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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는 순댓국 맛집(feat. 로드트립 대단원)

스프링데일→라스베이거스(254 km, 2시간 30분)

by Tatte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1.

다시 돌아온 라스베이거스는 한낮 40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늘이 없는 곳에선 숨 쉬기 어려울 만큼 뜨거운 공기에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베가스에 있는 호텔들은 냉장고처럼 에어컨을 최대한 가동해 바깥 더위를 잊게 만든다. 호텔 안이 너무 추워서 잠깐 밖으로 나가면 봄처럼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2.

자연 속에 2주간 있다가 돌아와 그런지 라스베이거스는 평소보다 더 괴상하게 느껴졌다. 번쩍거리는 카지노의 조명들, 그 옆에 줄지어 있는 명품샵. 그 속에 섞인 사람들의 얼굴은 쾌락에 가까운 즐거움이 가득하다. 관광객 사이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표정은 전의를 상실한 군인에 가깝다. 도파민에 찌는 사람들을 매일 상대하다 보면 그 끝은 허무인가 짐작하게 된다.


베가스라는 현실과 환상의 괴리는 이곳 사람들의 옷 두께 차이만큼 크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추운 내부 온도 때문에 보기에도 더운 외투를 꼼꼼히 껴입고 있지만, 관광객들은 옷을 반쯤 헐벗어도 카지노가 얼마나 추운 지도 잊고 지낸다.


3.

연초마다 열리는 CES 행사로 라스베이거스 출장을 가는 동료 기자들이나 기업인들이 주변에 있다 보니 후일담을 종종 듣곤 한다. 유명한 한식당이 몇 곳이 있는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리다 보니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마주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식집들이 어설픈 한국 음식을 하는 게 아니어서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된다는 이야길 여러 번 들은 바 있다.


4.

나는 '미국까지 와서 한식을 왜 사 먹냐'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한식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디서 뭘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아서다. 사실 한국은 이제 한식은 물론이고 양식, 일식, 중식 심지어 제빵과 커피까지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한식당은 맛도 그저 그런데 가격도 너무 비싸서 가성비, 가심비 면에서 모두 만족하기 어렵다. 보스턴에도 한식당이 있지만, 내가 한식당에 한 번씩 가는 건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혹시나 한식을 찾을 때 모시고 갈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한 사전 답사용 그뿐이었다.


5.

그럼에도 오랜 여행이 끝나갈수록 생각나는 것은 한국 음식뿐이었다. 중간중간 멕시칸 음식, 태국 음식을 먹으며 식단에 변화를 줬지만 음식의 맛과 별개로 에너지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에 먹을만한 한식집이 많다는 과거의 전언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자이언캐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들어오자마자 H마트 근처에 있는 한국 체인 브랜드 순댓국집으로 달려갔다. 40도에 이르는 날씨에도 매운 양념이 가득 들어간 '얼큰' 순댓국을 시켰고 바닥이 보이도록 싹싹 긁어먹었다. 저녁에는 호텔 앞에 있는 한국식 무한 고기 뷔페집을 찾아가서 소고기와 삼겹살, 양념갈비를 치사량만큼 먹었다. 미국에서 가장 맛있게 한식을 먹은 날이다.


6.

보스턴으로 돌아가기 전날 델타에서 전화가 왔다.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가 오버부킹이라며 델타에서 여행 날짜를 바꿀 수 있을지 묻는 전화였다. 날짜를 바꾼다면 항공권을 새로 끊어주는 것은 물론 비행기 티켓 가격 2배에 준하는 항공 포인트를 다시 적립해 준다고 했다. 물론 날짜를 바꿔도 개인 일정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라스베이거스에 더 있다가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별 고민 없이 거절의사를 밝혔다. 얹어준다는 항공 포인트는 구미가 당기긴 했으나, 이번 여행 초반 위탁 수화물 이슈와 비상 착륙하는 과정에서 델타의 불친절한 대응을 경험한 터라 앞으로는 델타는 피할 생각이다.


7.

여행 초반 문제가 됐던 백 체크 이슈에 대해서는 여행이 끝난 후 돌아와 공식적으로 델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했다. 이메일 영수증에는 위탁 수화물이 무료라고 안내를 했다가 현장에서는 왜 130달러를 추가로 결제하라고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여줘도 왜 델타가 이런 이메일을 보냈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게 영 답답하기도 했고.


델타의 답변은 일주일 정도 뒤에 돌아왔다. 델타는 단순한 서비스 오류라는 입장. 델타는 "무료 위탁 수하물 혜택에 대해 잘못 안내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서비스 오류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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