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MP3 Player
대학 시절, 시험 기간이 되면 다들 학교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를 하곤 했었다. 시험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도 나는 집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집중이 잘 됐지만, 집에 갈 수 없는 남들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나 혼자 연모(?)하던 같은 과 오빠도 시험 기간 내내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어린 나이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때는 MP3 Player에 음악을 다운 받아 듣는 게 한창 유행이었는데, 하루는 도서관에서 그 오빠가 내 자리로 오더니 MP3를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게 뭐라고 내 심장 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나올 뻔했다. 그리고 나중에 mp3를 돌려주면서 자기와 음악 취향이 어쩜 그리 비슷하냐며, 다음에 또 빌려 달라는 말 한마디에 내 맘은 또 한 번 크게 요동 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딱히 취향이라 할 만한 노래들을 다운 받은 게 아니라, 그저 인기차트에 있는 노래들을 순서대로 다운 받았을 뿐이었다. 나중에 보니 최근 들은 플레이 리스트에 리쌍과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들이 있었다. 그렇다. 오빠는 힙합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 이후로 힙합의 ‘힙’자도 모르는 나는 mp3를 죄다 힙합 장르의 음악으로 도배했다. 하지만 어느 이유에서인지, (사실 아무 이유도 없다) 그 이후로 오빠는 더 이상 내 mp3를 빌려가지 않았고, 그렇게 시험 기간은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결국 취향은 취향일 뿐이라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장본인은 그저 술에 취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스무 살의 짝사랑이 그렇게 볼품없이 흘러갔고,
플레이 리스트에 있던 알지도 못하는 힙합 노래들을 하나둘씩 삭제하며 알콜과 함께 눈물도 삼켰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 취향이 중요할 진 몰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 취향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