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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Mar 26. 2022

엄마의 말씀읽기와 메모지

EP21. 엄마를 통해 배우는 지혜들

난 엄마의 규칙적인 예배 참여와 말씀 생활을 보며 커왔다.

사실 칼같이 지키는 그 규칙이 답답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루틴이 엄마의 삶이었고, 뒤늦게나마 엄마를 닮아가고 싶다.


"성경책하고 돋보기 좀 가져와. 내 성경 가방 알지?" 


성경 한 줄 읽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엄마가 성경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집에서 평소에 읽으시는 큰글성경은 매우 무겁다.

하도 많이 넘기셔서 그런지 지퍼도 잠기지 않는다. 

큰글성경보다 조금 작은 성경책을 지난 토요일에 가져다 드렸더니...


"왜 네 아빠 걸 가져와? 내 거를 가져다줘..."   


그건 아빠 거란다. 엄마 아빠 거는 구분이 안 가서 몰랐지....

역시 엄마가 많이 좋아지셨다. 본인의 것을 알아보시니 말이다. 

현재 코로나 환자 밀접접촉자라 병동이 코호트 됐다. 

원무과에 가져다주면. 직원이 전달해 주는 시스템이다.

집에서 엄마의 성경책을 찾아 가방에 넣으려는데,

여러 메모들이 성경책 사이사이에 끼어 있으니 두꺼워서 닫히질 않았다. 메모들을 하나하나 뺐다. 

그러다가 발견한... 엄마의 성경통독 횟수 메모지.

그리고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 표시된 엄마의 통독 횟수도 발견했다.


엄마의 성경책 그리고 그 성경을 읽으시는 엄마의 회복되는 모습


정말, 그 무엇보다 값진 엄마의 성경 읽기 실천 모습에 감동이 됐다.

지금의 이 성경책을 2011에 구입했으니까

2011년부터 - 2020년 12월 29일까지  이 책으로 10년 동안


"총 32독" 


2011년 1회 완독

2012년 1회 완독

2013년 3회 완독

2014년 2회 완독

2015년 3회 완독

2016년 3회 완독

2017년 3회 완독

2018년 6회 완독 (성경 읽기 교구 1등 수상, 교회 서점 상품권)

2019년 5회 완독

2020년 5회 완독


엄마의 돋보기와 성경책을 가져다 드리니 

엄마가 침대에 앉아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셨다.


"엄마. 성경을 읽으셨다고?"

"딱 한 구절... 돋보기를 썼더니, 토할 것 같더라고. 모든 게 너무 크게 보이는 거야"


맞다...

1년을 넘게 누워계셨고, 휠체어에 앉게 되신 것도 얼마 안 됐으니... 눈의 시력도 많이 달라졌을 거다.

사실 2021년 10월 패혈증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난 엄청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글씨를 하나도 읽지 못하신 것이다.

심지어 숫자도 못 읽으셔서 자신의 생일과 전화번호를 적어줘도 읽지 못하셨다. 

어떡해... 혹시 또 다른 뇌의 기능이 다친 건 아닐까? 


이때 갑자기 스치는 생각. 엄마에게 작은 TV를 만들어주자! 

핸드폰 거치대를 사서 엄마의 눈앞에 설교말씀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설치하자... 였다.

여사님께 부탁해서, 24시간 우리 교회에서 방송이 되는 실시간 방송설교를 계속 틀어드렸다. 

담당 의사 말로는 눈으로 직접 유튜브를 보니 잊어버렸던 많은 것들이 다시 생각나셨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기억력도 좋아지셨고, 글도 다시 읽게 되신 것!! 

다행이다. 이제 성경까지 읽으실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쩜 좋아. 그래!! 이게 엄마야... 엄마의 평소 모습이잖아!"


오늘 아침에... 여사님이 감동적인 사진을 보내오셨다.

여사님이 연출을 해서 찍어주셨는데... 정말 하나도 안 아픈 사람 같아 보였다.

이모 역시. 이 사진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우리 언니 맞니? 왜 이렇게 좋아지셨대? "


아프시기 전엔 매일 보았던 엄마의 성경 읽는 모습이. 지금은 기적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지만. 

엄마가 성경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었다.

또 엄마가 이같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 매일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게 됐다.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나한테는 치유의 모델이 있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이외수 작가였다. 엄마보다 1년 전에 쓰러지셨는데...

영화감독인 아들이 가끔 이외수 작가님의 사진을 올렸었다.

말씀은 못하시지만 자전거를 타는 모습. 바둑을 두는 모습을 공개했더랬다...  


"엄마. 이외수 작가 알지? 엄마도 이외수 작가님처럼!! 일어날 수 있어!"


라고 했었는데,

엄마의 성경을 읽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엄마도 힘들게 병상에서 성경을 읽으시는데, (어제는 갈라디아서, 오늘은 고린도후서를 읽으셨다고)

멀쩡한 난 놀면 안 된다.

나도 올해 1독 통독을 목표로, 오늘 읽을 양을 무사히 마쳐야겠다!





또 하나, 내가 가장 감사한 것은 엄마의 기억이다. 

최근 10년의 기억은 헷갈려하시지만 

이상하게 성경에 대한 지식과 목회자님들 성함을 잊지 않았다는 것!

성경 66권의 이름. 사도신경. 주기도문. 야곱의 열 두 아들, 열두 지파, 예수님의 열 두 제자 등의 이름을 줄줄 외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새벽예배에 서시는 목사님들 성함을 말하면 '누군 설교가 웃긴다. 누군 말씀 중심이다. 누군 아들이 둘이다. 누군 해외 선교사 출신이다' 등등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나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물개 박수를 절로 쳤다.

하나님이 엄마를 왜 사랑하시는지 알 것 같다.

철저하게 교회 중심의 삶, 목회자와 교인들의 중보 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일 거다.


엄마의 기억의 비결이 뭘까?

엄마가 어떻게 다 외울까? 궁금했다.


엄마의 말씀메모 수첩. 2021년 1월25일 쓰러진 날이 마지막 페이지다. (그 뒤엔 병원에서 나의 메모들)


바로 말씀 수첩에 있었다.

엄마의 이 꼼꼼함과 정확함.

이러니 목사님들의 성함과 신상에 대해 안 외울 수가 없지....

이런 수첩들이 수십 개가 엄마의 문갑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내가 가끔 필기의 여왕이란 말을 듣는데. 다 유전적인 소견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더 대박은.... 수첩 뒤에 기도제목들이 적혀 있다는 것. (개인적인 사항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제목들이 응답이 되었다는 "0"표시가 있는데,

엄마가 얼마나 세밀하게 말씀과 기도생활을 해오셨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교회 식구들은 물론이고 형제자매와 조카와 조카 손주들의 이름도 빼곡히 적혀있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하시니까, 기본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은 그냥 기도를 하셨다..

그래서 무릎도 안 좋고, 허리도 더 안 좋으셨나 보다.


기도의 응답은 조지 물러의 삶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 엄마의 삶에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열심히 적어!"


나도 엄마의 수첩을 보면서 따라 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을 엄마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예배시간에 졸지 말고 적으면서 집중하라 하셨다. 


역시 엄마...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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