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쓴이 Oct 08. 2022

오해와 이해 사이

사랑은 오해의 연속


좋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은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결국 서로를 오해하다 나중에 그 오해마저 서로 이해하는 관계가 아닐까.


어떤 한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을 두고 두 사람은 전혀 다르게 표현한다.

독립적이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줄 알고, 일을 사랑하는 이성적인 사람.

이기적이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일밖에 모르는 냉정한 인간.

전자와 후자의 차이점은 딱 하나다.

그 사람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사랑을 하려는 자는 어떻게든 장점을 볼 것이다. 그 사람의 어떤 면을 볼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사람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의 표면과 다르지 않기에, 어쩌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면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는 거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31가지 맛이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무슨 맛을 고를지 선택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의 취향과 각자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선택을 계속해서 증명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설사 자신의 선택이 오해였을지라도 그것을 이해해버리면서까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사랑이 어리석고, 바보 같고 이해 불가의 영역이라 느껴져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갈망한다.


결국은 사랑하기 때문에, 오해하고 싶은 것이다. 상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그 안도감으로 우리는 사랑을 계속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노력이나 의지 따위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말인즉슨, 사랑이란 걸 한 지 꽤 오래됐다는 뜻이다.

사실 노력이나 의지도 사랑이 시작되고 나서의 일일 지도 모른다. 사랑의 시작이 노력이나 의지 따위로 되는 경우는 개인적으로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욕심이 아니라면, 이 가을이 끝나기 전에 누군가를 오해하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 그 오해마저 이해로 만들어줄 단 한 사람이 내 앞에 선물처럼 나타나 주길 바라본다.

이전 12화 서른다섯의 관계 설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