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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Nov 12. 2021

인생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EP 22. 어제의 선택이 오늘을 만든다

인생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내가 그렇다.


글만 쓴다고 맨날 책상 앞에 붙어 있던 내가

엄마를 위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주민센터와 병원들을 계속 들락거리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며 화가 나면 내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들도 한다.

변한 것이다.


아빠를 어느 날 갑자기 잃고,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를 돌보다 보니  

지금껏 뭐 하며 살았는지 다시금 재점검하게 된다.

 

아픈 엄마를 회복시키려면,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그동안은 일상의 지식들을

드라마로 배우고. 영화로 배우고, 책으로만 배웠어서 소용이 없었다.

무지렁이....

나이는 먹고 있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웃긴 건... 나만 모르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잘 몰랐다. 부모님이 모두 젊고 건강하시니 서둘러 알 필요가 없던 것!  

난 친구들과 맨날 스토리만 얘기해왔다. 

주인공이라면 이렇게 살았을 거다... 라며 허구의 세상을 얘기했던 것이다.  


사람은 닥쳐봐야 그때서야 깨닫는 존재인가 보다.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고 나니,

그동안 썼던 글들이 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잘 안됐는지를 알게 됐다.

인물이 살아있지가 않았던 거다.

그저 말이 되게 짜깁기했을 뿐...


그래서...

앉아서 머리로만 배웠던 것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비록 만나는 사람들의 폭은 좁지만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우고....그러고 있다.

 



난 방송작가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MBC 방송아카데미를 거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핑클이 4명이고 SES가 3명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방송작가란 직업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능의 "예"자도 몰랐던 내가 예능을 한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다들 놀랄 놀짜 였다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20페이지가 넘게 분석해서 냈던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착해 보이는 첫인상이 선배들 맘에 쏙 들어 이쁘다고 뽑혔는 건지,

아니면 MBC가 여의도에 있던 시절이라서 면접을 보고 곧바로 교회 대성전에 가서 1시간을 취업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이 하나님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10:1의 경쟁을 뚫고  방송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이 세계에 발을 한 번 들이니 그 뒤는 자연스럽게 인맥과 경력이 생겨서.

여러 방송과 프로그램들을 돌게 되었고, 내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도 방송이 되었다.


누군가들과 함께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웃게 해 주고

더 재미있게, 더 기발하게 구성을 해서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다 나이 많은 부모님을 생각해서,

다른 선배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덜컥 임신을 해버렸네?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아이를 선택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뒀다.

그러나 하필 시청률이 바닥을 쳤을 때였기 때문에, 동료를 배신하고 떠난 것은 경력단절로 이어졌다.


먹고살기 위해 다시 시작한 작가의 길. 

집 앞에 있는 기독교방송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내가 아닌 하나님이 주인 되어 살았던 삶이 얼마나 옳은지를 얘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종교방송이다보니 경쟁하지 않고. 긍정을 말하는 삶을 배웠고,

거기서 난 또 한 번 나를 변화시켰다.


창작의 길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계관을 넓히는 것이 제일 먼저 필요했다. 4년을 고3처럼 스토리에 대해 공부를 했다. 

놀기 좋아하는 내가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고 밤낮 드라마와 영화를 분석하고, 인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그동안의 모든 삶과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점점 나도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이 생겼었더랬다.

그 결과... 하늘도 감동을 했는지 기회가 왔다.

그것도 너무나 부담스러운 기회!! 우리나라 최고의 제작사 기획 피디가 내 대본을 보고 좋다면서 계약을 하자고 했고, 데뷔도 못한 초짜에게 복층의 오피스텔 작업실까지 내어주는, 넷플xx에 편성도 될테니 열심히 하라는...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창작의 길은 하늘만큼 높은 장벽이었고, 바늘구멍보다 좁은 입봉 길이었으며

마라톤을 뛰듯 길게 보고 가야 하는 길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뼈아프게 겪었던 것. 계약이 엎어지고, 날아가고, 짓밟히고...

하지만 언젠간 내가 만든 스토리가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하나가

매일 노트북 앞에서만 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모든 것을 놨다....그냥 놨다.

습관이 되어 버린 책과 영화도 만화도 소설도 그냥 놨다.

 



드라마의 주인공에겐  변곡점란 게 있다.

그 변곡점 사건을 통해서 주인공은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그 변곡점으로 시청자는 뒷 이야기가 궁금하고 흥미롭게 느끼게 되는데...

내 인생에도 그 변곡점이 온 것 같다.


난 힘들어 죽겠는데,

난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어 목적도 의욕도 사라지게 됐는데.

주변 인들은 더 잘 될 거라는 말한다. 내 삶이 기대된다고.  

아... 내가 주인공이 되어 보니까 알겠다.

스토리를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신이 나에게 단 하루라도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난 엄마가 쓰러지기 그 전날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엄마가 쓰러지시기 1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첫날 119로 실려갈 때 치료만 잘하면, 엄마가 곧 일어나실 거라 믿었다.

뇌졸중 골든타임 3시간 안에 뇌혈관을 뚫는 시술을 했다면,

심근경색 골든타임 9시간을 미리 알고 스탠트 시술을 했다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를 생각하며...

쓰라리고 괴로운 시간의 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순간이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냉장고에 아빠를 위한 만들었던 반찬들이 썩고 있었다.

엄마가 그날 아침에 끓였던 국과 엄마가 담근 마지막 김치.

그리고 아빠의 엄청난 일기들... 아빠가 평생 입었던 옷들.     

이 모든 하나하나를 정리해나가는데...

그 과정이 참 괴로웠다.

모든 게 다 추억이고 그 추억을 함께 할 사람들이 사라지니...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모르겠더라.


모든 것을 놓고,

찾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됐지만...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벌어진 일들에 갇혀 살지 않고,

조금씩 나를 발견하며 이겨낼 것이라 믿고 싶다.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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