온도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발을 담그는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걷다 보니 이내 또 익숙해졌다. 수위는 얕지만 물살은 꽤 거세다. 20분~30분 정도 허벅지 밑까지 오는 얕은 계곡물을 걸었을 뿐인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다 보니 몸에 꽤나 힘이 들어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9.
미끄러운 계곡 바닥을 조심히 살피며 걷던 사람들이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고 어느 한 곳에 멈춰서 있다.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더내로우즈의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사람들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더 나아갈 것인가, 여기서 멈출 것인가. 무리마다 격렬한 토론이 시작된다. 더내로우즈 트레일은 왕복 기준 최대 12시간까지 하이킹이 가능한 구간이라 각자의 난이도에 맞게 거리와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물의 높이가 깊은 곳은 목까지 차오르다 보니 온몸이 젖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이미 단단히 각오를 한 사람들은 별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백팩을 머리 위에 올려 걷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깊은 구간을 건너는 아이들이 보호자들의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보호자의 목 위로 올라타거나 등에 업혀 이동했다.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깊어 점점 어두워지는 계곡의 색을 보며 겁을 낼 법도한데 부모의 목에 매달려 물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용기를 내 물길을 건너는 아이들도 대단하지만, 이런 모험을 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이들의 부모님들이 멋져 보였다.
10.
아쉽게도 나의 여정은 수심이 급격히 깊어진 이 구간에서 멈춰야 했다. 아쿠아슈즈 이외엔 방수에 대비한 가방도, 여분의 옷이나 수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벽 산 중 온도가 꽤나 낮아서 물에 잘못 들어갔다가 저체온증에 걸릴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왕복 40~50분을 강물을 따라 오르내리는 독특한 이번 수중 산행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난 12일간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주를 거쳐 어려 국립공원을 들렸지만 이런 수중 산행은 또 처음이었다. 무엇하나 같은 게 없는 미국의 국립공원 여행의 매력, 자이온 캐년에서 방점을 찍었다.
11.
수중산행을 한 후 돌아오는 셔틀버스에서 수영장에서 한바탕 놀고 온 것처럼 기절해 잠들었다.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서성이는 차들의 기대 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우리는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 국립공원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공항이 있는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자이온캐년 국립공원은 주차난이 심하니 이른 시간 산행을 시작하시길 권장합니다.
-더내로우즈를 가신다면 미리 아쿠아슈즈와 등산스틱, 방수가방을 챙겨 오시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스프링데일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아쿠아슈즈, 방수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장비를 준비하기 어렵다면 스프링데일에 있는 여러 스포츠용품점에서 하루간 대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