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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Feb 08. 2022

엄마의 35년 가계부

EP20. 나도 엄마를 따라 가계부를 쓰게 됐다.

  

“30년 됐는데, 이 바지 어때? 내가 수선했다.”

“그 접시는 너보다 나이가 많아. 그래도 새 것 같지?”

“이 선글라스 너 줄까? 엄마 결혼할 때 쓴 건데. 다시 유행이 돌아왔나 봐.”

“그걸 왜 버려? 잘라서 행주로 써야지!”

“양말은 원래 기워서 신는 거야.”

“왜 입이 대빨 나왔어... 엄마 말이 틀려?”          


안 먹고, 안 입고, 

거기에 여름 겨울엔 냉난방도 안돼서.. 집에 있는 게 개고생인 시절이 있었다.

난 중고등학교 때 전통시장에서 옷 사 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게 한이 되어 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쇼핑은 절대로 백화점에서만! 

소위 메이커 옷만 입었다. 가방도, 화장품도, 심지어 필기도구도 다 유명 브랜드만 샀다.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면, 나중에 어떡하려고?”  

“걱정 마셔! 돈 많이 벌거니까... 난 절대로 엄마처럼 안 살 거니까. 두고 봐!”     


친구들보다 좀 일찍 결혼해서 엄마의 품을 벗어나니,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돈지랄을 했다. 

과소비에 마이너스통장에 나중엔 카드빚이 쌓이기 시작하고. 저축이 뭐고 청약이 뭐다냐...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니 더 유명한 거, 최신 유행하는 거. 비싼 명품만을 쫓아다녔다.

그런데 회사 생활하면서 위에선 원하는 게 많지. 밑에서 치고 올라오지. 

스트레스받으니까 다 때려치고 싶은 맘에, 임신을 핑계로 그만뒀다. 

돈에 대해서 참 대책이 없는 사람인거지. 


아이를 낳으니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드니?

또 남편은 맨 땅의 헤딩을 한 창업자였기 때문에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어느 날, 엄마가 손녀딸이 보고 싶다고 찾아오셨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다.

도시가스비를 못내서 가스가 끊긴 날에, 딱 걸린 것이다.

난 해맑게 휴대용 버너에 물을 끓여서 커피를 대접했는데. 

마침 그 시간에 전기료 3개월 밀렸다며 빌라 현관 앞에 딱지를 붙이고 가는 게 아닌가!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지셨다.   

  

“대체, 너 어떻게 산 거니? "

“나가서 돈 벌어야 되니까, 엄마가 손녀만 맡아주면 돼!”     


엄마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창백한 얼굴로 바닥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셨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부터 시작해서...

몇 날 며칠을 주구장창 잔소리를 하시는데, 

마음찢어지는 엄마에게 난 되려 큰 소리를 쳐댔다. 걱정 말라고!


그런데 도움을 주실 줄 알았던 시아버지는 하던 사업이 내리막길을 탔고. 

오히려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우리에게 사 주신 집을 전세 놓고 합치자고 하셨다. 

음...그때부터가 나에겐 훈련의 시작점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옳았다.

엄마 말이 다 맞았다.

역시 엄마밖에 없다.

      

돈만 준다고 하면, 힘들어도 무조건 들어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 했다.

(그 덕에 방송 경력은 켜켜이 쌓여갔지^^...) 

비빌 언덕이라곤 친정엄마뿐인지라. 

딸을 키운다는 명목 하에 엄마에게 손을 많이 벌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남편의 사업도 자리를 잡았고, 

나 또한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니까... 

아버지는 갑자기 천국을 가시고, 엄마는 쓰러지신 것이다. 

여행도 가고, 좋은 옷도 사드리고, 못먹어본 고급음식도 대접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된 효도 좀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질 않았다.          


엄마의 1986년-2020년 가계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책장 한쪽에 낡은 가계부 책 묶음을 발견했다. 

1986년부터 2020년까지 35년의 기록이었다. (2021년은 1월 중순까지만 적혀 있어서 제외했다)


와... 지금까지 간직하다니, 정말 대단해...(아빠만큼이나 엄마도 기록의 천재셨다)

가계부 안엔 내 이름이 제일 많이 등장했다.

나 하나 제대로 교육시키려고 열심히 벌고, 열심히 아끼고 모으신 거다.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엄마의 주판 튕기는 소리... 

옆에서 내가 잠자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엄마는 주판알을 계속 올리고 내리고 흔들고... 

어릴때는 그 소리가 지긋지긋했는데, 

왜 이젠 다시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는지... 괜히 눈물이 글썽하구먼.

               


엄마는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꾸어줄지언정 절대 꾸지 않는 사람!

얼마 전, 엄마 집에 20년 된 통돌이를 버리고 새 드럼세탁기를 사다 놨다. 

아무도 없는 집이지만, 청소는 해야 하겠기에 이불을 좀 빤다고 전원 버튼을 켰는데...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 이러지?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다가.. 아 맞다... 엄마가 세탁기 중간 어디쯤을 확 발로 차면... 

세탁기가 작동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발로 여기저기 쳤지만 안 돌아갔다.


'너도 너의 주인처럼 움직이질 않는구나...'

새 세탁기가 들어오고 옛 세탁기가 집을 나가는데, 

떠오르는 추억이 있었다. 

이 세탁기를 살 돈을 모은다고 70대 초반의 노인이 동네 마트에서 야채 담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하셨었다. 

번 돈의 일부는 아버지의 전기료 벌금 500만 원을 내시고... 

남은 돈으로는 이 통돌이를 구매하셨었다. 


"누가 내가 늙었대? 난 아직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어!" 


하며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던 엄마의 표정이 기억난다. 

그러나 돈 아낀다고 마트에서 버리려는 야채들을 쓸어 담아. 

집에 가져와서 국을 끓여 드셨었던 사연도 숨어있었다. 

(그땐 나도 남편도 코가 석자라서 보태드리지 못했었다. 정말 불효녀였지...)

 

    

                                                   

그렇게 엄마 아빠가 한 푼 두 푼 모아놓으셨던 노후자금이...

지금은 엄마의 병원비와 간병비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보험 들어 놓은 것이 없냐고?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 교회에 데리고 간다고 이 보험 저 보험 들어줬지만. 

80대 만기 거나 오히려 손해 보며 해지해야 했던 것들이 많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천국 가야 한다면서.

열심히 전도하셨던 엄마였다. 


"정원아. 십일조부터 떼는 거야! 알았지?"


엄마가 돈을 모으는 비결은 단 하나...

번 돈의 십 분의 일을 교회에 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은 가난할 수 없다!

그래서 꾸어줄지언정 절대 꾸지 않았다고...


나도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난 엄마를 대신해서 주일마다 교회를 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목사님께 기도를 영상통화로 받기 위해서다.

점점 목사님과 친해졌고, 목사님의 "크리스천 재정학교" 성경공부에 의도치 않게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생전 써보지 않았던 가계부를 쓰게 되었다. 

돈을 어디에 가장 많이 쓰는지 한눈에 보이더라.(뜨악. 먹는데 젤 많이 씀^^) 

그리고 성경 속 돈에 대한 비유. 부자와 거지의 개념은 물론이고. 

바람직한 재정지출, 미래를 위한 올바른 재정계획 세우기 등을 배우며 

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의 가장 큰 복은 

인생의 좋은 선배이자, 좋은 부모를 둔 것이다. 

그리고 값진 믿음과 올바른 물질관을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세상에 남겨질 하나뿐인 딸을 위해 

엄마아빠는 기도를 차곡차곡 쌓아놓으셨고, 

그 기도 덕에 지금 내가 버티고 있다. 


당신이 나의 부모님이 되어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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