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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주연 Jun 14. 2021

훔쳐가는 제목

2021년 6월 7일 월요일 편집자의 일기

신문 제목은 늘 문학에 빚진다. 문학을 전공한 편집자가 본인 전공을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사건을 기술하는 기사는 문학적 글쓰기와 거리가 멀겠지만, 제목은 부단히 문학을 표방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시문학. 한 편의 기사를 한 줄의 제목으로 대변하는 과정은 시를 짓는 일과 흡사하다. DNA 구조가 아주 약간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과 침팬지가 전혀 다른 종으로 구분되듯이 신문 제목과 시문학은 아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아주 약간의 차이점으로 다른 종으로 갈라진 것일 테다.


문학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헤드라인은 ‘패러디’에 의지할 때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 제목 중에 관용구나 속담처럼 쓰이는 제목들이 꽤 많다. 당장 생각나는 제목 몇 개만 적어볼까. ‘주먹이 운다’ ‘네 멋대로 해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절한 금자씨’  ‘살인의 추억’…  제목을 짓는 입장에서 이미 화제성이 검증된 제목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작년 10월 14일 자 경향신문 1면은 그 무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경우다. 고시원에서 연고 없이 사망하는 고독사 증가 현상을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제목을 과감하게 검은 일러스트 배경에 흰 글씨를 세로로 적었다.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를 패러디 한 ‘나혼자… 죽는다’.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제목이다.


경향신문의 패러디 제목처럼 나도 언젠간 날카롭게 꽂히는 패러디 제목을 뽑고 싶다. 그게 쉽지가 않다. 신문 제목의 패러디는 ‘날카롭게 꽂히는’ 느낌이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그 날이 무디면 촌스럽게 느껴진다. 더 나쁜 경우는 게으른 제목이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조금만 인기 있어지면 접두사로‘K’를 붙이는 경향이 불러온 부끄러움이랄까.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시스템에 ‘K-방역’이란 이름을 붙여 자화자찬했지만 정작 중요한 백신 확보는 한발 늦어버린 아이러니. 오늘 1면 톱기사는 백신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논란을 일으키는 ‘K-방역’에 대한 분석 기사다.


[K-방역의 현주소… 빛나거나 빛바랬거나]


처음 뽑은 헤드라인은 이랬다. 남들은 몰라줘도 나름대로 소심한 패러디를 시도했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문장 꼴을 빌렸는데 딱히 효과적이진 않은 것 같다. 아니면 게으른 제목이란 인상을 줬을 수도. 편집회의가 끝난 후 부장님은 “제목을 좀 더 세게 가자. ‘샴페인 일찍 터트렸다’, ‘속 빈 강정’ 이런 내용으로 단정 지어도 괜찮아”라고 하셨다. ‘빛바랜’ 쪽으로 좀 더 무게를 실어 수정한 제목 [샴페인 너무 일렀나… 빛바랜 K-방역]으로 정해졌다.


“보다 효과적으로 현실을 재현하고 비판하기 위해 기존의 텍스트를 활용하던 시대는 지났다. 원텍스트의 원본성을 주장하던 시대도 지났다. 복제가 현실을 베끼는 게 아니라 거꾸로 현실이 복제를 베끼는 하이퍼 메커니즘 속에서, 텍스트와 현실 간의 간극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때로는 그들의 존재 가치도 역전된다. 현실을 모방해 내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는 의미의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 정끝별, 「21세기 패러디 시학의 향방」, 9-10p.


매일매일 1면을 짜다보면 간혹 어느 중요한 날을 위한 연습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텍스트를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는 의미의 전복’을 위해 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단련하는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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