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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쓴이 Oct 14. 2022

사랑 타령 하며 살자.

사랑과 자전거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잊었다는 말은 정말 잊어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어쩌면 어릴 때 배웠던 자전거처럼 말이다.

어른이 되어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어도 결국엔 몸이 기억해서 바퀴를 자연스레 굴리듯.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그렇다.

그것은 어두운 방 안에 불을 ‘탁’ 키듯이 바로 밝아지고, 선명해지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고, 많은 사람을 만나봤다고 무뎌지거나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사랑을 영영 못 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애초에  내면 깊이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아 그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 목적과 수단이 바뀐 사람들.

단지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싫을 뿐, 사랑이 아닌 것으로도 연애가, 결혼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 타령’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사랑’이 전부인데, 그 신성한 단어 뒤에 타령이라는 말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이 빠진 인생은 목적 없이 굴러가는 기계 같은 거다. 어떻게든 굴러만 가면 되는 게 인생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한다.

자전거처럼 내가 핸들을 잡고 방향을 조절하며, 열심히 발을 동동 굴려야만 그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페달은 나름대로 열심히 밟았지만, 핸들에서는 손을 떼고 살아온 느낌이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아슬아슬 넘어지지만 않으면 되지. 하면서 말이다.


서른다섯인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방향을 알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다시, 제대로 배우는 중이다.

솔직히 아직도 정확한 목적지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열심히 방향만 잃지 않고 이대로 가다 보면 팻말을 들고 서 있을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길로 안내해줄 그 누군가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주춤하지는 않는다. 내 자전거는 지금 아주 잘 굴러가고 있고, 이제야 자전거 타는 게 재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목적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 최종 목적지는 ‘사랑’이기를 바라면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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