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동네는 또래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부모들이 살기에 적합했던 동네였던 거 같다.
누군지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과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같이 놀고 있었다.
그 시절엔 그런 게 자연스러웠다.
지금도 가끔은 그때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내 초등학교 시절을 찬란하게 만들어 줬던 그때의 그 아이들이.
그 아이들과 첫 만남이 언제였는가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 두 살 차이 나는 아이들이 우리 집 건물로 이사를 왔던 게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시기였던 거 같다.
엄마들끼리 서로 일이 있어 자신들의 아이를 서로의 집에 맡기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게 개구지게 생긴 그 아이들이 언제부턴가 말을 걸어오고, 같이 놀게 되었던 거 같다.
어느 날엔가는 지구탐험대를 결성해서 산을 타고 돌아다녔다. 동네에 민둥산이 많았던 터라.
산을 타다가 엄마한테 발각되어 혼나는 일이 많았다. 엄마는 위험하다며 산에 오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탐험대인데, 어찌 산을 못 오르게 하냔 말이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호되게 혼난 이후로 그냥 동네 골목에서 놀았다. 어울려 놀던 아이 중 한 아이가 태권도 학원을 다녔었는 데, 우리는 그 아이에게 태권도를 배우며 지구용사를 꿈꿨다. 지금까지도 내가 발차기를 기가 막히게(?) 하는 것은 그때 그 아이의 가르침 덕분이다.
그렇게 같이 어울리는 또래아이들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돌아서면 한 명 늘어나있고, 돌아서면 한 명 늘어나 있었다. 동네에 작은 잔디밭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축구도 하고, 얼음땡 놀이도 하고,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놀이란 놀이는 다 했던 거 같다.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놀이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 땅을 갈아엎는 과정에 있을 때 까지도 우리는 그 공간에서 놀곤 했다.
기초 공사로 인해 땅이 1m 정도 파여있었는데, 비가 잔뜩 왔던 다음 날에 그곳에는 물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판넬과 작데기를 들고 와서 마치 뗏목처럼 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금쪽이들이었다. 한 명이 올라섰을 때 괜찮자, 한 명 더 올라서고, 그렇게 한 명. 두 명. 늘어가다가 예상되다시피 전부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 깊지는 않아 위험하진 않았지만, 흙탕물에 빠졌으니, 등짝 스매싱 각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여름이 되었을 때, 우리는 흙탕물이 아닌 깨끗한 수영장 물에서 놀았다. 그렇게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놀아야 하는 건데, 우리는 그렇게 동네 공사장에서 놀곤 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아이들과 공사장 벽을 타면서 놀다가 손으로 짚은 벽돌이 흔들리며 떨어져 한 아이가 이마에 벽돌을 맞은 것이다. 내가 그 아이들에 비해 한두 살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위험한 공간에서 놀면 안 된다고 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어른들한테도 애들하고 똑같이 놀면 어떡하느냐고 혼났던 거 같기도 하고.. 그 당시 그 아이는 이마를 다섯 바늘인가 꿰맸던 거 같다.
그 이후로 한동안 조용히 지냈던 거 같다. 그때의 일이 계기였는지, 한 아이가 이사를 가고 나서였는지 우리에게 더 이상의 지구탐험대와 지구용사는 없었다.
조용히 서서히 멀어져 갔던 거 같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 동네에서 이사를 갔다.
가끔 생각난다.
어느 날인가 우리 집에 찾아와 같이 놀자고 했던 그 모습들이.
그 아이들을 웃기고 싶어 했던 나의 행동들이.
어른이 되어 그 동네 그 골목을 다시 찾아갔던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넓었던 그 골목이 이렇게 좁았었나.
그때 내가 살던 집은 없어졌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찬란하고 소중한 시절을 함께했던 소중한 인연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