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던가. 아내와 염리동에 있는 평양냉면 전문점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고등학교 방향으로 쭉 가면 구석으로 빠지는 샛길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에 오래된 갈빗집이 하나 있다. 그 갈빗집을 지나면 냉면집까지 거의 다 온 것이다.
홍대에 있는 꼬치구이집. 아무생각 없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여기 있었다. 이게 다 연기 때문이다.
냉면집을 찾아갈 때면 늘상 그 앞을 지나가는데, 어느 날인가는 발밑에서 갑자기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한 살 남짓한 강아지(견종은 잘 모르겠다) 한 마리가 문 앞에 묶여 있었다. 주인이 갈비를 먹는 걸 보고 서러워서 낑낑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강아지의 고통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대문으로 끊임없이 갈비 굽는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냄새만 맡고 먹지는 못하는 형벌이라니. 얼마나 괴로울까.
언젠가 공중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UTD(해군특수전단)의 입소 훈련을 취재해 방영한 적이 있다. 입소 이후의 모든 순간들이 다 힘들겠지만 보는 나로 하여금 '어우야!' 소리가 절로 나게 한 건 생식주 훈련이었다. 정식 UDT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해군 특수전단에 입소해 10주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4박 5일 동안 식물이나 곤충을 채집해 섭취하는 훈련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 주간에는 정말 밥도 물도 주지 않는다.
바비큐의 가장 큰 위력은 연기와 냄새
그 자체도 크나큰 시련인데, 훈련의 가혹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훈련 도중 교관들이 갑자기 버너를 꺼내더니 훈련병들 앞에서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추 위에 다 구운 삼겹살을 올려 볼이 터질 만큼 욱여넣었다. 그때 한 교관이 삼겹살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더니 훈련병들에게 이야기했다.
"먹고 싶어? 먹을 수 있어! 와서 한 점 해."
물론 저걸 먹는 순간 훈련병은 퇴소 처리된다. 그래도 얼마나 먹고 싶을까. 나라면 동료들이고 뭐고 그냥 먹고 퇴소했을 것이다. 며칠 굶은 바비큐 러버에게 고기 굽는 냄새만 맡으라는 건 그만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조국도 나 같이 물러 터진 놈을 원하지 않겠지만.
그 괴로움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기 굽는 냄새는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가졌다. 지금도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 경로를 이탈해 한 블록 옆 갈빗집 근처로 발길을 옮기곤 한다. 거기서 갈비 굽는 냄새를 한 번 '슥' 맡고 지나가면 이유도 없이 괜히 즐겁다. 갈비 한 점에 물냉면 한 사발 들이키는 상상을 하면서.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앞 그릴 치킨집에서 닭 굽는 냄새를 한 번 더 맡으면 완벽한 산책이다.
고기 굽는 냄새에는 어떤 기교나 논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누군가 고기를 구웠고, 냄새가 퍼졌을 뿐이다. 그 뿐이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반응한다. 그만큼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홍보수단이다. 이유가 뭘까. 21세기지만 아직 우리의 유전자는 사실 1만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내 얘기가 아니라 <요리본능>을 쓴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의 말이다).
한 줌의 연기가 천 장의 전단지보다 위력적이다
실제로 여전히 인류는 축제의 클라이막스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우리도 그 중 일부일 것이다. 야영지로 야유회나 단합대회를 떠나면, 본격적으로 흥이 나기 시작하는 순간은 바로 고기를 굽기 시작할 때부터 아니던가(사실 나는 고기든 식물이든 구워 먹으면 마냥 좋다). 장사가 잘 될수록 고기냄새는 더 멀리 짙게 퍼진다. 단지 이 냄새만으로 가게는 단 한 푼의 비용 없이 간판보다 더 위력적인 홍보 효과를 낸다.
이는 물론 주변 가게에 민폐가 되기도 한다. 주변 가게에 연기 냄새가 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에 의류나 지물포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있다면 환기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연기를 많이 내뿜는 고깃집들은 주로 한 곳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연기가 주는 판촉 효과는 더 극대화된다. 자연스럽게 먹자골목이 형성된다. 1970년대 마포 갈비 골목이 그랬듯이.
연기는 고깃집이 자신의 영역을구축하는 중요한 무기다. 단언컨대 한 줌의 연기가 수 천 장의 전단지보다 위력적이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이 전략에 알고도 넘어간다.
사실 이 글을 적는 것도 집 앞 그릴 치킨집에서 나오는 연기를 맡고 쓰는 거다(어쩐지 글이 잘 써지더라).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여보세요? 사장님! 3단지 앞 통닭집 맞죠? 여기 소금구이 하나랑, 양념 반반씩 포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