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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l 03. 2024

노동 소외와 육개장

그린사람: ㅅㅂ


대학 시절 '권리와 삶'이라는 전공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참고로 나는 정치외교학과 전공이다). 현대사회에서 계약이 작동하는 원리를 노동 문제와 결부해 논증하는 과목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기계의 부속품이 돼가며 자신을 잃어버리는가. 돈이 신 이상의 권능을 갖는 이유는 뭔가. 그것들이 다 뭐기에 사람들은 먹는장사를 하면서도 끼니를 거르고, 환자를 간호하면서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미소를 지으며 고객들을 대해야만 하는가. 사람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전락하며 인격권을 상실하는 현상 노동소외라고 하는데,  확대 재생산하는 현대사회의 계약 질서가 어떤 구조로 이뤄졌는지 탐구하는 수업이었다.



문제는  계약구조를 수식으로 증명해내야 했다. 꽤 많은 수식들이 동원됐고, 수학에 진절머리가 나 문과를 택했던 나는 수업 내내 졸았다. 내가 조는 모습을 본 교수님은 “20대라면 이런 문제들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분노하고 싶어도 분노할 수 없었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학점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방학 때 C학점을 받고 수강 포기 신청을 했다.      


지금은 일을 하므로 더 이상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이 작동하는지, 그걸 알면서도 일을 멈출 수 없는지 이제는 몸으로 아니까. 그러니까, 왜 하필 식당 일이었던 걸까, 하필! 그렇지 않았으면 일단 밥이라도 여유있게 먹었을 텐데. 물론 무의미한 가정이다. 아마 다른 일을 했다면, 내 인생에서 행복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 중 다른 하나를 또 내줬을 것이다. 


다만 엄살을 좀 부리자면, 식당의 노동소외는 어딘가 조금 더 서럽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던가. 근데 식당 노동자는 이 먹는 행위에 애달픔이 있다. 내 밥보다는 손님의 밥이 먼저다. 내가 밥을 먹다가도 손님의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주방으로 뛰어가야 한다. 그 사이에 당연히 밥은 식어간다. 여기서 일하면 밥은 먹는 것이라기보다 위장에 쓸어 담아야 하는 행위가 된다. 일한 지 1년쯤 되니까 밥을 먹으면서 창밖을 힐끔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식당의 위치가 비즈니스 타운이나 도심이라면 브레이크 타임을 걸어도 좋을 텐데. 이런 시골 동네에서 사치에 가깝다. 사실 브레이크 타임을 걸어도 막상 누릴 수 있는 휴식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저녁준비가 만만치 않아서다. 파인다이닝에서 동네 분식집까지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위장병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오늘도 밥을 먹다 배달 주문이 들어와 입에 밥을 쓸어 담았다. 사실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저녁은 마감 준비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아예 먹지 못한다.


그렇게 제대로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퇴근하면 때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마다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 들어간다. 그래 봐야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밤 10시라 문을 연 식당도 몇 없다. 때마침 시내를 돌아다니다 새로 생긴 육개장 집을 찾았다. 밥값은 8천 원이었는데 자리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고 나서야 24시라는 간판의 문구를 봤다. 가게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사장님은 주방에서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밤을 새우고 집에 바로 오면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셔야 잠들 수 있다고 했다. 직원도 술 없이는 도저히 눈이 감기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먹을 권리도, 잠을 잘 권리도 내준 채 하는 밥벌이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지금의 삶에 안도해야 하는 걸까. 그 안도가 뭘 의미하는지 몰라 그저 밥만 먹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사모님이 때를 짐작할 수 없는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목요일 밤 11시였다. 서둘러 일어나 값을 치렀다. 건강 잘 챙기세요, 인사를 건네면서 문 밖을 나섰다. 괜한 오지랖이었을까.


자정 무 시내 번화가는 고기 굽는 냄새와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정신이 없다. 취한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며 잃은 것들을 보상받기 위해 소주 한 잔 걸쳤으리라. 그들이 서로의 잔을 채우는 동안 삼겹살을 잘라주는 직원들은 생계를 위해 뭔가를 내줘야만 할 시간이리라. 누구든, 어떻게 살든, 직업이 무엇이든, 일을 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내주는 삶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 역시. 배는 부른데 괜히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더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 그냥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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