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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an 13. 2019

야근과 수련의 줄다리기

야근의 신이여 제발 오늘만은!





오늘은 꼭 도장에 가야지.


어느 아침의 출근길. 나는 지하철에서 하루 동안 처리할 일의 목록을 가늠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이 일을, 오후에는 이 일을 해야지. 일상적인 업무들이 대부분이니 왠만하면 제 때에 일이 끝날 거였다. 정시에 퇴근할거야. 내 다리는 도장으로 달릴 준비가 됐어.  


오후가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업무 채팅방에서 느껴지는 격무의 기운. 예상 밖의 일이 생길 낌새였고 오후 다섯 시 무렵 업무 지시가 왔다. 망했네. 정시퇴근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급해져 키보드 치는 속도가(업무 퀄리티 상승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업무를 훌훌 털어냈을 것 같지만 반전은 없었다. 결국 도장에 못 갔다. 


검도처럼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뭔가를 하려면 어딘가 고정된 장소로 가야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는 끊임없이 바쁜 요즘 사람들. 회사가 아닌 어떤 공간에 특정 시간 동안 꾸준히 머문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다. 아무리 내 돈을 내고 간다 한들, 회사처럼 강제성이 아닌 자발성으로 어딘가를 꾸준히 간다는 게 쉬운일이던가. 


꾸준함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 요인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술 약속일 수도, 게을러지는 마음일 수 있겠다. 내게는 그게 야근이었다. 귀찮은 마음이 들면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지만(“운동할 시간이 언제 또 나겠어, 일단 가자”) 야근은 어느날 갑자기 닥친다는 점에서 예측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었다.  


자연재해마냥 야근이 몸과 기대감을 쓸어버린 밤, 나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뻣뻣하게 굳은 허벅지와 어깨를 부여잡으며 일을 마무리하곤 했다. 그 즈음에는 땀을 흘리는 저녁보다 야근하며 나를 쥐어짜는 저녁이 더 잦았던 것 같다.  


그래도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저녁 8시부가 있는 도장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저녁 7시 타임을 운영하는 도장에 다닐 때는 수련시간이 눈물날 만큼 적었다. 정시퇴근을 해도 운동시간 내는 게 쉽지 않아서다. 운이 좋으면 6시 30분(사실 이것도 퇴근시간 30분 초과인데..)쯤 퇴근해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좁디 좁은 지하철 한켠, 거기에 몸을 우겨넣은 채 사람들 사이에 납작히 눌린 채 머릿속으로 수련시간을 가늠해봤다. 빨리 도착하면 보통 7시 35분이겠지. 도복으로 갈아입고 호구를 착용하면 수련 끝나기 10여 분 전일텐데. 그냥 집에 가야 하나. 조금이라도 죽도를 쥐고 움직이는 게 나을까.  


이런 나날이 반복되다 보니 마음 한켠이 조급해졌다. 시합에 입상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야근도 적을 것 같고 수련 시간도 충분할 것 같은데, 나는 이게 뭐람. 왜 가는 회사마다 잦은 야근 당첨의 상황이람. 입상까지 갈 것도 없고 수련을 계속하기조차 어려울지 몰라. 이런 생각까지 미치면 화가 났다. 그럴 때는 완전 연소하는 불길처럼 성내는 내 옆에서 애인이 말했다. “일단 주어지는 여건 안에서 할 수밖에 없어. 포기하면 안돼.”  


애인이 이런 말을 할 때 사실 화가 난다. “내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잘 할 수가 있겠어. 야근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어” 그래도 계속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마음이 기운다. 땡땡이의 합리적 근거가 충분한 상황에서 집으로 갈지, 불가능해보이는 틈새수련의 시간이라도 활용할지. 마음을 굳힌다. 10분이 남았어도 할 수 있는 걸 하자.  


도장이 있는 지하철역에서 도착하면 계단을 향해 내리 달릴 타이밍이다. 달리기가 수련 전 나름의 워밍업인 셈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장에 도착하면 한 사람, 운 좋으면 두 사람과 대련할 정도의 짬이 생겼다. 허겁지겁 호구를 쓰고 한 두 사람과 대련, 그 후에는 도장 뒷편에서 혼자 기본동작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혼자 죽도를 쥐고 기본동작 연습을 하고 있으면 수련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후 돌아오는 선배들이 하나 둘 스쳐가며 묻곤 했다. “오늘도 뒷편에서 혼자 운동하는거야?” 약간 쓸쓸한 마음을 누르며 애써 담담하게 답했다. “네. 몸에 안 좋은 습관이 붙은 게 많아서 기본연습을 하려고요.”  


“그럼 수고해." 어떤 선배는 짧은 인사와 함께 집에 갔다. 때로는 애인이 함께 나를 기다려줘 기본동작을 한 나날도 있다. 취향도 정치 성향도 다르지만 이런 때만큼은 좋아하는 취미에 대한 진지함의 깊이도, 그 취미 안에서 성장하려는 방향도 많이 일치하는 우리. 이런 퇴근길 질주는 내가 8시부를 운영하는 도장으로 옮기면서 끝났다. 도장을 옳길 즈음에는 회사의 야근 빈도도 낮아졌다. 


그래도 여전한 문제가 있었다. 풀리지 않는 피로감. 일과시간 안에 일을 마치고 와도 그 시간 동안 긴장했던 탓에 도장에 올 무렵에는 몹시 졸렸다. 도장의 마루바닥을 보면 “여기야말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곳이지” 하고 신이 났지만, 도복을 입은 다음에는 내가 여기서 해야 할 게 수련인지 숙면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고생해서 왔는데 해야지”. 조금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탈의실 귀퉁이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가 들어갔다. 터덜터덜 탈의실 문을 열고 구석을 찾아 털썩 주저 앉는 나. 피곤에 찌든 나는 흐물흐물하게 움직이는 꼴이 흡사 연체동물 같다. 그래도 도장 문을 열고 사람들과 인사하면 다시 몸을 움직인다. 고단자 선배들과 대련하면 아무것도 못 하겠지 싶다가도 뭐라도 해낸다. 그런 나날을 이어갔다. 


그때의 나는 왜 수련시간 확보에 목을 맸던가. 지금 생각하면 슬쩍 미련한 감이 있다. 선수생활을 할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만큼 실력이 쑥쑥 늘 정도로 운동신경이 딱히 좋지 않은데. 이제 와 이유는 딱히 잘 모르겠다. 정말 나를 포함해 검도를 오래하는 사람들은, 진짜 이게 뭐라고 그토록 진지하게 좋아하는지.  


몸 움직이는 취미에 대한 질긴 애정. 그건 잘 생긴 사람을 보고 한눈에 빠지는 사랑 같은 게 아니다. 투박한 그릇에 담겼지만 언제든 먹어도 질리지 않는 된장찌개 같은 정이다. 게다가 이 정은 하루의 마무리를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구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고 싶다. 충실하게 땀을 쏟는 즐거움을 몸으로 흠뻑 누릴테다. 그런 충만한 느낌으로 와닿는 몸의 감각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피로감에 고생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보다 힘도 세고 빠르고 키 큰 도장의 남자 선배들. 그들도 회사 일이 힘든 날에는 수련 도중 주저 앉더라.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만성피로는 남녀불문이구나. 근데 힘든데도 와서 이렇게 다들 수련하는 거였어.  


묘하게 위로가 됐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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