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주연 Oct 30. 2024

적응

  꽃잎이 아파트 현관에 쌓여 있다. 

  유리문이 열리면서 꽃잎을 더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집을 옮기면 새로운 버릇을 만들어야 해. 

  허전한 왼손. 

  오늘은 손을 여러 번 감싸 쥐게 될 거야.      


  정류장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선 아무도 망설이지 않아요. 쏟아지는 사람들 틈에서 다른 속도로 걷는 건 오직 작은 사람과 작은 개뿐입니다.      


  어떤 건축가는 주인을 위해서 기둥 몇 개를 보태어 집을 지었대. 그 기둥은 천장에 닿지 않았습니다. 천(川)을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 유리창이 커다란 건물엔 햇빛 냄새가 가득해. 의자에 앉을 때 몸 위로 온기가 덮쳐 온다. 옆 사람이 알게 될까 봐 조심해서 앉는 버릇이 생겼어.      


  연결되기 위해선 건물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앉아 쉬었다. 저쪽에서 걸어오던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가 쳐다봐서 그런가 봐. 고개를 돌리고 있자. 신발 소리를 낼 만큼의 무게도 되지 않은가 봐. 머리 뒤쪽으로 아무런 형체도 그려지지 않았다.      


  허물기에 크다면 유지하기에도 너무 크다.     


  길 한가운데에 계단이 있다면 좋겠어. 아무것도 연결하지 않은 채로. 계단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곳은 사람을 불러 모으게 될 거야.      


  언덕길을 거슬러 오르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새로운 버릇이 왼손에 깃들기 위해서.

이전 09화 식물 식별능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